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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5번째 여정은 3.1운동 100주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동과 청파동이었다. 여정의 시작은 이른 새벽 효창운동장에서 운동을 즐기는 이들과 함께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축구 전용인 효창 운동은 이제 큰 경기는 열리지 않지만, 지역민들의 생활체육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진행자는 새벽 축구 경기를 하고 있는 동호회 회원들과 시간을 보내며 하루 일정을 위한 에너지를 충전했다.

효창공원으로 가는 길에 지난 가는 이들에서 이른 아침부터 공존하게 인사를 건네는 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나이를 구분하지 않고 자신의 가게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하루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그는 효창공원 입구에서 김밥 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매일 이와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또한, 김밥 집을 찾는 이들 중 사회적 약자들에게 김밥을 더 할인해 판매하고 가게 벽면 곳곳을 자신의 자작 시와 사진들로 채워 넣는 등 남다르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특히, 백범 김구 선생과 관련한 자료를 가게에 비치하고 그와 관련한 웅변대회 입상 상장을 가게 한쪽 면을 차지하는 등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심이 남달랐다. 그는 효창공원 입구에서 장사를 하기 전까지 김구 선생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오랜 기간 장사를 하면서 효창공원의 백범 김구 기념관을 찾게 되었고 그의 나라사랑의 정신과 사상에 매료되었고 김구 선생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그가 가게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매일 인사를 하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김밥 집을 떠나 백범 김구 선생이 잠들어 있는 효창공원 그리고 백범 김구 기념관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그의 항일 투쟁의 역사와 최후의 모습까지 다양한 자료가 있었다. 김구 선생은 일제의 침략으로 시작된 중일전쟁 발발 이후 더 노골화된 일제의 침략과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임시정부를 이끌었고 무장독립 투쟁을 통해 우리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김구 선생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김구 선생을 그토록 염원했던 독립된 조국으로 돌아왔지만, 민족의 분단을 지켜봐야 했고 일제의 살해 위협을 견뎌냈음에도 동포의 흉탄에 서거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결국, 김구 선생은 민족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소망을 모두 이루지 못하고 효창공원에 한 편에 잠들어 있었다. 

효창공원에는 그와 함께 항일무장 투쟁의 거사를 실행했던 이봉창, 윤봉길, 백남기 선생의 묘도 함께 있었다. 이봉창 의사는 일본에서 일왕을 폭사시키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일제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고 순국하였고 윤봉길 의사는 상하이 루쉰공원(훙커우 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행사 때 폭탄을 투척하여 일제 침략의 선봉에 있었던 장성들을 폭사시키고 순국했다. 백남기 의사는 상하의 일본 대사를 저격하려다 실패하고 순국하였다. 김구 선생은 이국에 묻혀있던 그들의 유해를 수습하여 효창공원에 봉헌하였다. 

그리고 또 하나 묘비가 세워지지 않은 가묘는 1909년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봉헌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었다. 여전히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중국 어딘가에 묻혀있을 거라는 추측만 있을 뿐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들 3의사와 안중근 의사의 묘소,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인사들과 3의사가 모셔진 사당까지 효창공원에는 우리 독립운동의 정신과 그 역사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많았다. 하지만 조금은 썰렁한 공원의 모습과 사당을 홀로 청소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의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복잡 미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효창공원을 떠난 여정은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 여정에는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카센터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며 즐겁게 손님들을 맞이하는 활기찬 사장 부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고 1906년 설립되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역의 대학, 숙명여대에서는 방학 중에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부에 여념이 있는 학생들의 고민과 희망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수십 년간 지역의 맛 집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와플 가게에서는 팔순의 나이에도 수십 년의 맛을 지키며 인근 숙명여대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는 사장님의 끈기와 성실함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인근 시장에서는 사랑의 장바구니 행사를 통해 상인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식재료들을 나 홀로 거주 노인분들에게 전달하며 마음을 전하는 따뜻한 장면도 함께 했다. 마지막으로 이제는 그 모습이 많이 바뀌고 사라져가는 하숙집에서 하숙생과 하숙집 주인 관계 이상의 정을 나누고 있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삶의 모두 삭막하기만 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효창동과 청파동으로 이어진 여정은 3.1운동 100주년과 독립운동의 역사와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것과 함께 치열했던 항일 독립운동의 산물로 얻어낸 대한민국의 오늘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서민들의 삶도 살피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사진: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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