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방방곡곡 우리 동네의 이야기를 전하는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9번째 여정은 봄이면 가장 이슈가 되는 벚꽃 명소 진해의 이야기로 채워졌다. 진해는 대한민국 남해안의 항구 도시로 봄이면 열리는 진해 군항제의 벚꽃 풍경을 즐기려는 국내외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다. 또한, 해군사관학교를 비롯해 대한민국 해군의 요람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벚꽃이 피는 봄의 어느 날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는 이런 진해를 지나칠 수 없었다. 여정의 시작은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진해 경화역에서 시작됐다. 이제 기차역의 기능을 하지 않는 경화역은 대신 벚꽃 명소로 알려져 있다. 폐철길을 따라 심어진 벚꽃 나무의 벚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장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철길을 따라 양쪽으로 만개한 벚꽃길의 풍경은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담고 싶은 풍경이다.
경화역 철길을 따라 발걸음을 진해 앞바다로 연결됐다. 이곳에서는 봄이면 찾아오는 숭어 잡기가 한창이었다. 이곳의 숭어 낚시는 미끼를 쓰지 않는 훌치기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워낙 많은 숭어가 있어 수 수확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진해의 봄에는 벚꽃 상춘객들뿐만이라 숭어를 낚으려는 강태공들이 전국 각지에서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벚꽃 풍경과 함께 진해에서 볼 수 있는 색다른 풍경이었다.
진해의 바다를 뒤로하고 중심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해 경화동 중심가는 과거 마을의 위급사항이 발생하거나 주민들을 모이게 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일명, 불종의 조형물이 있었다. 지금은 그 기능을 하지 않고 있지만, 진해의 역사를 간직한 의미 있는 상징이었다.
불종과 함께 경화동에는 진해의 옛 모습을 간직하면서 주민들과 함께 하는 장소들이 많이 있었다. 빛바랜 간판과 오래된 시설, 높은 굴뚝이 여전히 남아있는 목욕탕들은 과거의 향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이제는 사우나나 찜질방에 밀려 그 모습이 사라져가는 목욕탕이지만, 경화동에는 아직도 20여 개의 목욕탕이 주민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오래된 목욕탕에서 과거를 추억한 진행자에게 80대 할머니가 말을 걸었다. 그 할머니는 경화동에 시집와 50년 넘게 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할머니는 젊은 시절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3남매를 홀로 키웠다. 그 모진 세월이 지나 자녀들은 장성해 외지로 나가 살고 있지만, 할머니는 추억의 집을 지키고 있었다. 바쁜 일상 속에도 자녀들은 명절 때가 돼야 할머니를 찾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자녀들에게 섭섭함보다는 자녀들이 자라는 과정에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한 것을 더 안타깝게 여기고 있었다. 잠깐의 만난이었지만,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와의 만남 후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이끌고 제과 공장 간판이 걸린 장소를 찾았다. 주택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안에는 진해의 명물 콩 과자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었다. 과거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 그 공장을 유지하고 있는 부부는 8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콩 과자 공장의 명백을 이어가고 있었다. 2명이 모든 일을 하다 보니 힘든 점이 많지만,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부심으로 콩 과자 공장의 부부는 즐겁게 일하고 있었다. 공장 한편에 걸린 부모님이 손수 제작해 사용했던 국자는 공장의 역사와 부부의 마음을 함축하고 있었다. 이런 노력 덕분인지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콩 과자는 사람들이 찾는 진해의 명물로 자리하고 있었다.
콩 과자의 구수한 향을 뒤로하고 진해의 현재를 한 번에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진해의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 향하는 모노레일은 바쁜 여정 속에 잠시 휴식을 안겨 주었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진해는 바다와 산이 조화를 이룬 멋진 절경이었다.
이런 진해의 멋진 절경 속에는 아픈 역사가 숨겨져 있었다. 진해는 과거 일제가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계획도시였다. 진해는 그들의 침략 전쟁을 위한 일종의 전진기지였던 셈이었다. 도시계획 곳곳에는 일제의 흔적이 남아있다. 중앙 로터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도시 구획들은 일제 군국주의를 상징을 형상화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조성된 진해에는 한때 5만 명이 넘는 일본인들이 거주했을 정도로 일제에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아픈 역사의 한 단편이지만, 지금 진해는 그때의 기억을 지우고 대한민국 해군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길을 가다 만난 해군 군악대의 늠름한 모습은 과거와 다른 지금 진해의 모습을 상징하는 장면과 같아 보였다. 해마다 진해 군항제에게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해군 군악대는 군항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진해군항제에서 펼쳐진 해군 군악대의 멋진 공연을 기대하며 여정은 이어졌다.
진해 시내를 돌아보던 여정 가운데 벚꽃을 테마로 한 떡집을 발견했다. 이곳은 순간 피었다가 사라지는 벚꽃의 기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는 염원에서 시작해 벚꽃 떡을 생각해냈다. 벚꽃의 꽃과 잎과 진액을 넣어 만든 벚꽃 떡은 이 떡집 사장의 바람대로 벚꽃을 봄에만 피었다 지는 꽃이 아닌 일 년 내내 느끼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진해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함이기도 했다.
진해 시내의 폐철길을 따라 막바지로 향하는 여정, 이 철길은 일제가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이제는 지역민들과 여행객들 모두가 즐기는 지역의 명소가 됐다. 그 철길은 바다도 향해있었고 그 끝에서는 진해의 개펄에서 조개잡이를 하면 일상의 또 다른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진해의 철길은 과거의 아픈 기억이 함께하고 있었지만, 행복이라는 또 다른 길을 열어주는 통로이기도 했다.
여정의 끝에서 지역민들 특히, 진해의 해군들이 인정하는 맛 집을 찾았다. 이 식당은 돼지 김치 구이 한가지 메뉴만으로 손님들의 맛을 사로잡고 있었다. 어머니에서 아들로 50년이 넘게 이어진 한결같은 맛은 이 식당이 계속 발걸음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돼지 김치 구의 쌈과 이어진 볶음밥까지 푸짐한 한 상은 여행의 피곤함을 덜어주는 듯 보였다.
이제 진해는 창원, 마산과 합쳐져 통합 창원시의 일원이 됐다. 하지만 진해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함은 이곳의 정체성을 계속 지켜주고 있었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진해사람으로 그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벚꽃과 해군의 도시 진해로 알려져 있지만, 하루 동안의 여정에서 진해는 그것 말고도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문화 > 김영철의동네한바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1회] 시민의 숲, 서울숲을 품고 있는 성수동 (5) | 2019.04.14 |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0회] 봄이 오는 남도의 길목, 목포 유달동 (3) | 2019.04.07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6회] 이화동, 창신동, 서민들의 애환 담은 성곽길 따라 (11) | 2019.03.10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5회] 순국선열의 정신 함께 하는 용산 효창동, 청파동 (4) | 2019.03.03 |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4회] 일출과 가장 먼저 만나는 마을 포항 호미곶, 구룡포 (2) | 2019.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