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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0번째 이야기는 남쪽의 끝 목포 유달동의 이모저모로 채워졌다. 목포를 상징하는 유달산을 중심으로 목포항과 목포 바다, 그 바다에 자리한 섬을 모두 품고 있는 유달동은 목포의 역사를 간직한 동네였다. 그곳에서 다른 곳보다 일찍 찾아온 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다도해의 풍광과 만나는 목포 항구에서 시작된 여정은 봄꽃의 풍경으로 채워졌다. 봄꽃으로 채워진 길을 따라 목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유달산으로 발걸음이 이어졌다. 그 유달산에서 1928년 일제시대 중건되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작은 사찰인 보광사와 만났다. 이 사찰은 크지 않았지만, 법당 안에 자리한 샘물이 있어 예로부터 지역민들이 찾는 명소로 자리했다. 

보광사의 샘물은 유달산의 정기를 가득 머금었다 하여 신령스러운 물로 여겨졌고 이 샘물을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전설 아닌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다. 이 샘물은 유달산의 바위를 깎아 만든 석불과 함께 보광사의 명물이었다. 유달산의 봄 사이에 자리한 사찰 보광사를 뒤로하고 유달산을 내려오는 길 정감 어린 시가 벽 곳곳에 써있는 마을과 만났다. 





이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창작한 시를 벽화로 구현한 이 마을을 시화마을로 불리고 있었다. 이 마을의 벽화나 시는 모두 지역주민들의 작품에 근거해 만들어졌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긴 세월 이 마을을 지키면서 누구보다 이 마을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있는 작품 작품이 너무 여정의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마을 주미들과의 대화 속에서 남도의 정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이 시화마을에는 각종 소품들과 전시품을 포함해 옛 건물들 활용해 추억의 거리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시화마을은 2019년의 봄과 수십 년 전 기억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시화마을을 지난 중심가로 옮겨진 발걸음은, 목포에서만 맛볼 수 있는 쑥꿀레 가게로 연결됐다. 쑥꿀레는 쑥을 넣어 만든 떡과 조청을 더한 간식으로 봄에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수십 년 이어진 만드는 과정은 사람들의 손에 절대 의존하고 있었다. 목포의 손맛이 함께 하는 쑥꿀레는 목포의 봄을 제대로 느끼게 하는 먹거리였다. 

이제 여정은 최근 모 국회의원으로 인한 각종 뉴스로 본의 아니게 그 이름이 크게 알려진 근대문화 역사거리로 이어졌다. 이곳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곳으로 지금도 일제시대 지어진 건축물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일제시대 개항된 이후 목포는 일제 수탈의 항구라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때 남겨진 각종 건축물의 아픈 역사의 산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근대문화의 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존이 필요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 같은 느낌도 함께 가지게 해주었다. 

일제시대 일본들이 점령했던 그 거리에 한국인 상점으로 꿋꿋하게 자리했던 가게가 있었다. 1924년부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모자점이 그곳이었다. 그때부터 3대를 이어가고 있는 모자점은 한국인 상점으로 일제시대 그 명성이 자자했고 당시 멋쟁이들의 즐겨 찾는 유행을 선도하는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의 영화는 아니지만, 꾸준히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 일본인 거주 지역에서 시작해 100년 가까이 그 명맥을 이어가는 모자점이 너무나 반가웠다. 

목포의 중심가를 계속 걷다가 목포의 진미 중 하나인 민어회를 맛볼 수 있는 민어의 거리와 만났다. 민어는 흔히 여름 보양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목포에서는 계절에 상관없이 즐기 수 있었다. 특히, 초봄의 민어는 또 다른 별미였다. 50년 넘게 민어의 거리에서 영업 중인  민어 횟집에서 민어의 이런저런 맛과 함께 할 수 있었다. 

허기를 채운 여정은 이제 유달동에 속한 섬, 달리도로 향했다. 섬 모양이 반달과 비슷해 반달섬으로도 불리는 달리도는 현재 200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이 섬에서 봄 정취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정취 속에서 수십 년간개펄에서 낙자 잡이로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이제는 인생의 여유를 즐기는 노부부와 만났고 80살이 넘은 나이에 달리도 분교에 1학년으로 입학해 2명의 어른 학생들과 함께 학업에 열중하고 있는 할머니와 만날 수 있었다. 

84살의 초등학교 1학년생 할머니는 이제 강점기 학교에 입학했지만, 한글의 사용을 일제 금하는 일제의 탄압에 제대로 된 한글 공부를 하지 못한 한을 늦은 나이에 풀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어색하고 서툴지만, 할머니는 배움의 열정으로 하나하나 한글을 익히고 있었다. 그 어떤 봄 풍경보다 아름다운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할머니와의 작별 후 다시 유달산의 야경과 마주했다. 낮에도 밤에도 목포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아픈 역사를 함께하고 있지만, 해마다 멋진 봄 풍경과 만날 수 있는 목포는 그곳에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목포의 봄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목포에서의 동네 한 바퀴는 그래서 더 따뜻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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