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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22번째 이야기는 수도 서울의 중심부 광화문을 품고 있는 사직동, 예지동의 이야기가 담겼다. 몇 년 전 국정 농단 사태에 분노한 시민들의 10차례의 촛불 집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되기도 한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여정은 주변의 동네를 거쳐 광화문의 야경으로 마무리됐다. 

수년 전의 함성은 잠잠해지고 일상의 한 부분이 된 광화문 광장은 평온했다. 광화문은 조선시대 경복궁의 남문이자 정문으로 큰 상징성이 있었다. 광화문 앞거리는 각종 상점과 사람들도 분비는 번화가였다. 하지만 일제시대 경복궁 앞에 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광화문은 헐리고 그 주변의 모습도 크게 훼손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미 군정청이나 정부 청사로 활용되면서 중앙청으로 불리기도 했던 총독부 건물은 1995년 광복 50주년에 철거가 시작됐고 1996년 철거가 완료됐다. 

하지만 광화문의 원형은 쉽게 복원되지 못했다. 서울의 교통 중심부가 된 이곳에 광화문의 원형을 복원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2010년에 와서야 광화문은 제 위치에 과거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지금의 광화문 광장이 들어서면서 조선시대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광화문과 광화문 광장은 역사는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역사를 뒤로하고 지금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면서 각종 집회의 장소로서 서울의 또 다른 상징이 되고 있다. 






광화문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을 되돌아보며 여정은 광화문 서측에 자리한 사직동 골목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이 이어지는 동네 한편에서 막걸리를 이용해 발효한 빵을 과거 방식으로 만드는 빵집을 만났고 100년이 넘은 고택을 지키고 살고 있는 할머니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색다름을 느끼기 위해 찾고 있는 장소가 되었지만, 그 동네에는 수백 년 역사를 품고 있는 집들과 그 집을 지키는 이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동네를 벗어나 서민들의 애환 가득한 피맛골로 향했다. 조선시대 말이 드나들지 못하는 거리였던 이곳은 고관대작들의 타고 다니는 말들로 일반 백성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가 숨어있었다. 백성들은 모두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 골목의 주점과 식당에서 먹거리를 즐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하는 장소였다. 

지금은 그 지역이 개발되고 상당수 식당들과 가게들이 사라졌다. 남아있는 이들도 변화된 피맛골의 한 편에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빈대떡이나 생선구이 등 먹거리를 즐길 수 있느 곳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옛 모습이 사라진 것이 아쉬웠지만, 피맛골의 존재가 남아 있다는 것이 작은 위안이었다. 

옛것을 지키는 사람들은 주변 예지동의 시계 거리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수십 년간 한 곳에서 시계 수리점을 운영하는 가게들이 모여있었다. 그중 친구 2명이 함께 운영하는 가게를 찾았다. 청년 시절부터 시계 수리점을 한 이들은 지금도 시계 장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 이제는 수리가 힘든 과거 명품 시계도 이들의 손에 의해 수리되어 그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시계 수리를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여전히 많이 있었다. 모든 것이 발전하고 최신식 시계들이 보편화되었지만, 과거의 추억을 항상 간직하고 싶은 이들에게 예지동 시계 거리는 너무나도 소중한 장소였다. 

시계 거리를 떠나 다시 사직동으로 향한 발걸음은 황학정이라 불리는 이 국궁장은 고종이 자신뿐만 아니라 백성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직접 하명하여 설치하였고 지금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누구가 국궁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국궁장인은 예전 방식대로 활과 화살을 만들며 우리 전통을 지켜가고 있었다. 

국궁장을 떠나 출출함을 달래줄 서울식 추탕 식당을 만났다. 우리가 추어탕으로 알고 있는 이 식당의 추탕은 추어탕의 주재료인 미꾸라지 외에 곱창을 비롯한 다소 생소한 재료들을 넣어 추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다시 그 딸까지 3대가 이어가며 지키는 서울식 추탕은 오래된 가게의 고풍스러운 모습과 함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서울 광화문 일대는 발전된 서울과 조선시대부터 이어진 수백 년의 전통이 공존하고 있었다. 다만, 수백 년 전 이곳에 살았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이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진솔하고 가식 없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분명 이곳은 계속 변화하겠지만, 이 동네는 지키는 이들의 마음이 다치거나 바뀌지 않게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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