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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의 중요 사건들을 되짚고 있는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76회에서는 1968년 1월 21일 온 나라를 큰 충격에 빠뜨렸던 1.21 사태와 그 배경을 다시 살폈다. 이 사건은 북한 특수군 부대인 124군 부대의 정예요원 31명이 대통령 암살을 목적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도보로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 인근 500미터까지 침투하여 우리 군경과 교전을 벌인 사건으로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31명의 북한 특수군 부대 요원 중 29명이 사살되었고 1명은 북한으로 되돌아갔다. 유일한 생포자인 김신조는 이후 전향하여 목사가 되었고 지금도 생존해 있다. 생포된 김신조는 당시 기자 회견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이 그들의 침투 목적이었음을 거침없이 밝히며 국내외 언론의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북한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됐다. 북한은 특수전 부대 수천 명을 휴전 후 지속 육성하였고 그중에서 최정예 요원을 선발했다. 특수 훈련을 받은 이들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도보로 청와대 인근 북악산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이들은 야음을 틈타 산중에서 도보로 이동하였고 그 속도는 시속 12킬로 이르렀다. 100미터를 30초에 통과하는 속도로 당시 한겨울 엄청난 추위 속 산악지방에 눈이 많이 쌓여있었음을 고려하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우리 군. 경의 감시를 따돌릴 수 있었다. 이들은 최소한의 비상식량과 함께 중화기로 무장했고 향후 작전을 위해 민간인으로 위장할 수 있는 코트 등을 준비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한, 그들의 작전 계시일인 1월 21일은 일요일로 상대적으로 경계가 느슨할 수밖에 없었고 그 다음날이 대입 학력고사 일로 관심을 분산할 수 있었다. 이처럼 북한의 124군 부대의 준비는 치밀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이동 중 산중에 나무를 하러 올라온 민간인들을 만나면서 차질이 생겼다. 방송에 나온 김신조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우씨 4형제로 방송에 소개된 이들은 북한군에 잡혀 죽음의 위기에 몰렸지만, 4명의 민간인을 살해할 경우 그들의 침투사실이 노출될 수 있고 한 겨울 시체 은닉이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이들을 회유하고 풀어주게 된다. 북한군은 이들 회유책이 통할 것으로 여겼지만, 산에서 내려온 이들은 즉시 신고하였고 북한 특수전 부대의 침투를 우리 군.경이 인지할 수 있었다. 우씨 4형제나 우리나라 모두 천운이었다. 훗날 우씨 4형제는 김신조와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고 했다. 

민간인 생존자의 신고에도 우리 군경은 그들과 조우할 수 없었다. 북한군의 이동 속도는 상상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청와대 인근에서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하고 청와대로 향했다. 5개 조로 역할을 분담한 북한군은 경찰의 검문을 방첩대 요원이라는 핑계로 벗어나며 청와대로 근접했다. 이 상황에서 북한군은 그들 앞은 막아선 종로경찰서장의 집요한 추궁에 더는 견디지 못하고 무기를 난사하면서 교전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이 있었고 우리 군경의 사상자도 다수 발생했다. 산으로 도망간 북한군에 대한 토벌 작전은 1월 말까지 이어졌고 대부분이 사살되거나 자폭했다. 김신조는 교전 상황에서 홀로 벗아나 숨어 있다 군.경에 의해 생포됐다. 그의 증언으로 이 사건의 전말은 상세히 밝혀질 수 있었다. 

사건의 파장은 엄청났다. 정부의 심장부가 북한군에 침투를 허용했다는 사실은 온 나라에 큰 충격이었다. 마침 대통령의 안보 태세 강화 천명 발언 직후 벌어진 일은 정권에도 큰 충격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북한에 대한 보복을 강하게 다짐했고 북한 특수전 부대에 대응하는 특수전 부대를 창설했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 중 하나인 실미도 부대가 그 부대였다. 684부대로 칭해진 이 부대는 1.21 사태의 북한군과 같은 31명으로 구성되었고 강도 높은 훈련으로 북한에 침투하여 김일성을 암살하는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부대는 1970년 대 초반 남북의 긴장이 완화되고 대화가 시작되면서 그 존재 의미를 잃었고 부대원의 탈영과 자폭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이와 함께 다각도로 군사적 보복을 준비했지만, 미국의 반대로 실행에는 옮길 수 없었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전시 작전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군의 독자적 행동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권이 심상치 않은 움직임에 미국인 특사를 파견하고 경제 원조를 확대하는 방안으로 이를 무마했다. 당시 원남전을 수행하고 있던 미국으로서는 남북의 군사적 충돌을 막아야 했다. 여기에 1.21 사태 이후 북한 인근 해역에서 첩보 활동을 하던 미군의 해군 함정이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나포되어 82명의 미군이 북한에 억류되는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은 이들의 귀환을 위한 협상을 북한과 진행해야 했다. 

당시 북한의 이러한 도발은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갔지만, 그 이면에 미국은 월남전에 이른 또 하나의 전쟁이 부담스러웠다. 미국은 전쟁이 아닌 다른 해결방은을 우선시했다. 미국은 월남전에 다수의 군대를 파병한 한국의 반발도 진정시켜야 했고 추가 파병까지 이끌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미국은 월남전 파병의 조건이었던 군사, 경제 원조를 더 추가했다. 그 결과 한국은 자체 소총 생산 공장을 국내에 건설할 수 있었고 최신 소총인 M16를 자체 생산하게 됐다. 또한 미국의 원조를 통해 국방 강화를 위한 움직임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향토 예비군의 창설이었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예비군의 규모는 당시 250만 명에 이르렀다. 이는 중요한 군사적 자원이 됐다. 또한, 고등학교에서 교련이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어 학생 때부터 군사교육이 이루어졌다. 또한, 군 복무기간도 2년 6개월에서 3년으로 연장되었었다. 이에 더해 최초의 주민등록 제도가 도입되어 주민등록증이 전 국민에서 배부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 보다 철저한 주민등록 제도의 시작이었다. 이를 통해 안보 중심의 국가 시스템이 재정립되었고 역설적으로 박정희 독재권력이 공고히 되는 계기기 됐다. 이는 우리 현대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일이었다. 

북한의 이러한 도발에는 당시 국제정치 흐름의 변화가 있었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체제가 다극화 체제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미국과 소련은 극심한 대립에서 벗어나 상호 유화책을 펼치는 데탕트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소련에 반발하면서 소련과 중국의 관계가 멀어졌고 공산 진영이 분열 조짐을 보였다. 이에 북한은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모두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1965년 한일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한미일 동맹 체제가 구축되면서 북한은 국제질서에서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월남전에서 미국과 맞서고 있던 북베트남과의 우호관계로 영향을 주었다. 북베트남의 지도자 호찌민과 돈독한 관계였던 북한은 그의 참전 요청을 들어줄 수 없었지만, 다를 방법으로 우방을 도울 방안을 찾았다. 미국의 월남전 수행에 있어 다수의 군대를 파병한 우리나라에 대한 도발은 월남전에 대한 추가 파병을 막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실제 한반도의 긴장은 미국의 추가 파병 요청을 막는 요인이 됐다. 

이렇게 1.21 사태는 최고조에 있었던 남북 간의 대결 구도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정세 등이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다. 이렇게 조성된 남북의 긴장은 얼마 안 가 대화모드로 변화했고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으로 이어진다. 7.4 남북 공동성명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을 원칙으로 이루어졌고 남북 대결구도를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평화무드는 이후 남한의 박정희 유신 체제 구축, 북한의 김일성 유일체제 구축이라는 남북 독재 정권의 기반을 더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또 다시 남북의 극한 대립과 연결됐다. 즉, 1.21 사태는 한 가지 측면이 아닌 당시 시대 상황까지 복합적으로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극한 대립과 대화가 이어지는 남북 관계가 결코 남북만의 문제가 아닌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국제정세 속에 함께 놓여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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