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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서 스포츠는 땔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언론의 보도에서 스포츠는 중요한 카테고리를 차지하고 있고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스포츠도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인기 프로스포츠는 사람들의 여가 오락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되어 막대한 돈이 오가고 있다. 올림픽과 월드컵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는 그 규모와 파생되는 금전적 이익이 상상을 초월한다. 인기 스포츠 선수는 이제 연예인 못지않은 관심과 함께 부와 명예를 얻고 있다. 

이렇게 우리 삶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스포츠지만, 과거 스포츠는 나라를 전 세계에 알리고 나라의 위상을 드높이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스포츠가 정치는 별개의 영역이고 정치가 스포츠에 영향을 미치는 건 나쁘다고 하지만, 스포츠와 정치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이 크게 대립하던 동서 냉전이 절정을 이뤘던 1960년부터 1980년대까지 스포츠는 각 진영의 체체 우월성을 증명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이에 각 진영은 엘리트 스포츠는 적극 육성하며 국제 대회에서 경쟁했다.  

6.25 전쟁 이후 동서 냉전의 최전선에 있었던 남한과 북한은 스포츠에 대한 의미가 남달랐다. 스포츠에서 남북대결은 그 의미가 스포츠 그 이상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구기종목 축구는 남한과 북한 모두 가장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남한과 북한 외에도 각 나라 별로 축구 대표팀은 스포츠 종목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축구 국가대항전은 지금도 치열하지만,마치 전쟁과 같은 느낌이었다. 

 

 



축구에 대한 남한과 북한의 경쟁이 본격화된 사건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의 북한 선수단의 선전이었다. 당시 북한은 아시아를 대표하여 대회에 참가했지만, 조 예선 통과조차 불투명한 약체팀이었다. 북한은 예선에서 동구권의 강자 소련과 남미의 강호 칠레, 우승후보 이탈리아와 한조에 있었다. 북한은 첫 경기 소련전에서 0 : 3으로 패했고 칠레전 무승부로 탈락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이탈리아와 조 예선 마지막 경기에 나섰다. 이탈리아는 무승부만 해도 예선을 통과할 수 있었고 동방의 작은 나라 북한은 그들의 월드컵 전략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예상도 이탈리아의 손쉬운 승리였다. 

하지만 북한은 스트라이크 박두익의 깜짝 골과 악착같은 수비와 투지 있는 플레이로 이탈리아에 1 : 0으로 승리하는 월드컵 역사에 남을 파란을 연출했다. 이 패배로 이탈리아는 예선 탈락과 함께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조 최약체 팀에 패해 예선 탈락한 이탈리아 선수단은 귀국길에 공항에서 자국민들에게 토마토 세례를 받는 등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그만큼 당시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의 선전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이었다. 북한은 이어진 8강전에서 포르투갈을 상대로 먼저 3득점하고도 후반기 체력 저하와 뒷심 부족으로 3 : 5로 역전패하며 돌풍을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잉글랜드 월드컵 북한 대표팀은 지금도 월드컵사에 그들을 기억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은둔의 국가였던 북한 선수들이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에서의 경험은 후일담으로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이런 북한의 월드컵 돌풍은 남한에는 큰 자극이 됐다. 당시 축구에서 남한은 북한에 크게 밀리는 상황이었다. 북한과의 기량 차는 그들과의 대결은 고의적으로 회피할 정도였다. 체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당시 축구에서 북한에 패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경기에서 패하기보다는 기권을 택할 정도였다. 

남한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상상을 초월한 획기적인 방법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사실상 국가가 주도하는 축구팀을 탄생하게 했다. 양지 축구단으로 명령된 이 축구팀은 사실상의 국가대표팀이었다. 이 팀의 창단과 운영, 지원을 총괄한 건 나는 새로 떨어뜨린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국가기관인 중앙정보부였다. 당시 박정희 정권의 실세이자 2인자 였던 김형욱은 중앙정보부의 수장이었다. 그가 주도하여 창단한 축구팀에 큰 힘이 실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1967년 창단한 양지 축구팀에는 당대 최고 스트라이커 이회택을 시작으로 김호, 김정남 등 우수 선수들이 대거 포함됐다. 이들은 국가대표 선수와 은퇴 후 지도자로 큰 족적을 남겼고 지금도 축구계의 원로로 추앙받고 있다. 이런 우주 선수들을 모두 끌어모을 수 있을 정도로 중앙정보부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런 만큼 이 팀에 소속된 선수들은 그 어느 곳보다 풍족한 지원을 받았다. 

당시에는 그 존재조차 드물었던 천연 잔디구장에서 연습을 할 수 있었고 큰 보수도 받았다. 파격적인 수개월에 이르는 해외 전지훈련도 할 수 있었다. 군 미필 선수들은 이곳에서의 선수 생활을 군 복무로 인정해 주는 혜택도 있었다. 그런 만큼 양지 축구팀에 있는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과 철저한 생활 관리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북한과의 축구 대결에서 꼭 승리해야 한다는 특명을 받았고 국제경기에서 선전도 필요했다. 실제 국제 대회에서 입상하며 성과를 내기도 했다. 양지 축구팀은 북한과의 대결에는 무엇이든 이겨야 하는 시대적 사명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양지 축구팀은 1970년대 남북의 극심한 대결 양상이 완화되면서 그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강대강의 대결을 하던 남북은 대화를 시작하며 화해무드로 돌아섰다. 남북의 강대강 대결을 주도하던 김형욱 중앙 정보부장이 실각하면서 양지 축구팀은 자연스럽게 해체의 길을 걸었다. 결국, 양지 축구팀은 1970년 3월 그 존재가 사라졌다. 비정상적인 상황 속에 만들어진 팀이었던 양지 축구팀에게는 어떻게 보면 정해진 결말이었다. 이런 문제에도 이곳에서 배출된 선수들은 이후 우리 국가대표팀의 주축을 이루며 경기력 향상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렇게 축구는 우리 국민들의 큰 관심사로 중앙정보부에서 이를 관리할 정도의 위상이 있었다. 양지 축구팀은 해체의 길을 걸었지만, 이후 박정희 대통령 이름을 딴 국제경기를 창설하는가 하면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력 향상을 위한 지원이 지속되었다. 그 성과는 1970년부터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축구 맹주로 자리하는 원동력이 있다. 

북한과의 경쟁 외에 우리 축구는 일본과의 대결이라는 또 다른 과제가 있었다. 축구는 일제시대의 아픔이 있는 우리 민족의 울분을 달랠 수 있는 수단이었다. 축구 한일전은 지금도 그렇지만, 져서는 안되는 경기였다. 일본전 승리는 단순한 승리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한일전은 객관적 전력만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단적인 예로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대한민국과 일본은 홈 앤드 어웨이의 대결을 앞두고 있었다. 대결은 대한민국과 일본을 오가야 했지만, 일본과 국교가 정상화되지 않았고  일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 되는 시대적 상황 속에 일본 선수단이 우리나라에 발을 들여서는 안된다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국민적 의지가 더해지며 대한민국은 홈경기 개최를 포기하고 일본에서 2경기를 치르는 악조건을 자초했다. 

여러 가지로 불리한 여건이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이에 굴하지 않고 1승 1무의 전적으로 일본을 누르고 월드컵 출전에 성공했다. 일제시대의 아픔이 여전했던 당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일본을 이겼다는 사실은 국민적인 환영과 찬사를 받았고 국가대표 선수들은 영웅이 됐다. 이후에도 한일 축구 경기는 우리 국민들은 웃고 울렸다. 지금도 축구 한일전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금은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나온 양지 축구팀은  당시 어두운 시대상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국가 주도의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 속에서 자란 학연, 지연에 근거한 비정상적 인맥으로 이어지는 우리 스포츠계의 현실은 내부의 폭행인과 성폭력 등 부당한 대우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고 잘못된 시스템이 대물림됐다. 이는 인권이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해진 변화한 시대상과는 거리가 먼 파행적인 스포츠 시스템을 지금까지도 봐야 하는 현실이다. 스포츠에서 중요한 공정한 경쟁과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에만 집착하는 환경도 여전하다.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만, 국가 주도 엘리트 스포츠의 폐해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스포츠는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고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과 선수들이 모두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중앙정보부 축구팀은 역사의 에피소드가 아닌 일부 순기능이 있었음에도 우리 왜곡된 현대사의 교훈으로 남을 필요가 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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