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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내륙의 산간 지역에 위치한 순창군은 고추장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지역이다. 순창의 특산물 고추장은 지리적 표시제로 등록될 정도로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이름이다. 순창 고추장은 이제 고추장의 대표적 브랜드다. 하지만 이를 제외하면 순창은 도시와는 크게 멀게 보이는 시골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지리적 여건 또한, 도시 사람들이 접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렇게 멀어 보이는 순창이지만, 그만큼 지역의 특색이 잘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설날의 분위기 속 새해를 맞이하는 순창군을 찾아 그곳을 지켜가는 이웃들의 이야기로 여정을 채웠다. 섬진강 상류의 멋진 풍경과 출렁 다리를 지나며 시작한 여정은 엿 치는 마을이라는 마을 표지판이 붙어있는 마을로 이어졌다. 그곳에서 전통 엿을 만드는 한 가정집을 찾았다.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엿은 분주한 내부의 작업을 거쳐 외부로 엿을 내보내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모습이었다. 수십 년간 엿을 만들어오고 있는 부부는 새해를 맞이해서도 분주히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고소한 전통 엿의 달콤한 맛과 함께 본격적을 여정을 이어갔다.

순창을 대표하는 5일장으로 향했다. 일제시대였던 1920년대를 기원으로 하는 순창의 5일 장은 한때 지역을 대표하는 중요한 시장이었다. 지금은 그 명성이 다소 퇴색되었지만, 여전히 지역의 중요한 소통과 유통, 지역민들의 생활용품과 식재료 등의 공급원으로 그 기능을 하고 있었다. 전통시장의 정겨움 또한 지켜가고 있었다.

 



그 시장 골목을 따라가다 40년 전통의 맛집과 만났다. 식당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우동과 짜장면을 주메뉴로 하는 4천원의 가격으로 풍성하게 한 그릇을 채워주고 있었다. 오래되고 낡은 가게였지만, 방문한 이들은 정성 가득한 우동과 짜장면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고 시장의 정도 함께 마음속에 채울 수 있었다. 시장의 맛집을 지나 연탄가게의 배달 길을 따라갔다. 그 끝에서 오래된 유과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의 유과는 독특했다. 연타 불로 유과의 모양을 만들었다. 보통 기름에 튀겨 모양을 만드는 유과지만, 순창 5일 장의 유과는 연탄 불로 모양을 만드는 탓에 작업이 더디고 하루 동안 만들 수 있는 양도 한정되어 있었다. 이 연탄 불 유과는 제조의 대부분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어 작업의 난이도와 정성이 더 필요해 보였다.

그 과정을 지키며 이 유과 가게는 그 역사를 60년간 이어가고 있었다. 오늘도 이 유과 가게는 예전 방식 그대로 설날의 대목을 맞이하는 중이었다. 연탄불 유과의 명성은 이제 전국적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수많은 택배 물량이 대기 중이었다. 심지어 해외에서까지 이곳의 유과를 찾고 있었다. 순창의 연탄불 유과는 우리의 전통이 또 다른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5일 장의 북적임을 뒤로하고 한적한 시골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서 방앗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카페가 있었다. 지역의 관광명소를 만들어가는 관광 두레사업의 일환으로 생겨난 이 카페는 색다름과 함께 순창의 특산물로 만드는 다양한 메뉴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여기에 지역 농산물의 씨앗을 보관하여 품종을 보존하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었다. 이에 더해 이곳의 재료는 대부분 지역의 소규모 농가에서 구입해 사용하면서 지역 농가의 수익창출을 함께 카페였다.

아직 창업 초기이고 코로나 영향으로 사업에 어려움이 큰 탓에 운영자들을 별도의 일을 병행하면서 이 카페를 운영하는 중이었다. 젊은 여성들로 이루어진 카페의 운영자들은 힘든 현실이지만,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활기차게 보내고 있었다. 지역 상생의 이 카페가 그 목적과 청년의 희망이 모두 이루어지기를 기원했다. 

다시 나선 길, 오래된 단층 주택들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동네 골목길을 따라 걸었다. 그 골목 한편에서 전통 자수의 명맥을 이어가는 공방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모녀가 자수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과거 순창은 전통 자수 단지로 전국적인 명성이 있었다.

하지만 전통 침구류의 사용이 급감하면서 자수 단지도 점점 줄어 지금은 그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 이 자주 공방은 순창 전통 자수의 명백을 이어가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의 생계를 위해 자수를 했고 그것을 팔아 살림에 보탰다. 그렇게 삶을 위해 시작했던 자수는 이제 우리 문화 전통을 지켜가는 소중한 기술이 됐고 50년의 세월과 함께 그 기술을 딸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본 자수는 작품이었다. 작업의 내용 역시 한치도 방심할 수 없는 세심함이 필요했다. 이런 전통이 계승되고 지켜지는 이 공방 또한 그 의미가 남달라 보였다. 

다시 골목을 따라 걷다. 현대적 힙합 리듬과 랩 음악소리가 들리는 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그곳에서는 힙합 뮤지션의 복장을 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랩 연습이 한창이었다. 순창의 할미넴으로 불리는 이 할머니들은 귀향한 젊은 힙합 뮤지션의 지도를 받으며 그들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할머니들이 무슨 힙합이냐는 핀잔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이 할머니들은 자신의 삶이 녹아들어 있는 이야기를 랩으로 만들고 힙합 리듬에 실었다. 이 할미넴은 그들만의 음악이 아닌 순창을 대표하는 힙합 뮤지션으로 각종 행사나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할미넴의 멤버들은 힙합을 하면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희생하고 참기만 했던 삶의 무게를 벗어던지고 또 다른 인생을 열어가고 있었다. 힙합에 대한 강한 열정으로 뭉친 이 할미넴의 또 다른 노래가 기대됐다. 

여정의 막바지 섬진강 변의 한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의 독특한 돌담길이 방문자를 맞이하는 이 마을은 과거 우리 삶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이 마을에서 설맞이 준비가 한창인 가정집을 찾았다. 긴 세월의 풍파를 견디며 살아온 어머니를 만났다.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서 6남매를 키우고 장성시켰다.

그 과정에서 모진 세월의 풍파를 견뎌야 했지만, 훌륭하게 자란 자녀들이 있어 고통의 세월을 웃으며 추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인생의 말년에도 자식 걱정이 가득했다. 코로나 사태로 쓸쓸한 설날을 보내야 하는 걱정은 한참 다음이었다. 어머니는 삼베로 만든 수의를 미리 준비해 마지막까지 자녀들의 걱정을 덜어주려 하고 있었다. 그 어머니의 모습은 평생 자녀들 걱정에 노심초사하는 우리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였다. 순창에서 여러 이웃들을 만났지만, 어머니의 모습은 가장 빛났다. 

전북 순창의 여정은 마치 잔잔한 호수를 항해하는 듯 여유 있고 편안했다. 순창에서 만난 사람들은 큰 욕심을 가지기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소박한 이웃들이었다. 소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의 이웃들이 있어 순창의 겨울은 따뜻해 보였다. 이런 순창에서의 여정은 새해 희망으로 가득한 설날과 너무 잘 어울렸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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