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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6회] 수천년 역사의 섬, 강화도에서 만난 사람들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1. 2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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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을 지키고 있는 섬 강화도는 이제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2곳 개설되면서 섬이 아닌 섬이 되었다. 행정구역 상 인천에 속한 강화도는 수도권에 인접한 지리적 환경으로 주말이면 방문객들로 몸살을 앓기도 한다. 가깝게 느껴지는 강화도지만, 강화도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긴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이 섬을 대표하고 있고 삼국시대 이래 중요한 요충지로 대결의 장소이기도 했다. 고려 시대에는 수십 년에 걸친 몽골과의 전쟁에서 마지막 보루로 자리했다. 조선 말기에는 서양의 군대와 일전을 벌였던 전장이었고 일제의 조선 침략의 단초가 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근대사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다. 오랜 역사만큼 강화도에는 각 시대에 대표하는 유물과 장소가 가득한 역사의 보고이기도 하다. 

도시 탐사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6회에서는 역사의 섬 강화도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을 만났다. 

여정은 시작은 그 기원이 고구려 소수림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천년 고찰 전등사였다. 전등사를 품고 있는 정족산의 정족산성은 조선 말기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했을 당시 접전을 펼쳤던 전투지였다. 그 전투에서 조선군이 승리하면서 프랑스군은 강화도에서 철수했다. 프랑스 군 침략 당시 강화도에 있었던 다수의 역사적 유물이 약탈당하는 아픔도 있었다. 외규장각 도서는 1990년 들어 반환이 결정되었고 최근에서야 모두 우리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런 역사의 현장과 함께 하는 전등사에는 새해 소망을 이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소망을 뒤로하고 발걸음은 강화도를 지키던 해안가 둔대를 지나 그 장소가 제비꼬리 모양과 같다 해야 이름이 붙여진 연미정으로 이어졌다. 강화도는 수로로 수도 서울을 오가는 길목에 있어 군사적 요충지로 그 중요성이 컸다. 이에 강화도 곳곳에는 섬 방어를 위한 성벽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역사의 흔적을 지나 강화도 안으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서 근현대사를 연결하는 흔적들과 만났다. 과거 직물공장의 굴뚝이 시내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과거 강화도는 초창기 섬유산업의 중심지였다. 섬 곳곳에 방직공장이나 직물 공장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공장들이 대부분 사라지고 다른 건물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낡고 빛바랜 굴뚝은 강화도의 역사를 대변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에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낡고 오래된 방직공장이었던 조양방직 공장을 문화시설로 개조한 카페가 있었다. 이곳의 운영자는 폐허처럼 변해버린 공장 터를 사서 그 모양을 유지한 채 내부를 개조해 독특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 안에는 고급스러운 카페와 전시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변했지만, 겉모습과 건물의 주요 시설은 그대로 남겨주었다. 과거의 현재가 공존하는 이 공간은 이제 강화도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다. 한 사람의 집념과 의지가 근현대사의 흔적을 문화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이곳 말고 과거와 현재와 연결되는 공간은 강화도 곳곳에 있었다. 강화도 특산물을 기반으로 한 전병과자 공장은 옛 추억에 강화도만의 독특함이 더해진 색다름이 있었다. 70년을 이어온 이발관은 낡고 오래된 건물과 시설이 편안함과 옛 추억  가득한 공간으로 그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70년 이발관은 아버지로부터 아들 형제로 대를 이어 그 역사를 지켜가고 있었다. 

이제 노년이 된 형과 그보다 한참 어린 장년의 동생은 수십 년 단골손님들과 함께 오늘도 이발관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중이었다. 많은 나이차가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지만, 형은 아비지 같은 마음으로 동생을 보살피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동생은 그 형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다. 형제의 서로에 대한 각별한 마음은 이발관을 지켜가는 중요한 에너지였다. 

다시 오래된 골목을 걷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젓굴 갈비 식당과 마주했다. 젓국갈비는 여느 갈비와 달리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 갈비탕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중요한 새우젓 산지였던 강화도의 환경이 만든 강화도만의 맛이 젓국갈비에 담겨있었다. 음식문화가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반영하는 중요한 예였다. 

강화도의 맛과 함께 한 시간 후 과거 교과서에도 나오는 강화도의 특산품 화문석을 만드는 장인을 만났다. 50년의 세월을 화문석과 함께 한 장인은 여전히 화문석 제작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장인은 주재료인 왕골의 건조와 꽃 등으로 색을 내는 천연 색소를 활용한 염색, 베틀에서 옷감을 짜는 듯한 과정을 거치는 재조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홀로 해내고 있었다.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이 장인의 화문석과 함께 한 시간은 외롭고 고단한 시간으로 채워져 있었다. 

최근 그 기술을 인정받고 기술 전수자로 나라의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화문석과 함께 하는 그는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는 전통기술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기꺼이 그 어려움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최근에는 이를 응용한 인테리어 소품 등을 제작하면서 예술의 경지까지 화문석 제조를 발전시키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전시회를 하는 꿈을 가지고 이 장인은 오늘도 한 땀 한 땀 화문석을 만들고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강화도가 품고 있는 섬 교동도로 향했다. 이제는 다리가 건설되어 한결 가까워진 섬 교동도는 예로부터 드넓은 평야가 있는 풍족함의 섬이었다. 하지만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한과의 최근접 접경지가 된 이후 교동도는 항시 긴장감 가득한 장소가 됐다. 전쟁의 위험과 함께 하는 접경지인 탓에 섬은 각종 개발이 제한되는 등 삶의 제약이 많았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의 산업화와 동떨어지는 곳이 되었다. 

지금도 이 섬에는 과거 1950년대 이후 시간이 멈춘듯한 건축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섬의 시장은 대륭 시장이 과거의 한순간에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중요한 장소다. 지금은 레트로가 중요한 문화적 흐름이 되면서 과거 흔적들을 간직한 대륭 시장이 교동도의 중요한 명소로 떠올랐다. 방송에 자주 소개되고 이곳이 알려지면서 외지인들의 발길도 크게 늘었다. 대륭 시장은 현재와 단절된 삶을 살았던 교동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장소가 됐다. 

그 시장에서 지역의 명물인 강아지 떡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구순의 할아버지는 나이를 잊게 하는 떡매질로 보는 이를 놀라게 했다. 교통도와 인접한 황해도 출신의 할아버지는 6.25 전쟁 이후 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교동도에 살고 있었다. 

그 할아버지 외에 실향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친구들은 오늘도 저 멀이 보이는 고향땅을 바라보며 고향을 갈 수 있다는 희망 속에 하루하루는 살아가고 있었다. 아픔 가득한 삶이지만, 이들은 서로의 처지와 상황을 공감하는 이들과 함께 하며 시장 한편의 점포에서 삶의 희망과 활력을 얻고 있었다. 강아지 떡은 실향민들에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주는 소중한 먹거리였다. 이들에게 너무 늦지 않게 고향을 찾을 수 있기를 기원해 보았다. 

강화도에는 섬의 크기에 비례한 역사를 품고 있었다. 한정된 시간에 모든 것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수천 년의 섬 역사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은 섬의 역사를 지키며 그들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삶이 역사가 더해지며 강화도에게는 또 다른 천년의 역사가 쌓이고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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