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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인천 사이에 위치한 도시 부천은 경기 면적의 0.5% 면적에 불과하지만, 전국에서 서울 다음으로 인구밀도가가 높은 도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살고 있다. 오래된 개발된 상동과 중동의 아파트 대규모 아파트 이런 부천을 상징하는 곳이다. 과거 부천은 복숭아나무가 많아 복사골이라 불리기도 했었다. 지금 부천시의 시목과 시화는 복숭아나무와 복숭아꽃이다. 

부천은 우리 산업화와 함께 큰 변화를 겪은 곳이고 수도권의 대표적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4회에서는 그 어느 곳 보다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도시 부천의 이곳저곳을 찾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첫 여정은 현재의 부천을 상징하는 만화박물관을 찾았다. 20년이 넘도록 해마다 열리는 부천 만화축제는 부천을 대표하는 문화행사로 부천은 만화의 도시로 불린다. 여기에 해마다 열리는 부천판타스틱 영화제까지 더해지며 부천을 삭막한 도시가 아닌 문화의 도시로 자리하게 하고 있다. 그 중심지 만화 박물관은 우리 만화의 발전사는 과거부터 되짚어 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신문의 시사만화부터 최신 만화까지 만화와 관련한 모든 자료가 이곳에 있다. 특히, 장년층에게는 추억의 장소인 만화방을 재현한 전시관에서 과거의 향수를 가득 느낄 수 있었다. 남녀노소가 모두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만화 박물관의 떠 다른 장점이었다. 

 

 



잠깐 동안의 추억여행을 마치고 나선 길, 부천의 중심시 부천역을 지나 걷다가 이제는 찾기 힘들어진 생과자 가게를 만났다. 이곳에서는 마침 생과자 만드는 일이 한창이었다. 5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생과자 가게에는 이곳에서 직접 만든 과자들이 가득했다. 이제는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과자 역시 그 종류가 무수한 많아진 지금, 생과자는 과거의 우리 먹거리를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가업을 지켜가고 있는 노년의 사장님과 함께 늙어가고 있는 기계에서는 연신 과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다른 과자에서 느낄 수 없는 정성과 풍미를 가득 안고 여정을 지속했다. 

작은 공장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다 은 주전자를 옮기는 이를 만났다. 그는 인근 공방에서 은주전자를 만드는 장인이었다. 지금도 전통차를 즐기는 다도인들에게 소중한 소품 중 하나인 은주전자는 귀한 은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은판을 두드리고 다듬어 주전자 모양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매우 특이했다. 

그만큼 고난도의 작업을 해야 하고 오랜 경력의 장인의 손실이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은 주전자는 그만큼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이제 백발이 된 은주전자 장인은 어린 시절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세공 기술을 배웠고 지금은 이 분야의 장인이 되었다. 청년 시절 그는 가난한 가정환경 탓에 그의 부친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장인으로의 삶을 살면서 그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그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런 아픈 과거는 멋진 은 세공품으로 승화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서 그의 부친과 화해를 하고 있었다. 

다시 나선 길, 부천의 주택가 골목으로 여정이 이어졌다. 소사동 한 편에서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특별한 공간이 있었다. 소사공간이라 불리는 이곳은 지역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문화생활을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지역의 도시재생사업의 결과물인 이곳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곳이었다. 이곳을 떠나 걷다 "향수"라는 시로 유명한 시인 정지용의 시를 테마로 길을 꾸민 정지용 향수길을 만났다. 도시의 일상에서 만나는 시의 향연은 더 특별했다. 

소사동의 명소를 지나 다른 골목길을 걸었다. 그곳에서 오래된 만둣국 식당을 만났다. 마침 식당에서는 하루 장사를 위한 만두 빚기가 한창이었다. 황해도식 만두로 3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이 식당은 여느 식당과 다른 점이 있었다. 1대 사장님에 이어 새로운 사장이 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은 가족이나 친인척이 아닌 식당 사장과 손님이었다 했다. 

식당 운영을 하기에 힘이 부쳤던 1대 사장님은 단골손님이었던 지금 사장님에게 식당을 이어받아 운영할 것으로 제안했고 이 식당은 그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보통 식당의 주인이 바뀌면 단절될 수 있는 이들의 관계를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1대 사장님은 지금도 틈만 나면 식당에 들러 일을 도와주고 만두 비법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를 통해 이 식당은 과거의 맛을 지켜가고 있었다. 이렇게 가족보다 돈독한 이들의 관계는 사라질 수 있었던 황해도식 만두의 맛과 식당의 역사가 이어지게 하고 있었다. 마음 하편이 훈훈해지는 모습이었다. 

부천의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 그곳에서 동네의 풍경을 담는 화가 부부를 만났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의 노부부는 알고 보니 수십만의 SNS 팔로워가 있는 SNS 스타였다. 이들은 외신에서도 왕성한 SNS 활동을 하고 있었다. 남편이 그림을 아내가 그림에 들어갈 글을 담당하고 있는 이 노부부는 함께 할 수 없는 손자들에 대한 그리움과 각별한 마음을 표현할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했고 그렇게 그린 손자들의 그림을 SNS를 통해 공유하며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지금도 이 부부는 틈만 나면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 부부의 진성성과 정성 가득한 그림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말 그대로 SNS 스타가 되었지만, 이 부부는 일상 속에서 묵묵히 꾸준히 그림으로 만남을 지속할 뿐이다. SNS는 이 노부부가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자 손자들과의 세대차를 없애고 함께 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매일매일이 즐겁고 활기찬 삶을 살아가는 노부부는 건강도 지켜가고 있었다. SNS는 순기능을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여정은 오래된 칼국수 식당이었다. 이 칼국수 식당에는 9순을 넘은 사장님과 여전히 활발히 일을 하고 있었다. 예순이 넘은 늦은 나이에 남편의 건강 악화로 인해  가정의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이 칼국수 식당은 이제 가업이 되어 딸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구순의 사장님은 나이를 잊게 하는 활기찬 모습으로 일을 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당장의 생계를 위한 식당이었지만, 이제는 그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었다. 일할 수 있음이 이 사장님에게는 삶의 에너지였다. 

이렇게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는 부천 곳곳에서도 그 삭막함을 채워줄 행복한 모습들이 곳곳에 있었다. 매일매일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 같은 일상이지만, 그런 일상의 시간들이 쌓여 사람들은 행복을 그 삶 속에 채워가고 있었다. 행복이 결코 멀리에만 있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는 부천에서의 여정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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