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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5회] 남해바다 거제,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의 만남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1. 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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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거제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멋진 풍경을 담고 있는 남해바다의 섬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대형 조선소들이 들어섰고 지금은 조선 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금은 통영과 부산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건설되어 섬이라 할 수 없지만, 여전히 거제를 우리 마음속에 남해배다는 지키는 섬이다. 

거제는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1.4 후퇴 당시 흥남에서 피난민들을 가득 채운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기착지이기도 하다. 이 작전은 크리마스의 기적이라 불릴 정도로 전쟁사에서 손꼽히는 후퇴 작전으로 남아있다. 또한 6.25 전쟁 당시 포로들을 수용했던 거제 포로수용소도 중요한 현대사의 공간이다. 거제는 이렇게 우리 현대사의 한편을 차지고 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5회에서는 거제의 겨울 풍경과 함께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들을 만났다. 

첫 여정은 저 멀리 부산과 연결되는 다리이자 지역의 명물 거가대교가 보이는 바다 풍경과 함께 했다. 거제 특유의 작은 조약돌,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은 파도 소리는 거제 겨울바다의 멋을 더해주고 있었다. 거제의 바다와 함께 걷다. 외포 포구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겨울철 거제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대구를 건조하는 말리는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겨울철에서 특히 맛이 좋다는 대구는 최근 거제바다에서 조업이 한창이었다. 알을 품고 있는 약대구로 불리는 대구의 건조 장면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포구를 벗어나 오래된 주택가를 찾았다. 그곳에서 식당인 듯 아닌 듯한 식당을 찾았다.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식당은 40년 넘게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메뉴는 포구에서 본 대구찜과 대구탕이었다.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님은 시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비법으로 독특한 대구찜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장님은 외지에서 거제로 시집을 왔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 탓에 이런저런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하지만 살림을 나아지 않았고 힘든 현실에 좌절하기도 했었다. 이럴 때마다 그에게 가족은 큰 버팀목이었고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도 사장님은 식당 일과 함께 어 시장에서 장사를 함께 하며 부지런한 삶을 살아아고 있었다. 이제는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려 함께 일하고 있는 아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이제는 힘들었던 과거가 추억의 된 이 사장님은 더 나은 하루하루를 위해 오늘도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외포 포구를 나와 해안가를 걸었다. 그곳에서 중세 유럽풍의 성곽을 발견했다. 이국적인 이 성곽은 아직 미완성이었지만, 현재의 모습만으로도 그 위용이 대단했다. 더 놀라운 건 이성을 짓고 축조하고 있는 이가 한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지금도 나 홀로 성을 쌓고 있었다. 이 성의 이름은 매미성이었다. 

사연이 있었다. 2003년 우리나라에 상륙한 태풍 매미는 역대 가장 큰 피해를 입힌 태풍 중 하나였다. 거제 역시 큰 피해를 입었다. 매미성은 성을 짓고 있는 이의 삶의 터전이었다. 태풍 매미는 그의 주택은 물론이고 논과 밭을모두 파괴했다. 하지만 복구는 더디기만 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 피해를 복구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폭풍이 몰아쳐도 무너지지 않고 살의 터전을 지켜줄 성을 스스로 축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17년이 넘게 그 일을 해오고 있다. 그 사이 이 성은 규모는 점점 커졌다. 지금은 지역의 명소가 되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고 멋진 사진 포인트로 SNS 등에 알려져 유명세를 치르고 있기도 하다. 매미성은 이제 지역의 명물로 자리했다. 

이런 유명세를 바탕으로 수익 창출을 위해 입장료를 받거나 카페나 식당 등 각종 시설을 만들 법도 했지만, 성 주인은 그저 묵묵히 자신의 성을 만들어갈 뿐이었다. 오히려 방문자들의 더 멋진 사진 포인트를 만들어주기 위한 공간을 추가하기도 했다. 이 성을 방문하는 이는 부담 없이 거제의 멋진 바다 풍경을 가득 담을 수 있다. 그는 그들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 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는 지금도 멋진 매미성을 완성하기 위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완공된 성의 모습이 기대됐다. 

매미성을 지나 지역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체 사업의 산물인 관광 두레 꽃 차를 마시며 여정의 피로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지역의 관광사업에서 지역민들이 소외되고 자본이 있는 외지인들이 이익을 보는 것이 보통인 우리 현실에서 지역민들의 참여를 기본으로 하는 공동체 사업은 큰 의미가 있어 보였다. 

중반을 지나 여정은 저 멀리 거제의 명물 조선소가 보이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 한 편에서 특이한 공방을 발견했다. 어릴 적부터 바다 일을 했었다는 공방의 주인은 자신의 작업실에서 멋진 범선 미니어처를 만들고 있었다. 정교하고 다양한 예술적인 감성까지 가득한 미니어처는 그의 공방을 채우고 있었다. 그에게 미니어처 제작은 그의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는 한때 생계를 위해 어린 시절부터 했던 바다 일이 싫어 거제를 떠나기도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의 바닷사람 DNA를 완전히 그의 마음속에서 지워낼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돌아와 바닷사람으로 삶을 채워나갔다. 그가 만드는 미니어처는 그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었다. 지금도 그는 그의 작품과 함께 인생의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다시 시작한 여정에서 거제의 역사과 담겨있는 장승포 항구를 찾았다. 장승포 항구를 소개하는 안내판에서 앞서 언급한 1.4 후퇴 당시 흥남의 피난민들을 가득 채우고 장승포 항에 입항한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시 흥남에서 이 배를 타고 온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터전을 모두 버리고 낯선 땅을 찾은 이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전쟁의 위험에서 벗아났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 생계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피난민들의 막막함을 거제 주민들은 사랑으로 보듬어 주고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상당수 피난민들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런 현대사와 함께 하는 중식당을 만났다. 1951년 10월 문을 열었다고 하는 중식당은 2대 사장을 거쳐 3대 사장까지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었다. 식당의 외형과 시설은 시대 흐름에 따라 변했지만, 대를 이어온 맛은 계속 지켜지고 있었다. 피난민이었던 1대 사장님은 이웃들의 도움으로 이 중식당을 열었고 그의 아들이 이어받았다.

한때는 지역에서 손꼽히는 맛집으로 자리하기도 했다. 지금도 오랜 단골들이 찾고 있었다. 2대 사장님은 서울이나 대도시로 이전해 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지만, 이 식당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준 이 지역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가족이 큰 도움을 받은 거제가 소중했다. 그는 돈보다는 이 식당을 지키기로 했고 이 식당은 아들로 이어지고 있었다.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식당이었지만,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웃들의 정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또 다른 곳에서 70년 넘은 역사를 가진하고 있는 맞춤 옷 가게를 만났다. 이모부에게서 조카로 그 대를 이어온 이 맞춤 옷집은 기성복이 보편화된 요즘에도 인근 조선소 근로자들의 작업복 등을 제작하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 가게는 우리 산업과 거제의 발전과 함께 하는 곳이었다. 이모부에게서 기술을 전수받은 사장님은 지금도 그만의 방식으로 멋진 작업복을 만들고 있었다. 그의 이모는 아직도 이곳에 나와 그의 일을 돕고 있었다. 과거 어려운 가정사로 부모님과 떨어진 조카는 이모집에서 자라게 됐고 이모는 그 조카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었다. 그렇게 이어진 관계를 이들을 가족 이상의 존재로 만들었다. 이모와 조카는 이제는 어머니와 아들 이 이상의 존재가 됐다. 이 가게 역시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그들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지막 여정은 과거 우체국으로 쓰였던 건물을 개조해 만든 여행자들의 쉼터였다. 이제 기능을 다한 건물을 부수지 않고 재 활용한 이 건물은 여행자들이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특이하게 6개월 후 발송하는 느리게 받는 편지를 발송할 수 있었다. 방문자는 거 우체국의 큰 금고를 개조한 나만의 공간에서 편지를 쓸 수 있다. 자신에게 또는 소중한 누구에게 쓴 손 편지는 6개월 후 발송되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그 결과를 알 수 있고 빠른 것이 미덕인 지금의 현실에서 6개월의 기다림이 필요한 느리게 가는 편지의 존재는 방문자들에게 삶의 여유를 잠시 동안 가져다줄 수 있었다. 이 또한 자신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일로 보였다.

이렇게 거제는 많은 변화와 함께 변하지 않는 자연경관을 품고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지키고 있었다. 또한, 그곳에서 스스로 행복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 행복들이 모여있는 거제는 왠지 모를 푸근함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 때문인지 겨울 거제의 모습은 추워 보이지 않았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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