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는 탐사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01번째 여정은 최근 이어졌던 수도권을 벗어난 대구 달성군이었다. 달성군은 낙동강의 지류를 품고 있고 곳으로 역사적 전통과 청정 자연이 함께 하고 있다. 대구와 통합되어 광역시에 편입되었지만, 군 명칭을 유지하고 있다.
달성군에서의 첫 여정은 지역의 명산 비슬산에서 시작했다. 1000미터가 넘는 높은 고도의 산 정상에서는 지역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전망이 있고 계절별로 바뀌는 절경이 함께하고 있었다. 산행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셔틀버스는 전기차로 자연을 함께 배려하고 있었다. 비슬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고찰 대견사는 그 기원이 통일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곳이었다.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 스님의 이력도 함께 하고 이었다. 이 사찰은 오랜 역사 속에 임진왜란을 거치며 파괴되고 일제시대 파괴되는 아픔이 있었지만, 최근 복원되어 그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있다. 사찰의 건물들은 다시 지어졌지만, 오래된 유적이 사찰의 역사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를 떠나 지역의 시장을 찾았다. 시장 입구에서 흥겨운 전자기타 소리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긴 곳에 뻥튀기 기계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뻥튀기 기계를 운영하는 사장님은 평소에도 기타나 악기 연주를 하며 시장의 흥을 돋운다고 했다. 방문 시에도 그는 기타 연주로 시장에 흥겨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는 젊은 시절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시장에 정착했다. 시장 한 편에서는 배우자와 함께 떠 다른 가계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가게에서도 다양한 악기들이 있었다. 그는 일상 속에서도 악기를 연주하며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흥 가득한 시장에서는 3대 60년에 거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방앗간도 있었다. 그 방앗간은 할머니와 그 자녀 다시 손자로 이어지며 가업의 역사를 지키고 있었다. 젊은 손자는 가업을 지키는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등 시대에 맞게 가업을 발전시키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희망이 함께 하는 공간이었다.
시장을 떠나 마을의 벽이 벽화로 채워진 마비정 벽화마을로 여정은 이어졌다. 멋진 그림들로 채워진 벽화와 함께 마을 한편에 지금은 말라버린 우물이 그 마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전통을 지켜가는 장인을 만났다. 그는 지금은 보기 힘든 솟대를 만들고 만들고 있었다.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고 수호신 역할을 하는 솟대는 새 모양으로 만들어진다.
한때 목공 관련 일을 하던 장인은 목조 가구를 장식하는 기술로 생업을 유지했었다. 목공일은 어려웠던 유소년기의 기억을 지워내고 그를 지탱하는 소중한 생업의 방편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가구의 디자인인 바뀌고 자신의 일은 그 수요가 크게 줄었다. 그에게는 큰 위기였다. 그러던 그에게 마비정 벽화마을의 방문은 새로운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곳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기술을 활용한 솟대 제작을 하기 시작했고 삶의 일부분이 됐다. 지금도 그는 다양한 솟대를 만들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일을 하면서 욕심을 버리고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으로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그 역시 인생의 고비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았다.
다시 여정은 역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된 장소로 향했다. 마을 한편의 아궁이 위 가마솥에서는 지금은 보기 드문 술빵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븐에서 구워지는 빵에 익숙해진 우리에게는 과거 방식으로 빵이 만들어지는 장면이 낯설어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투박해 보이는 술빵은 호기심 어린 서선을 향하게 했다.
정감 어린 시골길을 걷다 400년 수령의 고목과 그 뒤편의 300년 고택이 눈에 들어왔다. 잘 보존되고 있는 고택은 조선 중기 유학자 김굉필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조선 중기 새로운 정치세력이었던 사림세력의 계보를 잊는 인물로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굉필의 고택은 그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이곳은 역사의 한 장면과 현재를 이어주고 있었다.
역사적 장소를 뒤로하고 낙동강변 한 마을에서 연근 수확이 한창인 현장과 만났다. 한 여름 연꽃으로 뒤덮였을받은 물이 다 빠져있었지만, 현장에서는 땅속 깊숙이 박혀있는 연근을 찾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연근의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 작업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현장에서 한 농민과 만났다. 그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연근 농사를 하는 마을은 과거 6.25 전쟁 후 전쟁 난민들을 모아 정착하게 한 곳이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살던 곳을 떠나 이곳에 정착했다. 이들은 전재민이라 불렸다. 나라에서는 이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농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빈곤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한 의지로 모은 사람들은 100여 가구의 마을을 형성했다.
지금은 상당수가 떠났지만, 그는 대를 이어 이 마을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다. 그는 모래 지형으로 농사에 부적합한 토지에 적당한 농작물을 찾다가 연근 농사를 생각해냈고 그렇게 시작된 연근 농사는 마을의 농작물로 자리했고 마을 사람들의 생계를 지탱하는 고마운 존재가 됐다. 그는 과거를 잊기보다는 그 삶을 기억하고 그로 인해 삶의 의지를 더 가질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과거의 힘들었던 시절이 그에게는 지금을 살아가는 힘이 됐다. 이주 당시 지었던 수십 년 된 집은 그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지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다시 나선 길 노모와 3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칼국수 식당에 다다랐다. 그 식당은 여느 3형제가 식당 운영, 조리, 중요한 식재료인 배추 농사를 전담하며 60년 넘은 식당을 유지하고 있었다. 3형제는 생계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 가정의 가업인 식당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자부심으로 가지고 있었다. 60년 내공의 칼국수는 온 가족의 노력과 헌신이 더해진 노력의 결정체였다. 그 맛이 더 특별해 보이는 건 당연했다.
여정의 막바지 낙동강변 사문진 나루터의 일몰 풍경이 함께 했다. 일몰의 풍경은 저물어가는 하루를 의미하지만, 기다림의 시간을 지나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함께 가지고 있다. 달성군에서의 여정은 과거의 시간들이 현재와 단절이 아닌 지금의 우리 삶과 연결된 한 부분임을 느끼게 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과거의 힘들었던 기억을 현재의 행복을 위한 자양분으로 추억의 한 부분으로 가지고 있었다.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그들은 얻었고 현재를 살아내는 힘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그 누구의 삶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만의 행복을 만들고 지키고 있었다. 행복이 결코 거창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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