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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의 삶을 찾아 나서는 동네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99번째 여정은 인왕산과 홍제천의 경관이 함께 하는 서울 서대문구였다. 가을을 지나 겨울로 향하는 홍제천의 풍경을 따라가며 시작한 여정은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진 상가 건물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건물 지하에 새롭게 조성된 문화예술공간을 만날 수 있었다. 

유진 상가는 애초 상업적 목적 외에 군사적 목적까지 고려한 건물이었다. 수십 년 전 건축 당시 보기 드문 대형 건물이었던 이곳은 전시에는 폭파하여 적의 이동을 막는 역할을 하도록 건축되었다. 이제는 그 목적이 희미해지고 낡은 건물이 되었지만, 그 지하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우리 현대사와 함께 했던 건물이 시대에 맞게 변화된 모습이었다. 유진 상가는 지나 산동네 정상에 올라 서대문구의 전경을 살펴보았다. 고층건물과 아파트, 오래된 주택들이 더해진 풍경은 세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서대문구의 전경을 뒤로하고 홍제천을 따라 걸으며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했다. 홍제천을 따라 세워진 내부 순환도로의 교각 사이사이에 설치된 문화예술 작품과 그 반대편의 운동시설이 묘하게 어울렸다. 한 편에서 운동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들은 인근 복싱장은 코치와 수강생이었다. 

 

 



그런데 수강생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칠순의 할아버지였다. 그는 젊은 시절 복싱 경기를 보며 챔피언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삶의 무게를 이겨내기 위해 꿈을 접었고 보통의 삶을 살았다. 이제 생계의 짊을 덜어낸 나이에 그는 복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복싱장을 찾았다. 그는 복싱장에서 복싱을 배우고 링에 서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고 했다. 칠순 복서의 열정은 꿈을 꾸는 것에 결코 정년이 없음을 느끼게 했다. 

칠순 복서의 열정과 그의 에너지에 힘을 얻어 다시 나선 길은 신촌의 번화가로 향했다. 인근 대학교가 밀집한 신촌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코로나 여파로 북적임 대신 한적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신촌 거리의 다시 제 모습을 찾기를 바라며 걷는 길에 먹음직스러운 떡들이 창가 넘어 보이는 떡집에 들어섰다. 이 떡집은 신촌에서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침 그 떡집에서는 손으로 빗는 찹쌀떡을 만들고 있었다. 장년들이라면 기억할 한겨울 밤 동네를 채우던 찹쌀떡 장수의 외침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합격을 기원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이 떡집의 찹쌀떡은 이 가게의 수십 년 역사가 응축된 상징물 같았다. 푸짐한 맡 고물로 채워진 찹쌀떡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다시 여정은 신촌의 대학가로 이어졌다. 대학가 골목에 학위복을 전문으로 하는 옷 가게에 시선이 멈춰졌다. 이 이곳은 졸업식에 입게 되는 학위복을 전문으로 하는데 3대를 이어가며 60년을 이어오고 있었다. 지금은 신촌 일대의 대학교를 물론이고 해외 대학의 학위복을 제작할 정도로 그 실력을 인정받는 곳이었다. 

취업난에 고심 가득한 대학생들이지만, 학위복을 입는 순간만큼은 그런 걱정을 덜 수 있기에 학위복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이곳이 학위복은 각 대학의 특성과 시대적 흐름에 따라 진화된 디자인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곳은 과거 전통과 변화가 함께 어울리는 장소였다.  하지만 학위복을 만드는 장인의 정성은 변함이 없었다. 

신촌을 지나 다시 오래된 단독주택들로 채워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 저편에서 클래식 악기의 소리가 들렸다. 호기심에 그 소리를 따라가다 한 단독 주택 앞에 섰다. 문이 활짝 열린 집 마당에서 관악기를 다루고 있는 주인을 만났다. 그는 집 한편에서 관악기를 수리하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전 직장에서 퇴사한 이후 평소 좋아하던 클래식 음악과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을 모색했고 늦은 나이에 해외 유학을 감행하며 관악기 수리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익힌 기술로 그는 공방을 열었고 인생 2막도 새롭게 열었다. 장년의 과감한 결정과 노력, 그를 후원한 배우자의 도움이 더해진 공방은 또 다른 꿈이 이루어진 특별한 공간이었다. 

다시 홍제천으로 돌아가 걷던 중 산책로 한편에서 열리는 작은 공연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 공연은 서울시가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원하고 시행하는 온 택트 공연이었다. 관객 수가 제한되지만, 지연 주민들에게는 문화공연을 볼 수 있고 코로나로 위축된 공연 탓에 무대가 사라진 예술가들에게는 자신의 공연이 기회가 주어지는 장소였다. 공연장은 크지 않았지만, 공연에 담긴 의미가 남다른 장면이었다. 

홍제천을 벗어나 홍은동의 도로가를 걷다 서울에게는 보기 드문 목공소를 만났다. 부자가 함께 운영하는 목공소는 전통 창호를 제작하고 있었다. 현대식 주택들이 보편화된 지금, 나무로 제작한 창호는 찾기 어렵다. 그와 비례해 우리의 전통도 함께 사라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 목공소는 그 전통을 이어가는 장소였다. 이 목공소에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고 아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며 10년을 함께 했다. 부자간의 서로를 위한 마음과 마음이 함께하며 만들어진 훈훈한 공기가 이 목공소를 채우고 있었다. 

전통을 지켜가는 부자의 목공소를 지나 서울에게 그 모습을 찾기 힘든 철도 건널목을 건넜다. 과거의 향수를 느끼며 걷던 길에 외관에서부터 과거 느낌이 가득한 돼지갈비 식당을 만났다. 장년들에게는 추억을, 젊은 세대에게는 레트로 감성을 느끼게 하는 드럼통 식탁으로 채워진 숯불구이 식당이었다. 이 식당은 팔순이 할머니 2분이 운영하고 있었다. 두부는 시누이올케 사이로 오랜 세월 멀지 않은 곳에 살며 도움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제는 힘에 부치는 식당 일이지만, 팔순의 시누이올케는 서로를 의지하며 식당을 지키고 있었다. 

이 노포는 이들에게는 힘든 삶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를 얻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수십 년 이어온 맛을 찾는 단골들의 방문이 이들에게는 반갑기만 하다. 과거 식당을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 이제는 추억이 된 이들은 지금도 식당을 지키며 서로의 온기로 인생의 황혼기를 함께하고 있었다. 수십 년의 내공과 각별한 마음이 가득한 이 식당의 돼지갈비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이 담겨 있어 보였다. 

이렇게 서대문구에서 만난 사람들은 과거의 전통과 그들의 역사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해가는 게 필연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요즘이다. 서울은 우리나라에서 변화가 가장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서대문구에서는 그것이 시대에 뒤떨어지고 부족하게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작은 오아시스 같았다. 서대문구에서의 여정은 옛것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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