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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7회] 세계 문화유산 남한산성이 있는 도시 경기도 광주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1. 6. 22.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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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남동부 내륙에 자리한 경기도 광주는 여러 고속도로가 지나는 도로 교통의 요지다. 잘 보존된 자연 경관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은 지역을 대표하는 역사 유적이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최초로 축조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 역사가 깊다. 조선시대 경기도 광주는 왕의 지방 행차 시 사용하는 행궁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요지였고 병자호란 당시 마지막까지 청나라 군에 항전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런 유서 깊은 도시 경기도 광주를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7회에서 찾았다.  

경기 광주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가는 경안천 습지 생태공원의 초록 풍경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경안천 습지는 한강 수계 팔당댐 건설로 형성되었다. 자연적인 습지는 아니지만, 시간이 흘러 이곳은 다양한 동식물들이 공존하는 자연의 보고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과 방문자들이 자연과 함께 하는 휴식 공간이 됐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비보잉 연습이 한창인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경기도 광주의 여러 명소들을 찾아다니며 비보잉을 선보인다고 했다. 가까이에서 본 그들의 춤은 절도 있고 패기가 넘쳤다. 청년들의 에너지 넘치는 모습과 함께 힘차게 경기도 광주시 그 속으로 들어갔다. 

경기도 광주의 상징인 남한산성 그 아래 한옥 주택들이 즐비한 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 길을 걷다가 한 가정집에 들렀다. 그 집에서는 지역의 맛을 지켜가는 이들일 살고 있었다. 그 이름도 생소한 효종갱, 일종의 해장국이 그것이었다. 효종갱은 남한산성 마을의 해장국으로 조선시대 그 인기가 커 남한산성에서 한양 도성의 양반들에게도 배달되었을 정도라 했다. 이는 전통 식문화를 전하는 과거 문헌에도 나와있을 정도다. 그만큼 효종갱은 특별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배달음식이기도 했다. 

이 가정집에서는 남한산성 효종갱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하고 있었다. 효종갱은 육수를 만드는 데 있어 그 재료가 다양하고 긴 시간에 걸쳐 조리에 세심한 손길이 필요했다. 그만큼 요리에 대한 정성이 필요했다. 이 집에서는 어머니에게 딸로 그 맛이 전해지고 있었다. 딸은 보다 깊이 있는 요리를 위해 조리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그 맛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또 다른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효종갱은 요리와 함께 하는 역사와 함께 특별하게 다가왔다. 이들의 노력이 계속 이어지길 기원했다.  

 



남한산성 아래 또 다른 마을을 찾아가는 길, 비 오는 날의 운치있는 풍경 속 거대한 비석이 보였다. 이 비석은 과거 조선시대 후기 큰 박해를 당했던 천주교들을 기리는 순교자 헌양비, 남한산성 일대에서는 수백 명의 천주교인들이 희생됐다고 전해진다. 남한산성은 전략적 요충지로 많은 군사시설이 있었고 감옥들도 많았다. 천주교인들은 그 감옥에서 투옥되거나 처형됐다. 지금 이곳은 천주교 순교 성지로 조성되어 그때의 아픔을 기억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는 장소가 됐다. 남한산성의 아픈 역사가 담긴 장소였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다시 나선 길을 한적한 주택가로 이어졌다. 주택가의 한 집에서 들리는 기타 연주 소리를 따라갔다. 그곳에서 할아버지가 그 손녀에게 기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곳의 기타는 긴 역사가 있었다. 이 집에는 수제 기타 공방이 있었다. 집안의 기타 제조 기술은 3대째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2대 장인이고 그 아들에게 기술이 전해졌다. 수제 기타는 2달에 4대 정도만 제작될 정도로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

그만큼 작업의 세심함이 필요하고 소리를 잡는 노력과 기술이 필요하다. 3대 아들은 과거 다른 일을 하다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받아 이일을 하고 있었다. 힘들고 고단한 작업의 연속이지만, 그의 기타가 연주자에 전해져 멋진 연주를 하는 장면을 보면서 큰 자부심을 가진다고 했다. 그 자부심은 힘든 여정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됐다. 이 집의 수제 기타는 현재 국내외에서 그 기술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 특별한 기타 선율을 뒤로하고 한적한 도로변을 걷다 나무 장작들이 가득 쌓인 장소에 이르렀다. 캠핑용 장작들 만드는 작업장인 이곳에서는 곳곳에 이곳 사장님이 그린 그림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중에서 어머니로 보이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사장님은 작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화폭에 담았다고 했다. 그에게 어머니는 소중한 존재였다.

그는 과거 큰 사업을 하는 사업가였지만, 큰 실패를 겪는 아픔이 있었다. 고통의 시간을 지나 지금의 장소에 정착해 장작을 만들어 파는 일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근처에 살면서 작업장에 함께 나와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는 아들의 실패를 보듬고 격려하며 그가 재기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장작을 만들어 팔면서 시골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하지만 그의 큰 버팀목이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 그는 큰 충격에 빠졌고 건강도 악화됐다. 지금은 그림을 통해 그 마음을 진정하고 일상을 되찾는 중이라 했다. 그런 그에 손으로 그려진 어머니의 그림은 그 어느 작품보다 큰 울림을 주었다. 

다시 나선 길, 작은 텃밭들이 집집마다 있는 마을을 걸었다. 그 길에 수확한 토마토를 집으로 옮기는 부자를 만났다. 그들을 따라 향한 집에서는 토마토를 이용한 토마토 고추장을 만들고 있었다. 애초 수확되는 토마토가 판매되지 못하고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토마토 효소를 만들기 시작한 일인데, 지금은 그 효소를 넣은 토마토 고추장으로 가공품이 늘었다. 7년 전 귀향한 아들이 아이디어가 더해져 이 집의 토마토 고추장은 중요한 생산품이 됐다. 아들은 토마토 고추장을 더 많이 알리고 해외에도 판매하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다. 40년 경력의 이 농사 토마토가 더 넓은 세상을 나아가길 응원했다. 

작은 계곡물이 흐르는 어느 마을로 향했다. 그 길에 만난 원두막 모양의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내부에는 오래된 LP판이 가득했고 클래식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그 근처 공원에는 여러 나라 국기가 걸리고 이색적인 풍경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도시에서 귀촌 한 부부가 전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이 부부는 집안 정원을 꾸미도 가꾸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귀촌에는 사연이 있었다. 20여 년 전 남편은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하늘이 무어지는 일이었다. 이에 남편은 생을 정리하고자 귀촌을 결정했다. 하지만 재검에서 암 판정이 오진이었음을 밝혀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귀촌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경기도 광주에서 긴 세월이 흘렀다. 원래 계획된 귀촌은 아니었지만, 부부는 하루하루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함께 작업하고 전원생활을 하면서 도시에서 찾을 수 없었던 삶의 여유와 또 다른 일상의 가치를 찾았다. 가끔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그런 다툼도 이들에게는 행복한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일상은 가치있게 채워지는 중이었다. 

더 깊은 산골 마을로 들어가 봤다. 인적이 드문 길에 세월의 흔적 가득한 오래된 집이 보였다. 집안 곳곳에서 수풀이 우거져있고 그냥 봐서는 빈 집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집은 모자가 운영하는 추어탕 식당이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아들은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독특한 식당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를 반대하던 어머니는 아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고향에서 어머니의 손맛으로 끓여지는 추어탕을 재현한 이 식당은 집 한가운데 자리한 우물에서 미꾸라지를 두어 흙냄새 등 잡 냄새를 제거하는 세심함이 있었다. 여기에 각종 식재료와 사람의 손길이 더해진 가마솥에서 끓여내는 육수 또한 특별함이 있었다. 여기에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식당의 분위기는 손님들에게 색다른 경험도 가지게 했다. 

이 식당 아들에게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아들은 젊은 시절 큰 식당을 운영하는 등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그 사업이 크게 실패하면서 긴 세월 방황했다. 그는 어린 아들을 어머니에 맡기고 이곳저곳을 떠돌기도 했고 노숙자의 삶을 살기도 했다. 그런 아들을 어머니는 기다리고 사랑으로 품었다.

긴 방황을 끝낸 아들을 경기도 광주에서 식당을 열었다. 어머니는 전남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수시로 이 식당을 찾아 아들을 돕고 있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으면서 아들은 재기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아들은 큰돈을 버는 것보다 이 식당을 통해 일상을 회복한 게 큰 행복이라고 했다. 경제적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던 아들과도 함께 할 수 있게 됐다. 그는 큰돈을 버는 것만이 행복이 아님을 깨달았다. 지금도 어머니는 아들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었다. 이런 모자의 각별한 마음이 담긴 추어탕은 특별했다. 

이렇게 경기도 광주에는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웃들이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가고 있었다.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이웃들은 가족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일상을 행복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행복이 멀리 잊지 않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경기도 광주에서의 시간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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