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동남부의 바다와 접하고 있는 울산광역시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선사시대 생활상을 유추할 수 있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반구대 암각화는 그 가치에도 보존을 위한 조치가 미흡했고 최근 완성된 댐으로 수장될 위기에 놓여있어 그 보존과 관련해 논란이 지속 중이다. 또한, 울산은 삼국시대 신라의 대표적인 무역항이었고 대외 교류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초기에는 일본과의 무역을 위해 개항한 삼포 중 하나로 대외 교역의 일선에 있었다.
이런 울산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후 대한민국 산업화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1970년대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자리했다. 지금은 공업도시를 광역시로 그 영역이 크게 확대되고 영남 지역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가 됐다. 울산은 선사시대부터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도시였고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다양한 장면들이 함께 하는 도시기도 하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26회에서는 울산을 찾아 그 이모저모, 사람들을 만났다.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간절곶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간절곶은 포항의 호미곶, 강릉의 정동진 등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인 일출 명소이자 멋진 동해 바다의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그 어느 곳보다 해를 일찍 만날 수 있는 탓에 새해 첫날 해맞이 명소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몰아치는 비비람에 바다 풍경을 마음껏 살필 수 없었다. 대신 간절곶의 명물인 5미터 높이의 대형 우체통은 건재했다. 그곳에서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바닷가를 벗어나 높은 곳에서 울산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함월루를 찾았다. 그곳에 서니 더 멀리 울산대교와 태화강, 고층 빌딩과 주택 등 울산시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비가 내리는 날씨였지만, 함월루 한편에서 울산의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는 화가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림으로 담은 울산의 모습은 사진과 다른 멋이 있었다.
울산의 명소를 지나 울산의 시장을 찾았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시장에는 정성 가득한 폐백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폐백 거리와 울산의 명물 곰장어를 만날 수 있는 곰장어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곰장어 골목에서 대를 이어 영업 중인 곰장어 식당은 공업도시 울산의 역사와 함께 한 곳이었다. 곰장어는 울산지역의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퇴근 후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한 잔의 술과 함께 하는 중요한 안주이자 먹거리였다. 곰장어 안주를 벗 삼아 노동자들은 동료들과 대화하고 또 다른 내일을 기약했다. 그 곰장어 식당은 그때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장년 이상의 단골들이 많았다. 지금은 지역의 별미가 됐지만, 그 안에는 소시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도심의 시장을 벗어나 울산을 가로질러 흐르는 태화강변의 한마을을 찾았다. 태화강은 산업회가 급속히 진행되는 과정에 크게 오염되어 죽음의 강이 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맑은 물이 흐르는 강으로 변모했다. 그 주변의 공원은 시민들의 훌륭한 휴식처가 됐다. 울산의 변화를 상징하는 강이기도 한 태화강변의 오래된 마을은 집집마다 꽃 정원들로 채워져 있었다. 화려한 정원은 아니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정성으로 조성된 집집마다의 정원은 골목을 화사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자신의 집뿐만 아니라 마을 곳곳에 정원을 만들고 함께 가꾸며 서로 소통하고 이웃 간의 정을 나누고 있었다. 삭막함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마음 따뜻한 모습이었다.
울산의 도시 풍경을 떠나 한적한 마을을 찾았다. 길을 걷다 오래된 한옥 고택이 보였다. 흙 돌담이 정겹게 느껴지는 그 고택은 100년이 넘는 역사가 있었다. 그 고택은 어느 가문의 종갓집이었다. 그 고택에서 동서지간의 두 여성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사연이 있었다. 이 집안의 큰 며느리는 기울어가는 가계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고 고택에서 식당을 시작했다.
집안의 반대도 있었지만, 큰 며느리는 뚝심 있게 식당을 했고 그 뜻을 막대 동서가 함께하면서 동업이 이루어졌다. 두 사람의 노력은 이 고택의 식당은 오리고기와 된장국이 함께 하는 특별한 식당이 됐다. 이렇게 생계를 위해 시작한 식당은 두 사람의 삶과 함께 하게 됐다. 지금도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고 아끼며 하루하루를 알차게 채워가고 있었다. 흔히 불편한 관계인 경우가 많은 동서 간이지만, 이 고택의 식당은 그 반대였다.
울산의 오래된 항구인 장생포로 향했다. 집집마다 벽화가 그려진 오래된 마을 길 장생 옛길을 따라가니 과거 장생포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고래문화마을에 닿았다. 그곳에는 박물관과 생활사를 알게 해주는 전시물들이 이 있었다. 그곳에서 뱃사람들로 긴 세월을 보내고 은퇴한 이후 관광해설사 일하고 있는 한 분을 만났다. 그는 지금은 사라진 고래잡이 어선, 포경선의 포수였다.
그가 한창 일하던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 장생포는 고래잡이의 전진기지로 번성했다. 그때 고래잡이 포수는 최고의 직업으로 급여가 선장보다 높았다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울산 시장보다 고래 포수가 더 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는 일이었다. 울산의 고래잡이는 그 역사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유서 깊다. 고래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있다. 단순히 고기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가죽은 물론이고 고래의 기름은 다용도로 활용됐다. 고대인들의 삶에서 고래는 아주 유용한 에너지 공급처였다.
하지만 번성했던 고래잡이는 무분별 한 남획으로 고래의 개체 수가 크게 줄어 멸종 위기에 빠지고 국제 협약에 따라 상업적인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울산, 그리고 장생포에서 과거 일이 됐다. 장생포 역시 고래잡이가 금지되고 인근에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쇠락했다. 지금은 고래잡이 역사를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지금은 금지된 고래잡이지만, 장생포의 고래잡이는 긴 세월 이어진 이 땅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의 일부분이었다. 장생포에서의 시간은 우리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장생포를 벗어나 울산을 대표하는 맛인 언양불고기를 만날 수 있는 언양으로 향했다. 식당들이 즐비한 곳에서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식재료로 사용한 커다란 소고기 덩어리를 옮기도 있었다. 그를 따라 식당을 찾았다. 그는 할머니와 함께 언양불고기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고기를 직접 발골할 정도로 식재료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맛을 손자에게 전해주며 3대째 이어지는 식당의 역사를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아픈 사연이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둘째 아들은 오랜 세월 연락이 두절되고 생사조차 알 수 없다고 했다. 졸지에 두 아들을 잃어버린 할머니는 큰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있다. 하지만, 그 아들들이 남긴 다섯 손주를 보고 다시 힘을 냈다. 할머니는 그 손주들을 위해 다시 일어섰고 식당을 운영하며 손주들을 키워냈다. 이 식당은 할머니의 한 많은 삶이 함께 하는 곳이었지만, 그 안에서 잘 자란 손주는 식당을 희망의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식당을 나와 여정은 한적한 농촌 마을로 접어들었다. 그곳에서 트랙터로 밭갈이가 한창이 한 농부를 만났다. 그런데 그 트랙터는 보통의 트랙터와 달랐다. 그 농부는 트랙터를 보다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조했다. 그를 따라 간 농장의 창고에는 다양한 농기구가 가득했다. 그중 상당수는 스스로 각종 부품을 구입해 만든 기계들이었다.
그 농부는 과거 특수장비 차량을 제조 판매하는 회사의 경영자였다. 하지만 암 선고를 받고 일을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했다고 했다. 그는 농촌에서 일하면서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농기계를 만들어내고 농사를 지으면서 삶의 또 다른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1년을 넘어 2년으로 6년이 됐다. 힘든 암 투병 중이지만, 그는 농촌에서 병마와 싸워 이겨낼 수 있는 힘들 얻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가 하루만 더 살아계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버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생의 끝을 준비하기 위해 찾은 농촌에서 농부는 제2의 인생을 열고 활기차게 그 인생을 지켜가고 있었다.
울산은 산업화의 중심 도시로 단기간에 큰 변화를 겪었고 그 어느 곳보다 많은 발전을 이룬 도시다. 지금도 우리 경제에서 울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고 인구 100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가 됐다.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 울산은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그 안에는 그들의 소중한 역사를 지켜가며 살아가는 이웃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 이웃들의 삶은 울산의 색을 도시의 회색빛만이 아닌 다양한 색깔로 채워주고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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