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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임실군은 전북의 중앙부에 자리하고 있어 사면이 전라북도의 다른 시군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임실군은 산지가 많고 섬진강의 상류를 품고 있다. 멋진 산세와 자연 풍경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전원의 풍경은 임실군을 대표하는 모습이다.

임실군과 정읍시 경계에 건설된 섬진강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인공 호수 옥정호는 지역을 대표하는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임실치즈는 지역의 대표 브랜드로 큰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67회에서는 봄 색깔이 짙어지는 임실군을 찾아 지역의 명소와 이웃들의 삶을 함께 살피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른 아침 임실의 명소 옥정호를 찾았다. 운무가 낀 호수의 모습은 신비로우면서도 장엄한 느낌이었다. 옥정호는 사시사철 멋진 풍경을 보여주는 곳으로 사진가들에게는 대표적인 사진 명소이기도 하다. 특히, 운무가 함께 하는 새벽의 옥정호는 사진가들이라면 한 번쯤 담고 싶어 하는 풍경이다. 이날도 운무로 덮인 옥정호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운무가 걷혀가는 풍경도 또 다른 장관이었다. 

임실군의 명소를 지나 어느 한적한 마을로 향했다. 골목길 한편에 국수를 널어 말리는 집이 있었다. 그 집에는 세월의 흔적 가득한 국수 공장이 있었고 노부부가 작업에 한창이었다. 부부는 50여 년 동안 국수를 만들고 공장을 운영했다고 했다.

이 집은 이 부부의 인생 대부분을 함께 한 국수공장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이 공장의 국수는 국수를 뽑아 자연 건조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옥상 한편에 마련된 건조장을 오가는 발걸음이 세월의 흐름 속에 얼마나 많았는지, 계단이 닳아 있었다. 부부는 수십 년의 세월 한결같이 국수를 만들고 말리며 계단을 오르내렸다. 이제 부부는 자식들도 장성했고 삶의 여유가 생겼지만, 국수 만드는 일을 놓을 수 없다. 그들에게 힘들고 고단한 삶을 안겨준 국수 공장이지만, 삶의 지탱하는 힘이 국수공장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부부의 마음 한편에는 후회가 남아있다. 국수 공장을  하면서 일에 치여 살면서 자식들에게 따뜻하고 자애로운 부모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조금이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더 표현하고 자식들에게 잘해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마음 가득 남아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행복한 추억이 됐다. 자식들,  그리고 자식들이 낳은 손주들과 사진은 부부가 힘을 네게 하는 에너지가 되고 있었다. 부부의 국수 공장은 그렇게 다시 힘차게 또 다른 내일을 위해 국수를 뽑아내고 있었다. 

임실군의 전통시장을 찾았다. 장날이 아닌 탓에 인적이 많지 않았지만, 오랜 연륜이 느껴지는 시장의 분위기였다. 그 시장의 역사를 품고 있는 순대 식당에 들렀다. 흔히, 피순대라고 하는 순대로 순댓국을 내어주는 이 식당은 3대를 이어온 말 그대로 뼈대 있는 노포였다.

지금은 26년 차 중년 부부가 가업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부부는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부부의 연을 맺고 식당 일을 시작했다. 풋풋한 20대 젊은 부부는 어느덧 4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그 사이 식당도 나이를 먹었고 자녀들도 장성했다. 고단하고 힘든 식당일이 반복됐지만, 부부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식당의 역사도 이어졌다. 부부에게 도착한 손주의 사진은 부부를 다시 힘내게 하는 영양제 같아 보였다. 부부의 행복한 미소를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임실군의 대표적 관광지이나 명소인 임실치즈테마파크를 찾았다. 드넓은 목장과 각종 체험시설, 치즈 생산 공장과 판매점 등이 있는 임실치즈테마파크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나는 토종 치즈의 최초 생산지라는 점도 의미가 큰 곳이다. 치즈테마파크의 여러 시설과 판매시설, 산양 목장을 운영하는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멋진 공원과 치즈 숙성과정을 직접 볼 수 있는 전시실도 인상적이었다.

그곳을 둘러보다 한 동상 앞에 서있는 마을 주민을 만났다. 그는 이 마을의 목사님이었고 동상의 주인공은 임실에서 치즈 생산을 최초로 시작한 외국인  지정환 신부님이었다.  두 사람은 기독교와 천주교의 가깝고도 먼 사이의 성직자였지만, 임실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해 함께 지역을  위해 일하고 우정을 쌓았다. 지정환 신부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지만, 목사는 지정환 신부와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목사님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지역민들과 함께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목사님에게 지정환 신부는 누구보다 임실군을 사랑하고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정환 신부는 1931년 벨기에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디디에 엇세르스테번스로 세레명은 디디에다. 흔히 디디에 신부로 칭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직자가 되기로 한 직후 6.25 한국전쟁으로 고통받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알고 우리나라에서 사목활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1959년 우리나라에 입국한 지정환 신부는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와 활동하던 신부에게서 한국 이름은 지정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61년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 성당 신부로 부임한 그는 그곳에서 간척지를 개간해 가난한 농민들에게 삶의 터전을 만들어주었고 1964년 임실군 임실성당 신부로 부임한 이후 임실군 주민들이 가난에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소득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 산양 젓으로 치즈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더 나은 치즈를 만들기 위해 프랑스, 이탈리아 등지에서 연수하며 기술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1969년 우리나라 최초로 치즈 생산에 성공했다.

이렇게 탄생된 임실치즈는 이후 특급 호텔 등에 납품되며 명성을 얻었고 토종 치즈로 전국적으로 유통됐다. 이후 임실치즈 공장은 지역민들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되기 시작했고 지정환 신부는 그 운영권을 협동조합에 양도했다. 그에게 치즈는 돈과 명성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닌 지역민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진심 그 자체였다. 이런 그의 진심은 지금도 존경받는 성직자로서 그의 이름이 남도록 했다. 

지정환 신부는 행동하는 양심이기도 했다. 그는 1970년대 후반 유신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해 체포되어 추방될 위기도 있었고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에서 이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더 가난하고 소외되고 권력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삶이었다. 지정환 신부의 이런 마음이 담긴 임실치즈테마파크는 그래서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이곳에서 새로운 꿈을 키워가는 귀농 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독일식 발효빵과 프랑스 가정식 메뉴가 혼합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도시생활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부부는 어느 날 귀농을 결정했고 아무 연고도 없는 임실군에 정착했다. 초기에는 귀농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후회도 하고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서로를 격려하며 임실군에서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지역에서 나는 밀로 만든 빵과 치즈테마파크에 어울리는 프랑스 가정식 요리를 더해 특색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중이다. 임실군은 이 부부에게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소중한 터전이었다.

한적한 시골길을 걸었다. 작은배 한 척이 보였고 그 배에서 작업을 하는 마을 주민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과거 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 근처에서 살고 있었다. 옥정호는 섬진강댐 건설로 생겨난 호수로 과거 마을이 있었다. 지역의 발전을 위해 댐이 건설됐지만, 대신 오랜 세월 대를 이어 마을에게 살아온 이들은 고향을 잃고 실향민이 됐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마을 주민에게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놀던 장소 등 물속에 잠긴 마을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는 가끔 배를 타고 지금은 섬이 된 과거 마을 뒷산을 찾곤 한다. 그곳에서 잠시나마 고향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게 작은 위안이 된다고 했다. 그는 마음속에 그의 고향을 품고 살고 있었다. 

임실군의 오래된 주택들이 자리한 마을을 찾았다. 긴 세월 한결같았을 마을 한편에 한 노포가 보였다. 40년이 넘었다는 이 식당에는 처음부터 이 식당을 지킨 어머니와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함께 일하고 이었다. 어머니는 수십 년 내공이 가득한 그의 손맛을 외국에서 온 며느리에게 전수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식당에서 함께 일하며 그 손맛을 상당 부분 익히고 주방 일도 능숙하게 하고 있었다.

흔히, 외국에서 시집온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 문화적, 세대적 차이로 인한 고부 갈등을 보여주는 방송이 많지만, 이 고부간은 마치 어머니와 딸 사이처럼 애틋하고 격이 없었다. 어머니는 머나먼 타국으로 시집온 며느리의 고충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며느리를 대하고 며느리는 이런 시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르면서 집안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그렇게 고부가 만들어가는 일상은 행복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초록의 잔디가 인상적인 공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축구공 놀이를 하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그 강아지는 마치 축구 선수들이 드리블을 하든 자기 몸 크기만 한 축구공을 능숙하고 다루며 공원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매우 신기한 장면이었다. 견주에게 이 강아지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견주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누군가에 버림받아 유기견이 된 강아지를 발견했다.

그는 그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바라보는 강아지를 외면하지 못하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고 가족이 됐다. 이후 강아지에게는 유기견이 아닌 레오라는 이름을 붙여졌다. 그렇게 레오는 거리 생활을 끝내고 자신을 사랑하는 견주의 반려견이 됐다. 견주는 레오를 위해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고 지극 정성으로 그를 돌봤다. 운동 삼아 공원에서 시작한 축구공 놀이를 하면서 레오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레오는 어느새 축구하는 강아지로 알려졌다.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 레오의 모습은 행복함으로 가득했다. 축구는 견주와 레오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촉매제와 같았다. 이런 레오가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원하며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섬진강 변의 마을 길을 걷다가 다슬기 체취 작업을 하는 가족을 만났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이 일을 했다. 이제는 배우자와 아들이 그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임실이 고향이 부부는 이 다슬기로 회 무침과 탕, 수제비, 또 다른 다슬기 요리를 곁들인 요리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청정한 자연을 자랑하는 임실군과 잘 어울리는 한상이었다. 

부부는 한 때 남편의 사업 실패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단칸방에서 4식구가 함께 생활하며 하루하루 걱정 속에 살기도 했다. 남편은 재기를 위해 밤낮으로 일했고 가족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남편은 남몰래 울음을 삼키며 하루하루를 견뎠다. 이런 남편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를 위해 아내는 내색하지 않고 울음을 참고 견뎠다. 그런 시간을 견뎌낸 가족은 다시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함께 하고 있다. 과거 고생을 웃으며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됐다.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은 이 가족에게 아주 어울려 보였다. 

임실군은 청정자연을 품고 있는 특색 있는 곳이었다. 발전의 속도는 느리지만, 대신 자연과 함께하며 마음의 편안함을 가질 수 있었다. 도시의 편리함과 화려함은 없지만, 임실군에는 행복을 만들고 그 행복을 지키며 살아가는 이웃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행복들은 임실군을 따뜻한 봄날의 온기로 채워가고 있었다. 임실군은 늘 봄날 같은 곳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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