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마을은 서울을 대표하는 여행지다. 근. 현대사의 흐름 속 개발의 광풍이 강하게 몰아쳤던 서울에서 얼마 남지 않은 한옥촌이라는 희소성이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서울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알려졌고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 중 하나로 발전했다.
이제는 한옥촌만이 아니라 곳곳에 카페와 전시관, 작은 박물관과 체험관이 있는 복합 문화 관광지로 자리를 잡았다. 물론, 관광지가 되면서 기존 거주민들의 삶이 침해당하고 일부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방문자들 문제, 주거지역에 각종 상업시설이 그 자리를 침범하면서 기존 원주민들이 밀려나는 젠틀리피케이션 현상 발생 등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우리 역사의 여러 단면들이 공존하는 북촌 한옥 마을의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곳에서 한옥 건축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소중한 곳이 있다. 종로구 가회동의 백인제 가옥이 그곳이다. 이 가옥은 근대 한옥 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크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곳이다.
한옥 마을 올라가는 도중 만난 독립운동가의 길
백인제 가옥은 애초 대표적인 친일파 이완용의 외조카 한상룡이 1906년 가회동으로 이주하고 주변 가옥들을 매입해 집터를 만들었다. 공사를 거쳐 1913년 완공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집을 짓기 위해 한상룡은 압록강 지역의 흑송을 직접 공수해왔다고 전해진다. 일설에는 일제가 경복궁의 전각들을 해체 매각하는 과정에서 그 목재들을 가져다 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백인제 가옥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자재들을 사용했고 매우 고급스럽게 지어졌다. 당시로는 그 입지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입지였다. 집의 구조는 기존 한옥과 달리 서양과 일본의 건축 양식을 상당 부분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우리 한옥 건축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한상룡은 이 집에서 수시로 총독부 고위 관료들을 초청해 연회를 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상용은 이 집에서 1928년까지 거주했고 이후 이 집은 개성 출신의 부호, 최선익이 사들였다. 그는 1932년 조선중앙일보는 인수해 독립운동가였던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했다. 조선중앙일보는 민족 언론사로 기능했고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직후 발생한 일장기 말소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그 의미가 크다.
이후 이 집은 1944년 외과의사이자 흥사단의 일원이었던 백인제가 인수해 거주했다. 백인제는 그의 이름을 딴 우리나라 대표적인 종합병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1950년 6.25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고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이 집에서는 백인제의 유족들이 거주했고 1977년 3월 서울시 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이후 이 집은 백인제 가옥으로 불리게 됐다. 백인제 가옥은 그의 아들을 거쳐 2009년 서울시가 매입해 2015년 일반에 개방되어 역사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이 집은 북촌 한옥마을을 대표하는 한옥 건물로 북촌 한옥마을을 찾는 이들이 즐겨 찾는 장소가 됐다.
5월의 어느 날, 북촌 한옥마을을 걷다가 백인제 가옥을 찾았다. 이 가옥은 굴곡진 우리 현대사와 함께 했다. 과거에는 그 역사가 누구의 집안에서 담겼지만, 이제는 모두가 함께 하는 장소가 되어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고 이곳을 살펴보니 장소 곳곳에서 여러 의미를 살필 수 있었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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