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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수사극의 원조인 수사반장의 프리퀄 수사반장 1958이 극의 후반부로 접어들었다. 수사반장의 축을 이루는 박영한 반장을 중심으로 한 수사팀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각 인물들의 서사, 극의 대립구조, 범죄 에피소드로 채워진 초반부 이야기와 달리 후반부는 훨씬 강한 악과의 힘겨운 싸움이 예상된다.

1, 2회에서는 최불암 배우가 연기했던 수사팀의 중심 박영한 반장과 원년 배우들의 실명을 그대로 등장 인물 명의로 사용한 김상순, 조경환, 서호정이 팀을 구성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들 4명은 악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로 뭉친 젊은 형사들이었고 타협을 모르는 어떻게 보면 무모한 청년들이었다. 자칫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부조리한 현실에 좌절하고 폭주할 수도 있었다. 

이런 4인방의 조력자이나 외풍으로부터의 버팀목이 된 이는 유대천 반장이었다. 그는 부정 비리로 가득한 경찰서에서 거의 유일한 청렴하고 강직한 인물이었다. 권력에 아부하며 출세 가도를 달리고 있는 경찰서장과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인물이고 악의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조직 폭력조직 동대문파에게는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였다.

 

 

 




열혈 청년 형사들의 조합 


그 때문에 유대천 반장은 해당 경찰서에서 외톨이 같은 인물이었다. 그의 청렴함과 강직함이 조직에서는 매우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었다. 유대천 반장은 자신과 함께 일할 팀원들을 스스로 찾았고 박영한을 시골 경찰서에서 서울로 불려들였다. 또한, 조직에서 융합하지 못하는 또 한 명의 아웃사이더 김상순이 팀에 합류했다.

이와 함께 시장에서 동대문파와 맞서 싸우는 청년, 조경환이 추가됐다. 시대적 배경인 1950년대 후반 출세길을 보장된 외국 유학을 포기하고 사회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던 경찰을 선망했던 엘리트 청년 서호정이 그들과 함께 하게 됐다. 이들은 모두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는 성공의 길을 포기하는 인물이었다.

그 시대는 불의할지언정 힘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흉도 아니었다. 그런 기회를 잡지 못하는 게 아쉬운 시절이었다. 박영한의 수사팀은 관행이라는 이름의 쉬운 길을 거부하는 인물들이었다. 당연히 기존 경찰 조직원들과 강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유대천 반장은 그들이 신념을 지킬 수 있도록 보호막이 됐다. 또한, 그들이 자제할 수 있도록 돕는 멘토가 됐다. 

강한 조력자의 존재와 함께 박영한의 수사팀은 거침없이 악과 맞섰다. 은행강도 사건을 해결했고 영아들을 불법으로 납치해 돈을 받고 입양을 시키는 비 인륜적인 보육원 원장을 단죄했다. 그리고 이 사건 속에서는 민생에 직접적 위협이 되는 은행강도 보다 그들의 출세와 영달에 더 도움이 되는 조폭 두목의 안위가 중요했던 경찰의 부조리, 사회 지도층과의 인맥을 앞세워 영아 살해 등 불법을 자행하고도 사회 저명인사로 행세하는 인물이 등장했다. 두 개의 에피소드에서 소위 자유당 때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담겼다.

이렇게 수사팀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박영한과 우정을 나누던 시장의 한 청년이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어머니와 월남해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살고 있었다. 전쟁과 이어진 가난한 환경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한 그는 글을 배워 어머니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어드리는 게 큰 소원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살기 바쁜 상황에서 공부는 사치였다. 

 

 

 

 




한 청년의 원통한 죽음 


이런 그에게 박영한이 손을 내밀었다. 조폭들과 결탁한 경찰에 적대적이었던 그 청년은 생전 처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정의로운 경찰을 만났고 그의 손을 잡았다. 그는 박영한과의 만남을 통해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도 얻었다. 하지만 이런 용기는 안타깝게도 그가 동대문파 2인자에게 살해를 당하는 원인이 됐다. 그의 죽음은 불의하고 힘 있는 권력에 정의로운 이들이 희생당했던 시대의 상징이었다. 

누구 범인인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상황에 박영한은 이전과 달리 자제력을 잃었다. 그는 당장 동대문파의 본거지를 급습해 용의자를 완력으로 제압하고 체포했다. 그는 그렇게 정의를 구현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당연히 권력의 비호를 받는 그들은 쉽게 법망을 벗어났다. 박영한은 범인을 눈앞에 두고 그를 단죄하지 못하는 상황에 좌절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힘과 열정에 더해 전략을 더해 단죄에 나섰다. 그는 당시로는 쉽지 않은 결정은 피해자 시신의 부검을 통해 혐의 입증의 단서를 찾았고 결정적 증거 확보에 나섰다. 당시 힘의 역학 관계를 활용했고 동대문파의 최종 보스인 이정재와 담판을 벌이는 대담함을 보였다. 악과의 거래는 박영한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이의 원통함을 풀어주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다고 이정재의 전횡에 눈감지 않았다. 박영한의 수사팀은 이정재가 군납 장교와 결탁해 빼돌린 군수물자를 탈취해 각종 보육 시설 등에 나눠주며 이정재와 그와 함께 하는 악의 세력에 통쾌한 한방을 날렸다. 이는 당시 최고 권력자의 측근 인사인 이정재와의 목숨을 건 대결을 의미하는 일이었지만, 박영한의 굴하지 않았다. 그는 정의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있었고 그와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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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전개,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이렇게 이정재를 중심으로 한 악의 세력과의 대결이 이어지는 듯 했던 극의 전개에 반전이 일어났다. 드라마는 4.19 혁명과 이어진 5.16 군사정변의 상황을 빠르게 이어지게 하며 시대를 1950년에서 1960년대로 빠르게 이동시켰다. 그 사이 거악으로 보였던 이정재 등 동대문파 세력들은 지도부가 대거 체포되어 단죄됐고 이정재 등 중요 인물들이 사형당하면서 그 조직이 와해됐다.

이제는 보다 정의롭고 힘없는 이들이 보다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했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은 불의하고 힘 있는 이들이 더 잘 사는 세상이었고 그들과 줄이 닿는 게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서민들을 솎이고 힘들게 하는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두 차례 혁명이 있었지만, 세상을 달라지지 않았다. 그사이 박영한의 수사팀은 더 경험이 쌓이고 더 실력 있는 수사팀이 됐지만, 달라지지 않은 사회는 그들의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수사팀의 정신적 지주인 유대천 반장이 괴한들에 의해 린치를 당했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박영한은 당장 그와 대립했던 동대문파를 의심했지만,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박영한은 유대천 반장의 과거 행적을 추적했고 그와 경찰서장의 관계를 파악했다. 

유대천 반장은 과거 광복 후 제헌국회의 헌법에 근거해 만들어진 조직인 반민특위 수사관을 일한 전력이 있었다. 반민특위는 친일파 색출과 처벌을 위해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 제헌국회는 제헌 헌법 101조에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라고 명시했다. 
 
반민족행위특별법이 그해 9월 만들어진 근거였다. 이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는 10월부터 활동에 들어갔다. 반민특위는 당시 국민들의 지탄을 받았던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수사와 체포, 재판을 진행했다.

 

 

4.19 혁명 사진

 




성공하지 못한 친일 청산과 친일 경찰 


하지만, 반민특위 활동에 부정적이었던 이승만 정부는 그 활동을 수시로 방해했다. 특히, 친일 경찰의 처벌과 관련해 그 방해는 더 극심해졌다. 심지어 경찰들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급습하는 테러를 하기도 했다. 광복 후 경찰은 물론이고 군과 행정부 조직에 다수의 친일 세력들이 존재했다. 광복 후 남한에 들어온 미군은 군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기존 일제의 통치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했고 당연히 그 인력들 상당수는 그 자리에서 일하도록 했다. 광복 후 단죄돼야 할 친일파들이 미 군정에서 국민들 위해 군림하는 일이 이어졌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라도 인적 청산이 이루어져야 했지만, 이승만 정권은 친일파 세력들과 손잡고 그 권력을 공고히 했다. 친일 세력들은 일제 강점기 이후 유지해온 그들의 기득권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부귀영화를 지속할 수 있었다. 그나마 친일 청산의 중요한 기회였던 반민특위의 활동 역시 1년여 만에 그 힘을 잃고 종료되고 말았다. 그렇게 친일 청산의 기회는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특히, 경찰의 친일 청산은 더 시급한 일이었지만,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가들과 국민들을 억압했던 상당 후 친일 경찰들이 그대로 존재했다. 일제강점기 악명 높았던 순사들을 기억하는 국민들에게 경찰이 좋게 보였을 리 만무했다. 또한, 정의를 구현해야 하는 경찰이 오히려 불의에 타협하고 정의를 억압했던 이들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은 분명 정상이 아니었다. 

불의에 타협했던 전력이 있는 이들이 약자를 보호하고 악에 맞서는 일을 하는 건 기대하기 힘들었다. 당연히 부정과 비리가 판을 치는 조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 정권 때 경찰은 불의한 권력의 하수인이기도 했다. 불법은 일삼는 조직폭력배를 권력의 측근 인사가 조직 수장이라는 이유로 비호했던 건 그런 이유였다. 4.19 혁명 당시 3.15 부정 선거에 분노한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고 발포를 하며 다수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경찰이기도 했다. 수사반장 1958의 종암 경찰서는 그런 경찰의 단면을 압축해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거악 친일 경찰 사조직 


그리고 부정과 비리의 중심에 친일 경찰이 있었다. 경찰서장은 친일 경찰의 사조직의 구성원이었고 그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지키고 각종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뭉쳤다. 유대천 반장이 린치를 당하는 시점에 그들 조직의 존재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진짜 거악의 존재였다. 

유대천 반장은 그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 투서를 지속적으로 제출하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친일 경찰들과 맞섰다. 과거 반민특위 수사권으로 일했던 그는 경찰 내 친일 경찰들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자유당 정권 시절에는 힘의 한계로 그들을 단죄하기 힘들었지만, 5.16 군사정변의 상황은 기회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친일 경찰의 조직은 단단했고 그들은 다시 새롭게 국가 권력의 중심이 된 군에 충성하며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했다. 종암 경찰서에 군 출신 인사가 서장으로 부임하는 장면은 큰 상징성이 있다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극의 초반부터 박영한의 꿈에 등장했던 양민 학살 장면의 비밀이 밝혀졌다.

새롭게 부임한 경찰서장은 학도병으로 6.25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박영한의 상관이었고 양민 학살의 실행자였다. 박영한은 총살을 끝까지 거부했지만, 학살을 막을 수 없었다. 그가 무기력하게 학살된 이들의 시신을 바라보던 시점에 상관이었던 대위의 얼굴이 등장했다. 이는 6.25 한국 전쟁 기간 있었던 각지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과 대규모 민간인 학살사건이 보도연맹 사건의 축소판이었다. 그 대위는 이후 군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이정재와 연관된 군납비리가 드러나며 파면됐다. 

그런 그가 경찰에 특채되고 친일 경찰과 연결되며 경찰서장이 되는 부조리한 상황이 발생했다. 박영한으로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양민 학살의 주동자이나 군납비리의 주역이었던 인물이 경찰 서장으로 영전하는 세상, 그 장면은 세상이 바뀌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 충격적인 건 신인 서장이 영전의 조건으로 유대철 반장의 린치를 직접 실행했다는 점이다. 이 또한 평소 대립관계에 있었던 친일 경찰 세력의 사주 결과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선악의 대립 구도는 정의와 불의 대결 구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불의한 세력을 중심에 광복 후 그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친일 경찰이 있음이 명백해졌다. 아울러 새로운 권력자들인 군과 결탁한 그들과의 대결이 한층 더 험난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큰 오점이라 할 수 있는 친일 청산 실패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친일파들은 일제 강점기 일제에 부역하며 사회 기득권이 됐고 광복 후에는 친미세력으로 냉전시대의 세계적 흐름에 편승해 반공을 외치며 그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했다. 이는 권력 구도가 바뀌어도 그 입지는 변화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는 친일 청산 이룰 수 있을까? 


특히, 반공은 불의한 권력과 기득권에 대항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중요한 무기가 됐다. 반공을 무기로 정권과 기득권에 저항하는 이들은 좌익, 용공 세력으로 몰았다.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독재시대 그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도 반공이 활용됐다.

반공은 자유 대한민국의 공통된 가치였지만, 오랜 세월 우리나라에서는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어 사용됐다. 그 반공의 방패에 숨어 친일파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대를 이어 유지했다. 민주화가 진전된 지금도 반공은 여전히 기득권들의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그에 근거한 색깔론이 더는 우리 정치에 다수 논리로 통용되지 않는다는 점은 달라진 점이다. 

이렇게 수사반장 1958은 광복 후 이루진 못한 친일파들의 단죄가 이야기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극 초반의 이야기 속에서 등장했던 여러 에피소드들이 친일 청산이라는 거대한 스토리 속으로 빠져들어왔다. 앞으로 남은 4회에서는 분명해진 거악과의 대결이 이야기의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한 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통쾌한 단죄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과연 박영한과 수사팀은 이전과 비교할 수없이 강한 거악과의 대결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들 수사팀을 잘 지켜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사진 : 드라마,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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