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서해안과 접해 있는 원 삼국시대 마한에서 그 지역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긴 역사를 간직한 지역이다. 일설에는 보령이라는 이름이 자연재해가 적어 붙어졌다고도 한다. 그만큼 예로부터 살기 좋고 풍요로운 바다가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보령시는 긴 해안선이 있고 서해안에서는 보기 드물게 긴 모래사장이 있는 대천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몰린다. 여기에 세계적으로 이름난 축제인 보령 머드축제가 매년 여름 열린다. 보령 머드축제는 지역의 대표적 축제로 보령을 상징하고 있고 보령을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자리하도록 했다. 이 보령시는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78회에서 찾았다. 178회는 그동안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출연한 김영철 배우와 함께 하는 마지막 여행..

충남 서남부에 자리한 서천군은 북쪽으로 보령군과 함께 하고 금강하구를 경계로 남쪽으로 전북 군산시, 익산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금강 하구둑이 있고 장항선 철도가 지나고 최근 서해안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천군을 지난다. 서천군은 넓은 평야가 발달해 있고 금강 하구둑 인근은 넓은 개펄과 함께 생태계의 보고로 기능하고 있고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인근에 위치하여 생태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도시 기행 프로그램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175회에서는 이 서천군을 찾아 그곳의 명소와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웃들과 만났다. 여정의 시작은 서천군의 넓은 개펄과 바다 풍경을 한 번에 살피고 걸을 수 있는 해양전망대와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스카이 워크가 있는 바다 산책로였다. 오래전 방풍림으로 조성된 소나무 숲..

충청남도의 서해안 최북단에 자리한 당진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으로만 바다를 접하고 있는 도시다. 당진시는 서쪽으로는 서산시, 동쪽으로는 아산시, 남쪽으로는 예산군과 접하고 있는데 북쪽으로는 바다를 경계로 평택시와 만나고 먼바다는 인천 옹진군, 경기도 화성시, 안산시와 경계를 이룬다. 그만큼 바다는 당진시와 빼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근. 현대사의 흐름 속 조수 간만의 차이가 큰 개펄 지역에 간첩 사업이 활발해지면서 바다가 육지로 다수 바뀌는 변화가 있었지만, 과거에는 밀물 때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이를 이용한 해상 교통이 더 발달했다. 이는 해상을 통한 대외 교류도 활발하게 했다. 조선 후가 서양의 배가 이 지역 바다에 출몰해 통상을 요구하기도 했다. 육상 교통이 불편한 탓에 중앙 정부..

2018년 2월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최초로 동계 올림픽이 열렸다. 그 장소는 강원도 평창군이었다. 평창은 3번의 도전 끝에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했고 훌륭히 올림픽을 치러냈다. 평창 동계 올림픽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남. 북 관계를 대화국면으로 전환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또한, 멀게만 느껴지던 평창군을 한층 가깝게 느껴지게 했다. 올림픽을 전후로 조성된 고속 열차와 고속도로 등 교통망은 도시인들이 이곳을 더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 평창은 태백산맥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어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졌고 평균 해발 고도가 600미터에 이른다. 이런 평창에 동계 올림픽은 머나먼 산천이라는 이미지에 갇혀 있던 지역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도시 기행 프로그..

경기도 양평군은 경기도 기초 자치 단체 중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양평군 대부분의 땅은 산림지역에 녹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지형은 양평군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만들었다. 실제 겨울철 추위 관련 뉴스를 보면 양평군이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양평군은 산과 계속, 강이 어우러진 청정의 자연을 자랑하다. 용문산은 양평을 대표하는 산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하다. 또한, 수도권의 중요한 식수원인 팔당댐이 근처에 있고 남한강이 흐르고 있다. 이 때문에 양평군은 청정한 자연과 전원의 풍경이 있는 교외 휴양지 이미지가 강하다. 이전에는 도시와 크게 떨어져 있는 먼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경의선이 개통되어 양평군을 보다 쉽게 찾을 수 있어 마음의 거리도 크게 줄었다. 도시..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은 1970년대 정부 주도의 강남 개발과 주택 공급 정책에 따라 생겨난 동네다. 당시만 해도 논과 밭, 하천변의 땅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 주거지역이 됐고 각종 고속버스 터미널과 지하철, 고속도로 사회 인프라와 각종 오피스 빌딩, 중요 기관들이 들어섰다. 여기에 대표적인 명문 고등학교들이 밀집한 8학군이 더해지며 반포동은 사회 저명인사들과 엘리트들이 사는 대표적인 부촌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반포동은 고가의 아파트들이 즐비하고 최근에는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사업이 진행되며 일대 아파트 가격 및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등 대한민국 최고 부촌으로서의 입지를 더 확실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최고 반포동이 생겨났을 당시부터 이어진 50년 역사의 흔적들이 하나 둘 사라져 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