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미 사측의 방해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준법 투쟁으로 맞섰던 푸르미 일동점 노조원들은 노력의 성과물이 나오지 않으면서 점점 지쳐갔다. 이는 노조를 이끌고 있는 이수인을 비롯한 집행부도 다르지 않았다.
특히, 사측이 노조활동시간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며 노조원들의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노조원들을 겨냥한 징계와 고소, 고발을 남발하자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갔다. 당장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노조원들이 흔들리는 건 당연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조원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노조 집행부와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싸울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하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노조에 가입하고 탈퇴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노조원들의감정은 더 상할 수밖에 없었다. 노조 시작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에게는 결코 곱게 보일 리 없는 행동이었다. 과거 사측의 지시대로 지금은 노조 핵심 인물이 된 황주임의 해고를 강력히 추진했던 허과장의 노조 가입에는 상당한 내부 반발이 있었다. 그는 노조문제가 커지면서 좌천당하는 처지에 몰리자 노조에 손을 내미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수인과 노조 집행부는 이런 사람들까지 포용하며 노조를 만들어가려 했다. 노조원들의 반발이 상당했지만, 이수인은 이들을 설득하며 어렵게 결속력을 다져나갔다. 여기에 더해 이수인은 그가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계약직과 파견직 근로자들까지 노조에 편입시켜 누구든 차별받지 않고 일하는 만큼의 대가를 받도록 하겠다는 애초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하지만 생계까지 위협받는 당면 현실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노조가 고사할 위기를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이수인은 구고신과 더불어 중앙노동위원회에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금지와 체불 임금 지급을 주 내용으로 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노조는 구고신의 전략이 적중하며 사측이 행하고 있는 노조탄압의 부당성과 위법성을 입증하며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승리는 노조에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노조원들 역시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사측은 그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제소했고 지리한 법적 다툼이 이어지는 건 불가피했다. 한 달 한 달 생활이 빠듯한 노조원들은 다시 좌절감에 빠졌다. 이수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이어갈 자신을 점점 잃었다.
이 과정에서 이수인은 가정을 돌보지 않으면서 커져가는 아내와의 갈등에 마음의 짐이 더 늘어만 갔다.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사람들과 자신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 커져갔다. 그들을 돕고 있는 구고신에 대한 신뢰도 점점 떨어졌다. 특히, 노동운동의 방법론에서 이수인은 구조신과 점점 대립했다. 구고신은 목적을 위해 다소 무리한 방법도 불사했다. 이수인은 과정까지 정당해야 함을 주장했다.
이런 두 사람의 대립은 푸르미 사측과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노조에 큰 악재가 될 수 있었다. 여기에 구고신이 과거 학생운동을 하던 당시 그를 고문했던 고문 기술자를 이웃에서 만나게 되면서 정신적인 공황에 빠지는 모습까지 보이자 상황은 더 나빠져 갔다.
그사이 푸르미 사측은 더 교묘하게 노조를 압박했다.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직원들과 문제를 일으켜 대기발령 상태에 있던 관리자를 일동점 수산물 책임자로 전보시키는 한편, 노조와의 협상에 무대응로 일관하면서 노조활동을 더 위축시켰다.
특히, 수산물 코너에 배치된 신임 과장은 인사상무의 라인에 있는 정부장을 대신하는 인물이었다. 이미 이용가치가 떨어진 정부장은 인사 상무의 시선에 철저히 배제됐다. 신임 과정은 인사상무의 지시대로 노조 간부인 황주임에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는 언사를 지속하며 자극했다. 그는 절친한 사이는 황주임과 일동점 노조 지부장 주주임의 사이를 이간질하는 비열한 방법까지 동원했다. 급기야 주주임은 참지 못하고 신임 과장에 폭력을 행사하고 말았다. 사측의 의도에 말려드는 일이었고 이는 푸르미 노조에는 큰 위기를 의미했다.
이렇게 점점 코너로 몰리는 푸르미 노조로서는 반격의 카드가 마땅치 않았다. 준법투쟁도 고객들을 상대로 한 선전전도 효과가 미미했다. 남아있는 노조원들은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며 함께하고 있지만, 이대로라면 노조활동 지속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이에 이수인을 비롯한 노조 집행부는 파업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돕고 있는 구고신은 이를 반대했지만,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는 노조로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는 사측이 노조를 더 탄압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더 밀리며 노조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이제 푸르미 노.사의 충돌은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 적과의 대결을 앞둔 상황에 푸르미 노조는 이수인과 구고신, 푸르미 노조원들과 비조원 노조원 내부의 갈등까지 겹쳐지고 있다.
이는 이수인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그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까지 달성하고자 했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전개다. 하지만 이수인은 더는 물러설 수 없음을 느꼈고 지쳐 포기하기 전에 뭔가 해야한다는 조급함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수인이 이끄는 푸르미 노조가 사측의 의도대로 힘을 잃고 무너지게 될지 다시 힘을 합쳐 극적 반전을 이룰 수 있을지 아직은 힘겨운 현실을 극복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사진 : 송곳 홈페이지, 글 : 심종열 (http://gimpoma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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