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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0번째 이야기는 한강의 지천 중랑천을 품고 있는 서울 중랑구가 주인공이었다. 중랑구는 용마산, 봉화산, 망우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랑천까지 더해 도시의 삭막함을 덜어주는 요소가 가득하다. 그 중랑구에서의 여정 역시 중랑천을 따라 시작됐다. 

마침 중랑천 변에서는 장미축제가 한창이었다. 중랑천 변을 따라 조성된 장미 군락과 산책길, 정원들이 유유히 흐르는 중랑천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장미축제 기간 운영되는 꼬마 기차는 중랑천을 보다 편안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중랑천변에서 열리는 장미축제는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조성된 장미 군락이 조성되고 그 규모가 커지고 이제는 서울을 대표하는 또 다른 축제로 자리했다. 여름의 길목에서 장미꽃 가득한 풍경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휴식의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공원 한 편에 자리한 근심 먹는 우체통은 색다른 힐링의 장소였다.

중랑천을 벗어나 중화동의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이제는 다세대 주택들과 아파트가 동네 곳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그 건물 숲 사이 자리한 한옥집에 눈에 띄었다. 이곳은 해주 최씨 집안이 터를 잡은 한옥집으로 3대에 거쳐 관리 보존되고 있었다. 대문 앞에 여러 개의 문패는 이 한옥집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집안 장롱에 보관된 고서적은 이 한옥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할아버지로부터 손자까지 이어진 한옥집은 내부의 모습을 보다 편하게 수리되고 계량되었지만, 그 원형은 한옥을 지키는 이들의 정성어린 손길로 잘 지켜지고 있었다.






동네의 역사를 간직한 한옥집을 뒤로하고 다시 들어선 골목길 산비탈에 배나무가 가득한 과수원과 만났다. 300그루의 배나무가 있는 과수원은 40년 넘게 과수원을 지키고 있는 노부부의 삶의 터전이었다. 과거 조선시대 임금의 진상품이었던 먹골배는 중랑구가 그 원산지였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더는 볼 수 없게 됐다. 중랑구의 과수원은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 소중한 장소였다. 

과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중랑구는 명소는 망우동 골목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주변에 학교들이 많은 망우동 골목길의 떡볶이 골목은 50년 세월을 담고 있었다. 지금은 가게가 줄었지만, 과거 학창시절의 추억을 다시 맛보려는 단골손님들과 어린 학생들이 함께 떡볶이의 맛을 함께 공유하며 세대 간의 간격을 좁히는 장소로도 의미가 있었다. 

그 떡볶이집에서 만난 망우동 납작 만두는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였다. 근처 공장에서 만들어낸 납작 만두는 수십년이 세월의 묻어있었다. 50년의 떡볶이집들과 40년 넘은 납작만두 공장은 서로 공생하면서 이 골목의 역사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골목에서의 추억 어린 장소를 뒤로하고 망우산에 올랐다. 한자로  잊을 망과 근심 우를 더한 이름인 망우산은 말 그대로 근심을 잊게 하는 산이지만, 1930년대 시립 공동묘지가 되면서 왠지 음산하고 무서운 장소였다. 최근까지도 망우리 공동묘지로 불리며 우리 삶과는 격리된 장소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이곳은 망우 역사문화공원으로 바뀌어 시민들의 또 다른 휴식처가 됐다. 산책로를 통하다 보면 과거 우리 근현대사의 인물들이 잠들어 있는 묘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동묘지의 이미지에 갇혀 우리가 모르거나 외면했던 근현대사의 흔적들을 되살아고 있었다. 

지금은 도산공원으로 이장되었지만,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를 비롯해 또 다른 독립운동가 한용운, 천재 화가였지만 불운한 삶을 살았던 이중섭, 어린이날을 만들었던 방정환 등이 이곳에 묻혀 있었다. 만약 공동묘지로만 알았다면 많은 이들이 모르고 지나쳤을 사실들이 문화공원이 조성되면서 더 많은 이들이 알 수 있게 됐다. 그 때문에 이곳에 자리한 묘소들은 우리 삶과 함께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과거를 새롭게 창조한 공간은 망우 역사 문화공원외에 또 있었는데 과거 채석장에 인공 폭포를 조성해 시민 공원으로 만들어낸 용마폭포공원은 파괴의 공간이었던 채석장을 새롭게 탄생시킨 의미 있는 장소였다. 용마폭포공원의 시원할 물줄기는 빨리 찾아온 여름의 무더위를 조금은 잊게 해주었다. 

다시 잊혀가는 추억의 장소를 찾는 발걸음은 맑은 선지 해장국집의 담백한 국물을 맛볼 수 있도록 했고 동네 한편에 60년이 넘은 기계와 씨름하며 국수를 만들어낸 노부부의 국수 공장과 연결됐다. 맑은 국물이 일품인 선지 해장국집은 어머니의 뒤를 이어 가업을 잇기 위해 직장을 정리한 아들이 해장국집의 맛을 지켜가고 있었고 이제는 주변에서 거의 사라진 국수공장의 80살이 넘은 사장님은 자신의 길지 않은 삶 동안 이 공장을 일부러 찾는 단골 손니들의 위해 지키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국수공장 사장님은 자신의  청춘과 노년을 함께 한 기계를 어루만지며 울컥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에게 국수공장의 기계는 그의 삶과 함께 한 동반자 그 이상의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국수 뽑는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힘겨워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이 기계는 어쩌면 황혼에 접어든 그의 삶 그 자체와 같아 보였다. 그의 일을 이어갈 사람이 없다는 아쉬움과 삶의 애환이 함께한 국수공장 사장님의 한숨과 눈물은 보는 이들의 마음까지 아프게 했다. 

이렇게 중랑구 곳곳에는 우리 삶과 함께 하는 추억의 장소는 물론이고 과거가 새롭게 창조된 장소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 장소들 중 몇몇은 세월의 더 흐른다면 더는 보거나 만날 수 없는 추억의 장소가 될 것 같아 마음 한편이 무겁게 했다. 그 때문에 중랑구 편에서 만난 장면 장면들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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