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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의 대도시 수원은 조선 후기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의 꿈이 함께 하는 도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직접 지켜보았고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이어진 수 맣은 위기를 극복하고 왕위에 올랐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는 왕권을 강화해 반대 세력을 힘으로 누르는 한편,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고 보다 나은 백성들을 삶을 위해 노력했다. 

수원은 정조의 사상과 철학이 함축된 도시였다. 수원을 둘러싼 수원성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술이 집약되어 건축된 신개념 건축물이었고 그 안에서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수도 한양에서 수원 화성으로 대규모 행차는 지금도 그 웅장함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수원은 정조에게는 정치적 기반이기도 했고 조선 부흥의 상징이기도 했다. 정조의 꿈은 그의 사후 사그라들고 말았지만, 그가 건설한 도시 수원은 큰 도시로 성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6번째 이야기는 수원 화성이 품고 있는 수원 행궁동의 여정들로 채워졌다. 이른 아침 수원 화성 성곽길을 걸으며 시작된 여정은 그 성곽길을 따라 바쁘게 등교하는 학생들과 만날 수 있었다. 수원 화성인근의 학교로의 등굣길은 수백 년의 역사가 함께 하는 성곽길로 함께하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학생들과 걷던 길에 많은 학생들이 들르는 식당을 만났다. 그곳은 학생들이 아침을 해결해주는 다양한 주먹밥이 메뉴로 있었는데 저렴한 가격과 가성비 좋은 맛으로 단골 학생들이 다수 있었다. 이른 아침 등교에 아침을 거르기 쉬운 학생들에게는 활력을 충전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학생들의 활기찬 등교길을 뒤로하고 행궁동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오랜 역사의 수원 화성에 안에 자리한 마을답게 그 안에 주택들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었다. 수십 년 된 포도나무와 어울리는 벽화, 긴 세월을 견뎌낸 담벼락은 이 마을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오랜 역사와 함께 마을의 사람들은 오랜 세월 이 동네를 지키고 있었고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정감 어린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100년 한옥을 찾았다. 곳곳을 보수해서 일부 원형은 사라졌지만, 뒤틀어져 삐거덕거리는 마루는 한옥의 역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한옥을 지키고 있는 노부부는 불편함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삼아 한옥과 함께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 노부부는 3자녀를 출가시키고 그들이 낳은 손자들과 함께 이 한옥의 또 다른 역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매년 찾아와 둥지를 만들는 제비들은 이 한옥의 오래된 손님들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임금의 지방 임기 거쳐였던 화성행궁을 찾았다. 이곳은 정조가 화성을 찾을 때마다 이용했는데 행궁 중에서 가장 큰 규모였고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매일 정조가 창설했던 친위부대 장용영의 무예를 재현하는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정조의 흔적은 수원성과 화성행궁 외에 수원의 남문시장에도 있었다. 9개의 시장이 함께 하는 수원 남문시장은 정조가 상업을 육성정책의 결과물이었다. 수원 남문시장은 기원이기도 하다. 건국 이후 사농공상의 엄격한 구분 속에 상업을 천시했던 조서에서 정조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한 상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나라 차원에서 육성하려 했다. 수원 남문시장은 그 산물이었다. 지금도 수원 남문시장은 많은 수십 년 전통의 가게들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장에 가면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은 즐거움은 맛있는 먹거리인데, 수원 남문시장에서 50년 넘은 손 칼국수집을찾았다. 칠순이 훨씬 넘은 사장님이 불편한 몸에도 새벽부터 손으로 반죽해 만든 칼국수는 수십 년의 내공이 함께하는 손맛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어 더 특별해 보였다. 

손 칼국수집에서 잠시 쉬어간 여정은 5킬로 넘는 화성을 30분 내로 둘러볼 수 있는 수원의 명물 화성 어차를 타며 다시 활력을 얻었다. 차량과 연결되어 운행되는 화성 어차는 수원 화성의 역사를 빠르게 보다 편하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 있었다. 현대와 과거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면이기도 했다. 화성 어차를 내려 특별한 공간으로 향했다. 여러 도예 공방들이 밀집한 도예 공방 거리는 수원 화성과 어울리는 전통이 숨 쉬는 거리였다. 그곳에서멀지 않은 곳에는 수원의 부자들이 살았다는 팔부자 거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의 모습은 사라지고 문구점들이 그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 문구점 중에 뜨개질로 매일매일의 시간을 채우는 사장님을 만났는데 그는 어려운 시간 마음 수양을 위해 시작된 뜨개질이 지금은 일상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그는 남자가 뜨개질을 한다는 핀잔을 받기도 했지만, 매일매일 그 뜨개질은 하면서 마음의 편안함을 얻었고 지금은 뜨개질로 만들어낸 모자를 이웃들과 나누고 있었다. 양로원 등에 기부한 모자만 해도 수천 개에 이를 정도로 그의 나눔은 이제 큰 산이 되었다. 지금도 뜨개질은 멈추지 않고 있는 문방구 사장님의 모습에서 수원에서의 특별함을 더 느낄 수 있었다. 

여정의 막바지 수원 왕갈비를 만났다. 간장을 사용하지 않는 독특한 양념이 특징인 수원 왕갈비는 이제는 수원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다. 왕의 도시였던 수원과 잘 어울리는 음식 같았다. 수십 년 전통의 수원 왕갈비집에서 그 맛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 수원 성곽을 하늘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을 찾았다. 헬륨가스가 채워진 기구는 마치 열기구처럼 높이 올라 수원 전체를 볼 수 있었다. 수원 성곽길을 밝혀주는 불빛은 수원 화성의 모습을 더 뚜렷하게 해주고 있었다. 그 안에 자리한 행궁동 마을의 모습도 낮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이렇게 동네 한 바퀴의 36번째 여정은 멋진 수원의 야경과 함께 마무리됐다. 수원 행궁동은 다른 동네와 다른 그 무엇으로 가득한 곳이었다. 정조의 흔적이 남아 있어 그럴 수도 있고 정조의 꿈이 이어지지 못한 안타까움도 그 안에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수원 행궁동의 여정은 정조의 꿈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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