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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고도성장을 이뤄낸 한국은 사회 각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단 시간 내 겪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의 충돌이 극심하게 일어났다. 그 충돌은 급격한 서구화로 그 주도권이 변화로 넘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빠른 변화가 익숙하고 그에 따라가야 함을 강요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해 불만을 가지기보다는 시류에 편승하지 못함에 발을 동동 구를뿐이다. 연일 언론과 매스컴에서 시대를 앞서가는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보도되고 그것이 성공의 척도임을 알려주는 상황에서 조바심이 날 수밖에 없다. 어느새 우리는 빠른 발전과 변화, 기존 질서의 파괴가 옳다는 생각이 마음 가득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에 비례해 사회악의 중요한 부분인 범죄도 지능화되고 다양화되며 예상 이상의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소위 묻지 마 범죄가 성행하거나 발전하는 시대에 편승한 보이스 피싱 등 사이버 범죄, SNS를 이용한 범죄가 새롭게 문제가 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 여성, 노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도 크게 늘었다. 그와 관련한 보도는 매우 자극적이고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한다. 범죄의 본질과 해결책보다는 범죄의 내용, 그 잔인함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요즘 세태다.

 

이런 범죄 양상의 변화를 사전에 예상한 이들이 과거 있었다. 12부작 드라마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에는 지금은 범죄 수사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인 프로파일링 기법을 최초로 도입하고 이를 범죄에 활용해 지금에 이르게 한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중요한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작 소설의 저자 중 한 명은 우리나라 경찰 최초의 프로파일러인 권일용 교수다. 그는 경찰로서 프로파일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했고 그 안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12부 중 6부가 끝난 드라마는 그 소설을 재현했다. 극적인 요소도 있지만, 가능한 원작에 충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드라마는 3 인물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처음 설치된 범죄행동 분석팀, 지금의 프로파일링 팀에서 최초의 프로파일러로 활약하는 송하영, 그의 조력자이자 과학수사 전문가인 범죄행동 분석팀 창설을 주도한 소신 넘치는 국영수 과장, 여성이지만, 에이스 수사관들이 모인 광역수사대에서도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 있는 윤태구 과장이 그들이다. 이들은 과거와 현재 묘하게 얽혀 있는 인연의 굴레에서 함께 하고 있다.

 

 

 

 

주인공 송하영은 매우 유능한 경찰이다. 명석한 두뇌와 운동능력도 겸비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에서 그는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는 강직하고 부조리를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는 강력사건에서 피해자 가족을 먼저 만나고 그들과 공감하려 한다. 사건에 있어 과학적이고 증거에 입각한 수사로 억울한 누군가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이는 과거 용의자에게 가혹행위를 하거나 증거를 만들어 죄를 입증하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던 경찰에서는 바람직한 수사 기법이 아니다.

 

그의 이런 강직함을 지위와 선후배 위계질서를 무시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된다. 이로 인해 그는 그의 관행이라는 이름의 부조리에 익숙한 직속 상관들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한다. 같은 경찰에서 그는 많은 적을 만들었다. 유연하기 못하고 원리 원칙을 꼭 지키는 그의 태도는 사회생활에서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무미건조하고 냉철한 인물로 보인다. 이를 두고 가족들은 그가 어린 시절 익사 위험에 빠져 있을 때 물속에서 사망한 시신을 본 트라우마가 원인이라 하기도 하지만, 그는 보이는 것과 달리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인물이다.

 

이런 송하영을 이해하고 그의 재능을 눈여겨 본 인물이 국영수 팀장이다. 그는 과학수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다. 경찰 내에서 그의 입지는 단단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먼 미래의 위험에 주목했다. 그는 앞으로 상상할 수 없는 강력 범죄가 발생하고 특히,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새로운 유형의 연쇄 살인 사건이 나타날 수 있음을 경계했다. 이를 위해 범죄자들의 범죄 패턴이나 심리 등을 연구해 미래 범죄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범죄행동 분석팀의 창설을 주장했다.

 

하지만 만성적은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경찰에서 현장 인력과 무관한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설득이 필요했다. 당장 범죄행동 분석팀, 프로파일링 팀 창설에 대한 필요성을 알려야 했다. 그 시간은 길고 험난했다. 국영수 팀장은 기존의 직위를 버리면서까지 새로운 조직 창설에 열성적이었다. 그를 이해하는 몇몇 상관들에 의해 국영수 팀장이 바라던 범죄행동 분석팀이 만들어졌다. 그의 열정과 미래에 해안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셈이었다. 국영수 팀장은 자신의 팀에 적합한 인물로 송하영을 선택했다. 송하영의 남다른 재능과 공감 능력을 그는 알고 있었다. 조직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도 비슷했고 이내 공감대사 형성됐다. 이미 경찰 조직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던 송하영으로서는 범죄행동 분석팀이 새로운 기회였고 자신의 꿈을 펼칠 장소였다.

 

국영수 팀장과 송하영은 그들에 대한 경찰 조직 내 따가운 시선에도 그들의 일을 했다. 모든 이들이 꺼려 하는 살인범 등 흉악범들을 인터뷰하고 기록을 쌓았다. 그들과의 인터뷰는 고역이었다. 자신들의 범죄를 합리화하고 오히려 피해자들이 원인일 제공했다는 식의 변명에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끔찍한 범죄 장면과 당시 그들의 느낌을 직접 만나 듣고 느끼는 건 정신을 황폐하게 하는 일이었다. 송하영은 묵묵히 그 과정을 견디며 범죄자들의 심리와 범죄 패턴 등을 연구했다.

 

그렇게 범죄 자료들이 쌓여감과 동시에 시대는 고도성장과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10년 내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국영수 팀장의 예상과 달리 범죄행동 분석팀이 창설되고 5년이 지난 시점에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범죄행동 분석팀은 그 범죄가 연쇄살인 사건임을 직감했다. 그동안 연구한 자료들과 범죄 양상, 해외 사례 등이 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사건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다. 범죄행동 분석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여전했다. 현장의 시선도 따가웠다. 국영수와 송하영은 도움을 주는 마음이었지만, 현장은 간섭과 월권으로 여겼다. 범죄행동 분석팀의 새로운 수사 방식은 환영받지 못했다. 기존의 시스템과 관행을 파괴하는 이들은 조직을 망가뜨리게 하는 요소들이었다.

 

이 시점에 그들에게 공감하는 인물이 등장했다. 유일한 여성 주인공은 윤태구 팀장이 그랬다. 그는 경찰 조직에서 여성으로서 수많은 남성들의 편견을 이겨내야 했다. 심지어 그를 동료가 아닌 이성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실력과 실적으로 극복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선배의 비위를 알리는 강단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성으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다. 일에 방해가 되는 긴 머리를 그는 자르지 않았다.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부조리에 맞선다는 점에서 윤태구는 국영수, 송하영과 닮은 환경에 있었다.

 

그 역시 처음에는 범죄행동 분석팀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윤태구도 국영수, 송하영을 경계했다. 하지만 국영수, 송하영의 능력과 열정, 진심을 알고 마음이 움직였다. 무엇보다 그를 여성으로 보지 않고 경찰로 대하는 송하영의 말과 행동에서 신뢰감이 생겼다. 과거 경찰 초년생 시절 남몰래 그를 도왔던 송하영과의 인연도 일정 작용했다. 우연히 함께 한 사건에서 성과를 내면서 윤태구는 드러나지 않지만, 점점 그들의 조력자가 됐다.

 

이렇게 점점 역량을 인정받는 범죄행동 분석팀에게 강력한 범죄가 등장했다. 두 명의 연쇄 살인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수십 명을 살해한 유영철과 정남규 사건이 배경이 된 두 연쇄 살인범과 경찰의 대결이 시작됐다. 범죄행동 분석팀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와 경험 등을 바탕으로 나름의 대처 방안을 마련했다. 그 방법이 채택되어 일부 성과를 냈지만, 범인 검거에서는 이르지 못했다. 범죄자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용의주도했다. 연쇄 살인범의 전형적인 패턴을 보이며 좀처럼 실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 사이 희생자가 늘어갔다. 그 사이 또 다른 연쇄 살인범이 엽기적인 범죄 행각을 예고했다.

 

범죄행동 분석팀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경찰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억누르고 있는 편견을 이겨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들을 지지하는 상관들의 입지도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들의 존재감이 필요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범죄행동 분석팀이지만, 그들은 내부와 외부의 적과 싸워야 한다. 그들을 지지하는 윤태구 역시 과거 악연이 있었던 비리 경찰인 선배와 다시 부딪히며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 주인공 모두 안팎에서 그들을 옭죄는 요소들을 걷어내고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들이 고군분투하는 사이 연쇄살인범은 더 범죄를 발전시키고 있다

 

극의 후반부에는 이런 시련을 극복하는 그들의 모습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이런 극적인 장치가 있지만, 드라마는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가 화면을 채운다. 세기말적 느낌이다. 사건을 해결하고도 그저 담담히 일상을 그릴 뿐이다. 범죄 수사극의 기본 요소인 권선징악보다는 왠지 모를 우울함이 극을 지배한다. 하선을 해결하면 할수록 또 다른 미로 속으로 빠져든다. 절대 사라지지 않은 범죄의 고리를 상징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탓에 사건은 해결이 되겠지만, 그 이면에서 등장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장면들이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흉악범죄는 변화하는 시대에 비례해 발전하고 있다. 연쇄살인 사건 등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범죄죄는 줄었지만,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자존감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는 다양한 악질 범죄들이 늘어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보이스 피싱, 금융 다단계, 금융 피라미드 대출 사기와 같은 지능 범죄는 큰 사회악이다. 또한 보다 우월한 지위와 힘을 이용해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 갑질 형태의 범죄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다. 과연 이런 범죄를 저지리는 이들이 드라마에서 다뤄지는 흉악범과 무엇이 다른지 혼란이 오기도 한다. 심지어 경찰과 검찰 등 정의를 구현하는 권력 기관에서도 비리와 각종 범죄 사건들이 나오는 현실에서 진짜 사회악이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드라마에서 다루는 유영철, 정남규, 그리고 강호순 등 연쇄 살인범들은 그 범죄의 잔혹성과 그들의 반 사회성에 사람들이 경악했다. 그들은 그들의 처지를 비관했고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지금 자신의 문제 원인을 외적인 요인에서만 찾으려 했고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증오와 불특정 상대에 대한 범죄로 이어졌다. 그들은 자신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하고 있지만, 정작 범죄 대상은 힘들게 하루하를 살아가거나 항거 불능한 여성이나 노약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범죄는 점점 대담해졌고 쾌락의 도구로 살인을 이용했다. 이들은 검거가 된 이후에도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피해자들을 조롱하거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뻔뻔함을 보였다.

 

이런 자들을 상대하고 그들에게서 자료를 얻어내는 건 분명 고통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프로파일러들은 그만큼 극한 직업이다. 최근 방송이나 드라마에서 프로파일러가 자주 소개되고 그들을 동경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일의 진짜 본질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 이 드라마는 프로파일러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들은 절대 멋지지 않고 악에 맞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여기에 그들을 둘러싼 잘못된 시선, 잘못된 시스템, 잘못된 권력관계, 잘못된 조직과도 싸워야 한다. 이 드라마는 그런 과정을 거쳐 진짜 프로파일러로 자리 잡는 이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마치 다큐를 보는 듯한 느낌도 있다. 결코, 드라마를 단순한 범죄 스릴러나 추리극 정도로만 봐서는 안 될 이유다. 각종 흉악 범죄마저 흥밋거리가 되는 시대에 이 드라마는 악의 본질과 그 악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일면들을 함께 살필 수 있다. 기존 드라마와 다른 색깔로 그려지는 이 수사극이 그에 걸맞는 차별화된 메세지를 전달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사진 : 드라마 홈페이지,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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