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348회] 준비하지 못한 즉위에도 통합, 화합의 정치 펼쳤던 세종대왕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은 그의 뛰어난 자질과 함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수립한 강력한 왕권이 있어 성군이 될 수 있었다는 게 보통의 평가다. 세종대왕은 건국 후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왕권과 신권의 대립했고 왕자들 사이에서도 대립이 있었다. 이는 유혈 충돌로 이어졌고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조선을 설계한 개국공신 정도전도 권력 투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조선 건국한 이성계 역시 사실상 아들 이방원에 밀려 권자에서 물러나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했다. 

치열한 권력 투쟁을 이겨낸 이방원은 정도전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정승들이 주도하는 정치 시스템인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왕이 주도하는 6조 직계제를 채택하며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다. 왕권에 위협이 되는 세력은 외척이든 공신이든 숙청했다. 왕권에 도전할 세력은 없었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런 체제 속에 왕위에 오른 세종대왕이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다 할 수 없었다. 

세종대왕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 건국 후 출생한 임금이라는 상징성이 있었다. 세종대왕 치세부터 조선은 왕위가 아버지에서 아들에게 이어지기 시작했고 창업의 시기를 넘어 수성의 시기로 넘어갔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유년기는 치열한 정쟁과 권력 투쟁과 함께 했다. 

세종대왕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은 조선 건국 후 아버지 이성계를 물론이고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자 신덕왕후가 되는 강씨와 대립했다. 개국공신 세력의 중심인 정도전과의 정적 관계였다. 이성계는 조선 건국 후 그의 후계자 선정에 있어 먼저 세상을 떠난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의 아들들을 배제하고 신덕왕후의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했다.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세우려는 신덕왕후의 야심과 신권 중심의 국가를 꿈꾼 정도전의 정치적 계산, 자신의 힘을 넘어서려는 첫째 부인 아들들, 조선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이방원에 대한 아버지 이성계의 견제 등이 결합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방원과 그 가족들의 정치적 입지는 물론이고 신변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졌다. 왕위를 이어받지 못한 왕자들은 운명은 대부분 순탄치 않았다. 왕자들은 현 집권세력에게는 잠재적인 위협 세력이었다. 역모를 죄를 쓰고 숙청당하기도 했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대외 활동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숨죽이며 때를 기다려야 했다. 그전에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조선 역사 기록에 이방원은 그의 아들을 각각 따로 다른 집에서 살도록 했다. 혹시 그들의 가족에 변고가 생겼을 경우를 대비한 일이었다.

세종대왕은 이런 팽팽한 긴장감 속에 어른 시절을 보내야 했고 정치적 격변기와 함께 했다. 세종대왕이 어린 시절 조선의 왕위는 할아버지 이성계에서 큰 아버지인 정종, 그리고 아버지 태종 이방원으로 이어지는 변화가 있었다. 그 변화는 정상적인 계승이 아닌 아버지 이방원이 승자가 된 2차례 왕자의 난이 중요한 원인이었다. 세종대왕은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 이성계와 아버지 이방원이 서로에 칼을 겨누며 대립하는 모습을 봐야 했고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된 부자간의 갈등도 경험해야 했다. 또한,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냉혹한 면도 직접 봤다. 세종대왕은 어린 시절 피도 눈물도 없는 가족 간에도 죽고 죽이는 권력의 속성을 경험했다. 그에게는 큰 충격일 수 있었다.

세종대왕은 충녕대군으로 봉해졌고 12살의 나이에 훗날 소헌왕후가 되는 심씨와 혼인했다. 이른 나이에 혼인이었지만, 세종대왕으로서는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고 의지할 대상이 생겼다. 실제 세종대왕은 소헌왕후를 지극히 아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세종대왕은 또다시 정치적 격변에 휩싸이게 된다. 

그는 애초 왕위 계승의 1순위가 아니었다. 그 위로 2명의 형이 더 있었고 첫째 형 양녕대군이 세자로 있었다. 치열한 권력 투쟁의 과정을 거쳐 왕위에 오른 태종 이방원은 자신대에서는 장자 장속의 원칙이 지켜지길 원했다. 비록, 많은 이들이 흘린 피 위에 세워진 그의 권력이었지만, 태종 이방원은 그런 역사를 반복하고 쉽지 않았다. 문제는 세자의 기행과 비행이 이어졌다는 점이다. 양녕대군은 역사 기록에도 수많은 일탈 행위가 있다. 왕위 계승을 위한 후계자 수업이 제대로 될 수 없었다. 태종 이방원은 세자가 학문을 가까이하고 무보다 문을 더 숭상하길 기대했지만, 양녕대군은 그렇지 않았다. 계속되는 일탈에 그에 대한 신하들과 백성들의 민심도 점점 악화됐다. 

이에 비해 세종대왕 충녕대군은 어린 시절부터 책을 끼고 살다시피하며 공부에 매진했다. 태종 이방원은 충녕대군이 너무나 많은 독서로 눈이 나빠지고 건강을 해치는 상황이 되자 서적을 숨기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충녕대군의 모습은 태종 이방원에게는 아주 긍정적으로 보였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역사기록에서 충녕대군은 나이는 어렸지만, 세자 양녕대군의 잘못된 행동을 꾸짖고 충고를 하는 등 어른스러운 모습을 자주 보였다. 분명 양녕대군과는 크게 대조되는 충녕대군이었다. 아버지 태종이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하들이 태종에게 폐세자 문제를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1418년 태종은 양녕대군을 폐세자하고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했다. 충녕대군으로서는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태종은 2달 후 충녕대군에게 선위하며 왕위에서 물러났다. 충녕대군은 아무 준비도 없이 왕의 자리에 올라야 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자신의 세력을 만들 시간도 업었고 왕위 계승 수업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충녕대군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신하들로 채워진 조정에서 왕위에 올랐다. 아버지 태종은 상왕으로 물러났지만, 여전히 군권과 인사권 등 가지고 있었고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중이었다. 대신들은 상왕의 눈치를 봐야 했다. 충녕대군, 세종대왕은 우군이 없는 정치 상황과 사실상 섭정을 하는 강력한 힘의 아버지 사이에서 쉽지 않은 초반 집권기를 보내야 했다. 그가 원하는 정치를 할 수 없었다. 

이에 더해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다. 태종은 세종의 장인인 심온과 그 집안을 숙청했다. 태종은 훗날 외척 세력이 강해지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려 했다. 태종은 역모의 죄를 씌워 심온을 처형했고 그 가족들을 노비가 됐다. 이런 상황은 분명 세종대왕에게는 큰 충격이었지만, 세종대왕은 냉정했다. 그는 장인인 심온의 구명에 나서지 않았다. 평상심을 유지했고 태종의 뜻을 따랐다.

대신 그는 그의 부인 소헌왕후를 지켰다. 역적의 딸이 된 소헌왕후 역시 중전 폐위의 위기가 있었지만, 세종대왕은 이를 막았다. 태종도 그와 관련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세종대왕과 태종 사이 정치적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세종대왕은 누구보다 아버지 태종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태종이 결정한 일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서 세종대왕은 차선책을 택했다. 

이런 정치적 격변기와 가족들의 불행까지 겪은 세종대왕은 1422년 태종이 승하하면서 마침내 진정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태종은 선위 후 4년간 상왕으로 있으면서 세종대왕의 치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정치적 걸림돌을 제거했고 세자 교체를 반대했던 인사들이라도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는 인사들을 다시 등용할 수 이는 길을 열었다. 1419년 세종 1년 왜구의 침략을 근절하기 위해 그들의 본거지 대마도 정벌을 사실상 주도하며 큰 대외 현안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런 아버지의 뒤를 이은 세종대왕은 태종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했다. 대신 국정운영의 시스템에는 변화를 줬다. 힘에 의한 통치가 아닌 시스템과 통합, 화합의 정치를 했다. 그는 즉위 후 장인인 심온의 가족들을 복권시키는 조치를 하면서도 심온 탄핵을 주도했던 이들을 포용했다. 이는 태종의 정치세력들을 포용하는 일이기도 했다. 여기에 자신의 세자 책봉을 반대했던 인물들을 등용하는 것을 넘어 중요했다. 세종대왕 시대 명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황희가 대표적이다.

세종대왕은 의정부 서사제를 부활하고 황희와 맹사성 등 뛰어난 정승들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이들은 세종대왕의 치세를 더 빛나게 하는 인물들이었다. 세종대왕은 기존 정치세력과의 화합과 함께 새로운 정치 세력의 육성도 함께 했다. 세종대왕은 궁궐 내 학문 연구기관이라 할 수 있는 집현전을 설치했다. 젊은 학자들이 그 안에서 연구하고 일했다. 학문 연구를 목적으로 했지만, 집현전에서 성장한 학자들 상당수는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했고 세종대왕의 치세를 뒷받침했다. 세종대왕은 통합과 함께 정치의 세대교체를 함께 추진했다. 후계자 육성에 너무나 인색한 우리 정치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었다.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 픽사베이

 

정치와 국가 운영 시스템의 안정은 세종대왕 시기 사회, 경제, 문화, 과학까지 다방면의 업적을 이루는데 큰 밑바탕이 됐다. 세종대왕은 이를 통해 백성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정치를 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해시계와 물시계, 우리 역법 체계를 완성한 천문 연구는 일부 권력자들 독점하는 시간을 공유하게 하는 일이었다. 이는 백성들이 보다 편안한 삶을 살도록 했고 우리 역법의 완성은 중요한 산업이었던 농업의 진흥에도 큰 도움이 됐다. 결과적으로 백성들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세종대왕이 마련했다. 

집권 후기 반포한 훈민정음은 소수 계층이 독점하던 지식의 보급을 확대하고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남길 수 있도록 했다. 권력자 입장에서는 통치의 편의를 위해 백성들을 우민화하고 세상 일에 관심이 없도록 하는 좋지만, 세종대왕은 백성들이 보다 더 많은 지식을 얻고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세종대왕은 조선을 보다 열린 사회로 갈 수 있도록 했다.

세종대왕은 아버지 태종으로부터 막강한 권한을 이어받았지만, 이를 정치보복과 반대 세력을 억누르는데 사용하지 않았다. 그 힘을 세종대왕은 자신의 신념을 실현하는 데 사용했다. 그 안에는 백성들을 위하는 애민사상과 문화, 예술, 과학이 융성하는 나라로의 발전이 함께 하고 있었다. 세종대왕은 그의 힘을 온전히 나라와 백성을 위해 사용했다. 한글의 창제는 강력한 왕권을 매우 긍정적으로 사용한 예고 우리는 그 혜택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 세종대왕은 현재와 미래까지 내다본 왕이었고 정치가였다. 

이렇게 세종대왕은 지금의 기준으로 당시로는 보기 드물게 민주적 통치를 지향했다. 물론, 한편에서 세종대왕은 엄격한 신분제가 적용되는 유교적 통치 이념을 강화하도록 했지만, 노비 출신 장영실을 중용하는 든 인재 등용에 있어 편견을 두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통치 방식 역시 권한을 과감히 위임하고 협의의 소통을 중시했다. 이런 정치인 세종대왕의 모습은 그를 더 위대한 왕으로 만든 중요한 이유라 할 수 있다. 이는 지금 우리 정치가 배워야 점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