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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집권 체제를 갖춘 우리 민족 최초의 고대 왕국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결했던 삼국시대는 3개국이 대결의 주도권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경쟁했고 각자의 문화를 발전시켰다. 또한, 활발한 대외 활동으로 그 영역을 크게 넓히기도 했다. 



삼국의 대결에서 그 중심지역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한강 일대였다. 이 한강 유역을 지배하는 국가가 삼국 경쟁의 중심에 있었고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이 한강 유역의 주인은 백제, 고구려, 신라 순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강의 주인이었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뜨리며 삼국 통일을 이뤘다.



이후 고구려와 백제는 치열한 부흥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지만, 나라의 부흥은 이루지 못했다. 대신 고구려는 고구려 유민들과 만주지역의 말갈족이 연합한 국가인 발해를 통해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백제는 그렇지 못했다. 대신 고구려를 포함해 백제의 문화는 통일 신라에 더해져 문화와 예술을 한층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있다. 

 

 

 

 

이런 백제, 그들이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기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박물관이 서울 올림픽 공원에 있다. '한성백제박물관' 은 2012년 건립됐다. 이곳은 벽제가 지금의 서울에 도읍을 정하던 시기, 한성백제의 시대의 유물과 역사자료 등을 전시하고 있다. 여기에 공연장이 갖추어져 있어 각종 문화 공연과 지역의 문화 예술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백제의 성벽을 형상화 한 박물관 외관 

 

 

백제의 축성 기술



토성이었지만, 흙으로 판들 만들어 벽돌을 쌓듯 단단히 성을 만들었다. 그 흔적은 올림픽공원 내 몽촌 토성, 송파구의 풍납토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선사시대부터 많은 이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던 한강



농사에 유리한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지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이곳에 정착해 살도록 했다. 백제는 한강 일대의 인구, 그들이 일군 촌락 등을 기반으로 세워졌다.

 

 

신석기 유물

 

 

국가의 형태가 만들어진 청동기 시대 생활상과 유물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에는 큰 촌락이 형성되고 그 집단의 우두머리가 정치 지도자, 권력자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또한, 종교 지도자가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거대한 돌무덤인 고인돌은 당시 권력자들의 위상을 상징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투쟁에서 벗어나 문화를 향유하고 예술 활동을 하는 등으로 발전했다. 

 

 

불의 발견
토기의 제작
청동기
백제왕이 왜왕에 하사한 칠지도, 그리고 철기
도자기 제작
기록의 조선
디지털혁명의 시대

 

우리 문명의 발전사를 상징하는 전시물 

 

 

백제의 건국



백제는 BC 18년, 만주지역에서 건국해서 성장한 고구려의 일부 세력이 남하해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에는 부족국가 형태의 54개국이 연합한 마한의 한 국가로 그 역사를 시작했다. 

 

 

서울에서 출토된 백제 유물


올림픽공원을 포함해 송파구 일대에는 백제의 토성과 고분군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서 백제 초기, 한성백제 시대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이 유물들을 통해 한성백제가 존재했음을 입증할 수 있었다. 

 

 

백제의 경당

백제의 도성 그리고 그들의 전성기 


한성백제 시대, 백제는 고구려를 위협할 정도로 그 세력이 강성했다. 고구려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기도 했다. 백제는 고국원왕을 전사하게 하고 고구려의 평양성까지 공격하는 등 그 세력을 확대했다. 더 나아가 혼란기에 있었던 중국과 일본에까지 세력을 확대했다. 

 

 

유물을 통해 재현한 백제의 생활상

 

 

백제의 고분

 

 

재현된 백제 유물,


백제는 매우 높은 수준의 문화, 예술의 수준을 가졌던 나라였다. 

 

 

중국 고서에 있는 주변국들의 사신들, 고구려, 백제, 신라 사신들의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백제의 선박 제작 기술, 이를 바탕으로 백제는 바닷길을 통해 활발히 진출하고 교류했다. 

 

 

고구려 자료실

치열한 삼국 경쟁, 고구려의 남하와 백제의 한강 상실

 



5세기 들어 고구려는 우리 역사 최고의 군주 중 한 명인 광개토대왕이 등장하면서 강한 국력을 만들고 활발한 대외 정복활동을 전개했다. 백제는 광개토대왕그 과의 아들 장수왕 시기, 고구려에 밀려 한성을 포함한 한강 유역을 잃고 도성을 공주로 옮겨야 했다. 



그 과정에서 수도 한성이 고구려 군의 공격으로 함락되고 한성백제 시대 마지막 왕이라 할 수 있는 개로왕이 전사하는 등 큰 시련의 시기를 맞이했다. 이후 백제는 신라와 연합해 고구려에 대응하는 한 편, 나라를 재건했다. 공주를 거쳐 새롭게 도읍지가 된 부여를 중심으로 백제는 찬란한 그들의 문화를 꽃피우고 삼국시대 경쟁에 다시 활발히 참여했다. 

 

 

백제 금동 대향로 재현품

 

 

이처럼 수백 년에 걸쳐 나라를 발전시켜온 백제였지만,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한 나. 당 연합군에 의해 660년 나라가 멸망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그들의 찬란한 문화와 예술의 유물과 흔적들도 다수 사라지고 말았다.



한성백제의 역사도 오랜 세월 잊히고 말았다. 한성백제가 다시 주목받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부터 시작된 도시 재개발이 활발히 전개되고 그 과정에서 땅속에 묻혀 있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면서 부터였다. 그전에는 무지로 그냥 지나치고 사라져가던 유적들이 재 평가를 받았고 발굴과 보전 노력이 병행되며 한성 백제의 역사가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다. 



이렇게 우리 고대사의 흔적은 서울의 도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전 우리는 그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이 백제의 역사를 한곳에서 살필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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