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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 스즈메의 문단속'이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한국에서의 성공적인 흥행 성적표를 올리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미 개봉 시점에 한국에서 제작 발표회를 했었고 최근에서 흥행 성공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한때 그에 대하 혐한 감독이라는 풍문이 돌기도 했지만, 그의 언행과 작품관, 그동안의 행적을 보면 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한국의 자신의 작품세계를 공감하는 이들이 많은 우호적인 국가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한. 일간 정치 현안이나 외교 현안에 상관없이 그 작품만으로 한. 일 양국에서 모두 인정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이미 그에게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작품을 본 이들이라면 느낄 수 있는 세밀하면서 사실적인 묘사, 애니메이션에서 잘 보이지 않는 자연의 빛까지 담은 영상미가 특징이다. 이런 영상미는 그의 작품의 중요한 특징이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신작을 발표하면서 그 부분을 더 발전시키고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일각에서 그의 작품 스토리의 개연성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그 점을 잊게 하는 영상의 미학에 더 매료되곤 한다.

또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확실한 주제의식을 작품에 담고 있다. 최근 그의 흥행작들을 살피면 자연재해나 재난을 소재로 이를 대처하는 사람들과 극복의 의지, 재난 속에서 희생당한 이들과 지역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함께 담아내고 있다.

이를 통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재난이나 대형 참사 사고에 대해 빨리 잊기를 강요하는 분위기에 반대하는 소신을 드러내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재난이나 재해, 대형 참사의 치유는 희생자들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억, 추모, 연대를 강조하고 인간성의 상실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그의 재난 영화에서 주인공이 순수한 미소녀, 소년들이 등장하는 건 사회에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주인공 주변 인물들을 살펴도 강력한 빌런이나 악한 이들이 잘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주인공에 우호적인 인물이고 그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이들 역시 자신의 일에 충실한 이들이다. 그 점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성선설을 신봉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작품의 배경을 이미 알고 있는 이들도 있겠지만, 2011년 3월 발생했던 일본 동일본 대지진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등장하는 장소들은 모두 대지진이 일어났던 곳을 따라 움직인다. 

주인공 스즈메가 살아가는 규슈는 일본 본토를 구성하는 4개의 섬 중 최 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섬으로 스즈메가 유년기와 고등학생이 된 시절을 보낸 해안가와 거리가 있지만, 2016년 같은 규슈 지역 구마모토 지역에 대형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또한, 태평양 연안 해역에서는 대형 지진의 위험성이 끊임없이 경고되고 있다. 그다음 여정에 등장하는 일본 본토에서 가장 작은 점 시코쿠는 1946년 발생했던 난카이 대지진이 재현될 가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규슈와 시코쿠는 지진 외에도 여름철 태풍과 이로 인한 풍수해로 해마다 고통받는 곳이다. 

시코쿠를 지나 찾은 고베는 일본 역사상 최악의 지진 중 하나인 1995년 1월 발생한 고베 대지진의 아픈 기억이 함께 하는 곳이다. 고베를 떠나 방문한 도쿄는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에 있었던 1923년 9월 발생한 관동대지진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은 기억이 있다. 이 지진은 지진 피해와 함께 당시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조선인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로 인해 우리 역사의 아픈 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여정에 등장하는 일본 혼슈 동북쪽에 지역인 도호쿠의 해안 지역은 2011년 3월 인근 해역에서 발생한 지구 역사상 최악의 지진 중 하나인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대규모 쓰나미가 일대를 덮쳐 큰 인명, 재산상 피해가 있었다.

이 쓰나미는 지역의 후쿠시마 원전을 덮쳤고 원자로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배출되는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 파괴된 후쿠시마 원전은 10년이 넘은 현재도 복구되지 못하고 있고 지속적으로 방사능 물질을 방출하고 있다. 또한, 여전히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는 핵 원료 물질을 식히기 위해 사용되는 바닷물과 그 오염수의 처리 문제가 국제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는 지진이 결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님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도 곳곳에서 지진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고 그 강도가 강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지진에 대한 경각심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지진을 소재로 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는 또 다른 면에서 우리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이 영화는 지진 피해 지역을 따라가는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의 성격을 따르고 있다. 주인공 스즈메는 어린 시절 동일본 대진과 쓰나미가 휩쓸고 간 일본 가장 큰 섬 혼슈 도호쿠 북동부 해안 지역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재난 속에서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영화상에서는 엄청난 쓰나미 속에서 엄마는 실종되어 시신조차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졸지에 고아가 된 스즈메는 크게 파괴되고 폐허가 된 집과 마을에서 엄마를 찾아 헤맨다. 어린 스즈메에게도 부질없는 일이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었지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했고 스스로가 의지했던 엄마의 존재를 쉽게 잊을 수 없었다. 쓰나미에 휩쓸려 순식간에 존재가 사라진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홀로 세상에 던져진 두려움은 스즈메를 폐허 속에 머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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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즈메에게 신비한 분위기의 문이 나타나고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스즈메는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상 속을 다시 헤맨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여성이 다가선다. 순간 그곳은 이승이 아닌 저승이고 그 여성은 세상을 떠난 엄마의 원혼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하는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그 장면은 고등학생이 된 스즈메의 꿈속에서 자꾸만 등장하다. 스즈메는 너무나 생생한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이는 큰 재난과 사고를 경험한 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를 연상하게 한다.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한 이에게는 순간순간 그 기억이 되살아 그 사람들 괴롭힌다.

하지만 주변 우리 사회는 그런 트라우마에 대해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 그 고통은 살아남은 자, 가족들이 짊어져야 하는 몫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그 고통의 묵살되거나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는 극한의 과제를 던져줄 뿐이다. 스즈메 역시 그 꿈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는 장면들을 홀로 마음속에 삭힐 뿐이었다.

이런 스즈메에게 꿈속에 등장하는 문과 그곳에서 본 세상이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일이 발생한다. 등굣길에 우연히 만난 묘한 분위기의 남자에게 끌리는 감정을 순간 느낀 스즈메는 폐허가 어느 있는지를 물러보는 그에게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에게 가르쳐 준 장소를 먼저 찾아간다. 그곳은 사람들이 모두 떠난 온천마을이었다. 그곳에서 혹시 모를 그 남자와의 만남을 기대하지만, 스즈메의 눈앞에 등장한 건 꿈속에서 봤던 낡은 문이었다. 꿈속 장면이 현실이 되자 스즈메는 그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고 꿈에서 만났던 세상을 보게 된다.

하지만 꿈과 달리 닿을 수 없는 그곳에 스즈메는 큰 공포를 느끼고 장소를 떠난다. 이 장면에서 왜 영화 제목에 문단속이라는 말이 등장하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게 된다. 관객들은 그 문을 함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즈메가 그 문을 연 것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상상에 관객들을 다다르게 된다. 

결정적으로 문을 여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 모양의 비석을 뽑는 순간, 그 비석이 고양이로 변하며 스즈메를 이전부터 알고 있는 듯 행동하는 장면도 흥미를 더한다. 우려대로 열리게 된 문은 대지진을 일으키는 지하의 거대한 힘 미미즈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 통로가 되고 스즈메가 뽑은 돌은 그 미미즈를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봉인하는 봉인석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스즈메에게 미지의 남자였던 인물인 소타는 집안 대대로 그 미미즈의 출현을 막아오던 테마사와 같은 존재인 토지시였다. 그런 소타가 볼 수 있는 미미즈의 존재를 스즈메도 볼 수 있다는 두 사람의 만남이 운명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스즈메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미미즈의 존재를 보게 되고 미미즈가 자신이 열었던 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소타를 도와 그 문을 함께 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뽑아낸 그 표지석이 미미즈를 봉인한 장치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에 스즈메는 미미즈를 막아야 하는 책무가 주어지는 순간이었다. 

스즈메에게는 미미즈의 봉인을 풀어버린 행동에 대한 미안함, 왠지 모르게 이성적인 끌림으로 다가온 소타, 그리고 자신이 당했던 비극이 다시 일어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해졌다. 소타는 스즈메를 위험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스스로가 마법에 걸려 스즈메 엄마의 유품인 작은 나무 의자에 갇히는 처지가 되면서 스즈메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결국, 스즈메와 소타, 그들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된 스즈메 엄마의 의자는 함께 미미지를 막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봉인석이 될 고양이, 다이진을 잡아 제 위치에 놓아야 했다. 하지만 다이진은 귀여운 외모와 달리 매우 영특하고 말을 할 수 있고 마법을 부리는 비범한 능력이 있었다. 다이진의 마법은 소타를 스즈메의 의자에 갇히게 했다. 스즈메와 소타는 다이진의 도망치는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그곳은 앞서 언급한 대로 과거 대지진이 있었던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즈메와 소타는 지하에 잠들었다 깨어난 미미즈의 위협에 맞서게 된다. 어렵게 어렵게 그 위험을 막고 미미즈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걸 막아내긴 했지만, 봉인이 풀린 미미즈의 위협이 어디서든 나타날 수 있는 상황에 그들은 지쳐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은 스즈메와 소타의 연대, 그들의 여정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그들은 여정을 지속할 수 있었다. 작품에서 그들을 돕는 이들은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들도 아니었고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보통 사람들의 연대가 재난이나 각종 위험을 이겨내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실제 대형사고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에 공감하고 함께 슬퍼하고 피해자와 유족들과 연대하는 이들 대부분은 평범한 시민들이 많다. 자신의 삶을 꾸려가기도 힘든 이들이 성금을 내고 자원봉사를 하고 하는 일을 우리는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행동은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목적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런 귀인들의 등장이 개연성을 해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스즈메와 소타의 여정을 돕는 이들은 선한 보통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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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이어지던 여정은 도쿄에서 큰 고비를 맞이한다. 소타는 점점 자신이 다이진을 대신해 봉인석이 될 운명임을 직감한다. 실제 소타는 도쿄를 뒤덮은 미미즈를 다시 봉인하는데 성공하지만, 불길한 예감까지 봉인하지 못했다. 결국, 소타는 의자 속에 갇힌 자신의 몸을 탈출시키지 못했고 그대로 굳어 봉인석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지진의 위험이 사라지고 세상은 평온을 되찾을 것으로 보였지만, 스즈메는 그렇지 않았다.

스즈메는 거대한 재난을 막고자 소타가 봉인석이 되는 상황을 그대로 바라보고 말았지만, 그를 그대로 미미즈가 있는 장소에 남겨둘 수 없었다. 스즈메는 소타를 구하기로 결심한다. 스즈메는 미미즈와 관련한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소타의 할아버지를 찾아 실마리를 찾는다. 스즈메는 미미즈가 있는 그 미지의 공간이 자신의 꿈속에서 등장했던 장소와 같은 곳임을 알고 그 문을 통해 소타가 봉인석으로 있는 곳으로 향하려 한다. 

하지만 그 여정을 함께 할 이가 없었다. 이런 스즈메에게 그를 찾아 규슈에서 급히 도쿄로 온 이모와 소타의 친구 세리자와가 예기치 않게 동행하게 된다. 여기에 스즈메와 소타를 괴롭히던 고양이 다이진도 합류했다. 다이진은 소타를 스즈메의 의자에 가두고 그가 표석이 되도록 했지만, 오히려 미미즈의 위협을 감지하고 스즈메 일행을 그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다이진은 오랜 세월 희생을 강요당했던 삶을 벗어나고 싶었고 우연히지만, 자신을 표석 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준 스즈메에게 큰 관심을 보인다. 다이진은 스즈메가 위험에 빠진 순간 도움을 주기도 했고 그녀의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소타가 표석이 되도록 했다는 오해 속에 스즈메에게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스즈메의 마지막 여정에 아무 말없이 동행했다.

그 동행에는 두 개의 표석 중 하나인 사다이진이 등장해 그들과 함께 했다. 이 부분에서 설명이 없다는 점에서 조금은 관객들이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스즈메와 이모 사이 갈등이 폭발하는 시점에 사다이진이 등장했다는 점은 미미즈를 봉인하던 표석이 어느 누군가에 의해 뽑혀지는 게 아닌 사람들의 갈등과 불신 등 나쁜 마음에 의해 제거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소타가 미미즈가 나오려는 문을 막고자 할 때 그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은 피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임과 동시에 선한 마음에 대한 믿음이 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다이진과 사다이진의 등장은 인간 세상이 편안하지 않다는 상징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다이진과 사다이진은 미미즈와의 마지막 결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모인 이들은 세리자와의 자가용으로 이들이 향하는 마지막 장소는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던 도호쿠 지역이었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진 후 쓰나미에 대비하기 위해 동북부 해안 지역에 쌓은 거대한 제방과 아직 사람이 갈 수 그에 없는 지역들, 복구되지 않은 쓰나미 피해 지역의 모습들을 스치듯 만날 수 있다. 아직 동일 대지진의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음을 그 장면들로 보여주고 있다.

스즈메에게는 그곳이 유년기를 보낸 고향이기도 했다. 아픈 기억으로 채워진 곳이지만, 스즈메는 소타를 위해 그리고 오랜 세월 의문으로 남아있던 미지의 공간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그곳에서 만났던 것으로 기억되는 엄마를 다시 만나기 위해 꼭 가야 했다.

이 여정은 스즈메가 홀로 삭히고 있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아를 찾기 위한 일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이모와 큰 다툼이 있었지만, 가족의 정은 그들의 관계를 파탄으로 이끌지 않고 더 돈독하게 했다. 오히려 속 마음과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며 서로를 더 이해하고 함께 슬픔을 치유하는 계기가 됐다. 

이제 남은 건 스즈메가 오랜 세월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던 의문을 푸는 일과 그 일과 연관되어 있는 소타의 부활, 그리고 미미즈를 다시 봉인하는 일이었다. 그 세 가지 일을 풀어내는 힘은 스즈메의 강한 의지와 소타에 대한 사랑이었다. 스즈메의 의지는 소타를 봉인석 상태에서 벗어나게 했고 그와 함께 미미즈 봉인에 나섰다. 또 다른 재난을 막으려는 두 사람의 간절함은 다이진을 감동시켜 그가 스스로 봉인석으로 돌아가도록 했다. 

그렇게 모인 마음은 미미즈가 스즈메가 열었던 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다시 봉인됐고 또 다른 재난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와 동시에 스즈메는 유년 시절의 의문의 기억이 무엇이었는지 마침내 알게 된다. 엄마를 찾아 헤매다 만난 사람은 저세상에 있는 엄마나 아닌 미래의 스즈메 미미즈와의 마지막 결전을 치른 나 자신이었다.

미래의 스즈메는 깊은 슬픔과 좌절에 빠진 어린 스즈메를 위로하고 엄마가 남긴 유품인 나무 의지를 건넸다. 미래의 스즈메에게 힘을 얻은 스즈메는 삶의 의지를 되찾고 밝게 성장할 수 있었다. 또한, 미미즈 봉인을 위한 여정에서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진심으로 위하고 도와주는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마음의 상처도 자연스럽게 치유할 수 있었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었던 스즈메는 비로소 자신이 혼자가 아님을 알 수 있었고 상처를 딛고 일어설 수 있게 됐다.

 

 

 



또한, 평생의 반려자가 될 수 있는 이도 만날 수 있었다. 영화 포스터에서 스즈메와 소타가 한 아이를 가운데 두고 걷는 장면은 과거 스즈메를 다시 자신이 살아야 할 세상으로 돌려보내는 것일 수도 있고 미래에 두 사람이 가정을 이루고 함께 어느 곳을 걷는 모습일 수도 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세상의 선한 영향력 속에서 주인공이 성장하는 드라마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스즈메의 성장 과정은 큰 재난과 사고에 고통받는 이들이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고도 할 수 있다. 그 아픔이 조금이나마 빨리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거창한 기념식이나 행사보다도 이런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마음의 상처에 있어 더 나은 치료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난과 사고는 어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그 대상은 특별하지 않은 상황, 일상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로 두려움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저 하루하루 일상의 충실히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대신 살아남은 이들은 그 재난과 사고를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라 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각박한 세상에서 이런 기본을 망각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재난 영화를 연작으로 계속 발표하는 건 남아있는 이들의 의무를 다시 한번 일깨우려는 의미도 분명히 있다. 이 점에서 '스즈메의 문단속'은 재난과 사고로부터의 문을 닫는 것이지 사람과 사이의 문을 닫는 건 아니다. 대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라는 존재는 어쩌면 사람들 마음 속 두려움과 공포 미움과 불신, 갈등이 만들어낸 괴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것에는 문을 닫고 재난에 대처하는 선한 사람들의 연대의 문은 활짝 열어야 한다. 모든 이들이 그 선한 연대의 문을 활짝 열 때 우리 사회는 이 영화 속 아름답고 따스한 장면들로 채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진 : 영화포스터,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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