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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의 발전 과정에서 아파트는 주거 공간 이상의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자신의 부와 사회적 위치를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재산 증식의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 시세에 일희일비하곤 한다.

또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소위 좋은 입지에 아파트를 장만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사람들은 월수입의 상당 부분을 저축하고 돈을 모은다. 또한, 아파트를 위해 막대한 대출을 받고 상당한 이자를 부담하기도 한다. 모두 아파트가 자신의 부를 늘리고 그것이 보다 경제적인 풍요와 보다 나은 미래를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본래 아파트는 산업혁명 이후 인구의 도시 집중과 이에 따른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에서 고안됐다. 정작 아파트는 그 개념이 처음 등장한 유럽보다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에서 보편적 주거 방식으로 발전했다. 산업화의 급속한 진행과 그에 비례한 도시화 과정에서 인구의 도시 집중과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아파트는 매우 유용한 방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건축법상 5층 이상의 공동주택으로 정의된다. 이런 형태의 아파트는 일제 강점기 몇 군데 지어지긴 했지만, 현재의 아파트와는 거리가 있었다. 현대적 아파트의 시작은 1957년 건축된 성북구의 종암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한국의 건설사가 건축한 최초의 아파트였고 수세식 화장실이 도입됐다. 당시로는 매우 획기적인 주거용 건물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에 아파트라는 개념이 처음 생겨나는 계기가 됐다. 

 

 

 




산업화의 역사와 함께 한 아파트 발전사


이렇게 시작한 우리나라 아파트의 역사는 산업화의 촉진과 함께 발전을 거듭했다. 1964년 지어진 마포 아파트는 지금의 아파트 단지 개념이 처음 도입됐다. 이후 아파트는 체계적인 도시계획과 도시 확대, 주거환경 개선 등을 위해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지어졌다. 그 과정에서 지금도 우리 사회의 큰 병폐인 부실 공사에 의한 와우 아파트 붕괴 사고 등 비극도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의 보편화라는 흐름은 멈춤이 없었다. 

1970년대 들어 서울 강남 지역이 크게 개발되면서 대단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이 시점부터 아파트는 많은 이들이 살고 싶은 주거 공간이 됐고 재산 증식의 수단이 됐다. 수요의 증가는 시세 급격한 시세 상승과 연결됐고 이는 부동산 투기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역대 모든 정부 차원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과 관련한 정책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사람들의 부에 대한 욕망까지 근절하긴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각종 개발 정보에 보다 쉽게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정부 고위 관료나 정치권 인사들 사회 상류층들에 의해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고 조장되는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 근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아파트는 수도권 신도시 건설의 중요한 요소가 됐고 곳곳에 대단지화에 초고층화까지 그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 아파트는 매우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됐다. 

하지만 아파트에 대한 맹신은 상당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요에 비해 부족한 공급, 그로 인한 아파트 가격 상승은 급속히 일어났다. 주요 지역의 아파트 시세는 일반 국민들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파트 가격은 그 지역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고 있고 아파트는 날로 심화되는 부의 불평등과 빈부 격차를 상징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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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 공간에서 부의 척도가 된 아파트 


또한, 아파트에 집중된 사회적 부는 사람들에게 노동 의욕을 떨어뜨리고 자본 이익에만 집중하게 하고 있다. 땀 흘려 일하기보다는 돈이 돈을 버는 사회는 건강해질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이들은 소수에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누가 아파트 시세가 얼마 올랐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파트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물론, 아파트는 인구의 도시 집중화 속에서 심화되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들의 생활 영역을 수직적으로도 확장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아파트 단지는 주거의 안전성을 높이고 각종 사회 인프라의 이용을 편리하게 한다. 도시 계획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아파트는 매우 유용한 주거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에 아파트는 앞서 언급한 문제들 외에 콘크리트 건물 속 한정된 공간에 주거를 한정하게 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가치를 잃게 하고 비인간화를 촉진하는 문제도 있다. 실제 아파트 거주자들 상당수는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 알지 못한다. 관심을 가지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어떤 면에서 아파트는 무한 경쟁 속에서 각자 도생의 삶을 강요받고 있는 현대인들 삶의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아파트 만능 시대의 역설 담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우리의 현실을 디스토피아적 상황과 함께 극적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대지진 이후 전 국토가 파괴된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지진으로 각종 사회 인프라와 기반 시설이 완전히 파괴됐다. 국가 운영 시스템도 완전히 붕괴됐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잃고 부상당했지만, 그들에 대한 구호의 손길은 어디에서도 없었다.

이에 생존자들은  공기와 같았던 전기, 수도, 각종 통신 수단을 사용할 수 없게 됐고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하루하루 의식주 문제를 포함해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구석기 시대로의 회기였다. 

이렇게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한 아파트만은 우뚝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아파트는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이름인 황궁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주로 서민들이 거주하는 오래된 아파트였다. 아파트 주민들은 인근 신축한 고층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무시당하고 그에 따른 박탈감을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이 아파트의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마음속 감정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는 현재 아파트의 가격으로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는 우리 현실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실제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라 해도 아파트 평수와 임대 아파트인지, 자가인지 전세나 월세인지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고 심지어 놀이터 이용이나 이동로까지 제한하는 모습을 뉴스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황궁 아파트는 세상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한 곳이고 가장 안락한 주거 공간이 됐다. 엄청난 반전의 상황 속에 황궁 아파트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벗어나 안도감과 보다 나은 위치에 있다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 아파트 주민들은 지금 그들의 안전과 안락함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이 함께 했다. 이에 아파트 주민들은 그들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했다.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를 위해 아파트 주민들은 아파트의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행정 조직을 만들었다.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현장




극한의 상황에 대처하는 인물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아파트 부녀회장인 금애였다. 그는 부녀회장을 하면서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보, 탁월한 언변으로 여론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맡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그는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제 진압에 앞장서며 깊은 인상을 남긴 영탁을 추천해 대표 자리에 오르도록 했다. 그 명분은 영탁이 아파트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선행을 통해 아파트 주민들의 긍정 여론을 얻고 있고 보다 강한 힘과 행동력을 가진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결정이었다. 

이를 통해 황궁 아파트는 금애가 사실상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영탁이 대표 자리에 오르는 2인 지휘 체제로 운영됐다. 금애는 아파트의 규율을 새롭게 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탁은 아파트의 질서 유지와 외부 침입에 대한 대비, 부족한 물자 확보를 위한 채집 활동을 주도했다. 

이렇게 내부의 질서를 확립한 황궁아파트에는 한 가지 중요한 현안이 있었다. 재난 이후 이웃에도 아파트로 피난 온 외부인들에 대한 처리 문제였다. 재난 시점은 혹독한 한파가 몰아치고 있었고 외부에는 생존자들 사이 약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황궁아파트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였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하지만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한정된 자원을 외부인들과 공유하는 것에 점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회의를 통해 외부인들은 아파트에서 축출하기로 결정했다. 일부 인도주의적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현실론 앞에 그 의견은 철저히 묵살됐다. 이 결정과정 속에서 등장인물들의 성향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표자가 된 영탁과 금애는 강경책을 주도했다.

반대로 공무원 출신으로 채집 활동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며 영탁의 최측근이 된 민성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의 배우자인 간호사 출신 명화는 인간적 도리가 아님을 이유로 외부인 축출에 강력히 반대한다. 팽팽한 의견 대립은 점점 현실론에 힘이 실렸다.

정부기능이 마비되고 독자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조금의 물자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이를 외부인과 나누는 건 생존의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이에 민성 역시 강경론에 가세하며 대대적인 외부인 축출이 이어졌다. 생존을 위하 저항하는 외부인들을 영탁이 이끄는 방범대는 무력으로 제압했다. 

 

 

 



그렇게 이루어진 외부인 축출 작업을 통해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어쩌면 생존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가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이 아파트의 주민이라는 사실에 감사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실에서 극한의 상황에 몰린 사람들을 동정하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상황에 자신이 속하지 않은 것에 묘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이후 황궁 아파트는 영탁의 주도하는 방범대가 외부 채집 활동을 통해 필요한 물자를 지속적으로 수급하면서 상대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황궁아파트는 그 속에서 물자를 각자의 기여도에 따라 나누고 공공의 질서를 확립하면서 하나의 국가와 같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안락함은 지속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에서 외부 채집 활동을 한계를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물자 부족이 심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리더 그룹에 대한 구성원들의 불만을 높여갔다.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영탁의 권위도 흔들렸다. 이에 적절히 대처할 리더십이 필요했다. 

영탁은 이런 불만을 잠재울 방법으로 내부 숙청작업을 단행했다. 황궁아파트에서 외부인들을 몰래 숨기고 물자를 나누고 있었던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과 징계가 이루어졌다. 영탁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눈 감고 있었다. 그 역시 마은 한편에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입지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영탁은 그런 인도주의적 행동을 하는 이들을 징벌의 대상으로 삼았고 공공의 적으로 규정했다.

영탁과 방범대는 외부인들을 바퀴벌레로 규정하고 그들을 숨겨준 집을 수색하고 일명 박멸 작업을 단행했다. 외부인들인 차디찬 폐허 속으로 내몰렸고 그들의 숨겨준 아파트 주민들은 모멸적인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나치 독일의 유대인 색출과 축출의 장면을 보는 듯했다. 매우 비인권적이고 야만적인 일이었지만, 황궁아파트 주민 누구도 이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영화 초반부터 방범대 활동 등에 반감을 가졌던 인물 도균만이 인간성을 상실한 아파트 주민들에 일침을 가하고 스스로 투신하며 죽음으로 이에 반대했을 뿐이었다. 

한편, 애초 이에 부정적이었던 민성도 그의 아내 명화가 외부인들을 숨기도 도왔던 사실이 영탁에게 밝혀지면서 명화에 대한 징벌을 피하기 위해 영탁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박멸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현실론 속 상실된 인간성 그리고 파국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통해 다시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워가는 듯했던 영탁이었지만, 그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는 황궁아파트 주민이 아니었다. 그는 싸게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거액의 돈을 지불했지만, 그것이 사기임을 인지하고 뒤늦게 이를 해결하려 했다. 영탁은 급히 사기를 공모한 902호 주인을 찾아가지만, 강한 모멸감에 그 주인을 살해하게 된다. 마침 대지진이 닥쳤고 혼란한 상황 속에 영탁은 자신의 신분을 세탁하고 황궁아파트의 대표에까지 오르게 된다. 

영탁은 평생 가족들과 함께 할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런 영탁이 사기 피해자가 된 상황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은 일이었다. 하지만 전 지구적인 비극이 영탁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기회가 됐다. 이를 통해 영탁은 자신의 집을 얻었고 아파트의 대표에 오르게 된다. 그는 그 자리가 소중했고 삶의 전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했다. 이는 그를 인간성을 상실하게 했다. 

그렇게 강한 집착을 보였던 대표 자리였지만, 그의 위기를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비밀을 알게 된 명화가 점점 영탁의 실체에 접근했고 부진한 채집활동은 리더 자격에 대한 아파트 주민들의 의구심을 키워갔다. 결정적으로 무너진 백화점에서 확보한 물자들이 다른 생존자들의 습격으로 사라지고 함께 방범대로 활동했던 방범대원들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그에 대한 아파트 주민들의 신뢰를 급격히 무너졌다.

마침 명화가 그의 살인과 가짜 주민인 사실을 폭로하면서 영탁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 상실은 분노로 돌변했다. 이제 그는 바퀴벌레보다 못한 존재가 됐다. 영탁으로서는 어렵게 쌓은 권력이 일순간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영탁의 권력 상실은 황궁아파트의 비극과 연결됐다. 

황궁아파트 운영에 불만을 품고 있던 내부자의 공모로 외부 세력들에게 황궁아파트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됐다. 황궁아파트는 주민들과 외부인들의 뒤엉키는 전쟁터가 됐다. 영탁은 마지막까지 고군분투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황궁아파트는 외부인들의 약탈에 무방비로 노출됐고 주민들의 안락한 삶도 붕괴됐다. 그 속에서 영탁은 그가 그토록 원했던 보금자리에서 그의 생을 마치게 된다. 그는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도 자신의 아파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그의 모습은 아파트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듯한 현대인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황궁아파트만의 유토피아가 붕괴된 이후 인간성을 지키려 애섰던 민성과 명화 부부는 극심한 혼란을 피해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안전한 공간을 벗어난 부부는 차가운 외부 세계 속으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과정에서 이미 외부인과의 전투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었던 민성이 세상을 떠났다. 

 

 




아파트를 벗어나 찾은 행복과 구원


이렇게 홀로 남겨진 명화 앞에 또 다른 생존자들이 접근했다. 그들은 민성의 묘를 만들어주고 명화를 그들의 아지트로 안내했다. 그곳은 황궁아파트처럼 누군가의 접근을 막는 바리케이드도 없었고 외부인들을 경계하는 방범대도 없었다. 누구나 그곳을 찾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지진에서 파괴되지 않고 우뚝 선 황궁아파트와 달리 그곳은 수평으로 넘어진 건물이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었다. 이는 누구나 평등한 세상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그곳의 사람들은 명화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명화는 마침내 그가 원했던 인간성이 살아 있는 진정한 유토피아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렇게 영화는 재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을 각 인물들을 통해 투영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특정하지 않았다.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 명화 역시 인간성의 상실을 비판하지만, 현실 문제에 대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영탁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를 너무 쉽게 공론화하면서 아파트의 위기를 더 키우기도 했다.

영화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연대와 협력을 해법으로 내놓았다. 그러면서 명화가 구원을 받는 장면을 종교적인 색채로 그려내기도 했다.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성이라는 비판도 가능한 장면이지만,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타인에 대한 사랑, 이해, 평등의 사상을 말하고자 했을 수도 있다.

만약, 황궁아파트 주민들이 물자를 주변고 나누고 연대를 했다면 다른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고 생존을 위한 다른 대안을 모색할수도 있었다. 물자가 한정되어 있고 언젠가는 고갈될 수 있는 상황에서 채집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 시도도 필요했다.

더 나아가 파괴된 도시를 벗어나 농경생활이 가능한 농촌 지역으로 이동해 정착하는 방법을 모색하는게 장기적으로는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기도 했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당장의 평안함과 유한한 안락함에만 머물러 있었다. 황궁아파트 주민들은 집단 지성의 힘을 믿지 않았고 영탁이라는 지도자 뒤에 숨어있기만 했다. 영탁의 행동들이 비인간적이라 했지만, 황궁아파트 주민들 역시 공범이었다. 

 

 




아파트가 가격과 평수가 행복의 기준이 된 현실 비판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 제목과 달리 매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인물들의 면면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다. 특히, 주 배경이 되는 황궁아파트는 아파트가 삶의 중요한 목표이자 모든 것이 되어가는 우리 세태를 상징하고 있다. 그 속에서 심화되는 탐욕과 이기심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다. 여기에 아파트가 주거 공간 이전에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부의 척도가 된 현실에서 아파트라는 콘크리트 덤이에 매몰되어 가는 세태를 모든 것이 붕괴된 장면들 속에서 보여주고 있다. 

황궁아파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게 지어지는 초고층 아파트,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오르며 사람들의 탐욕을 충족시켜주는 아파트 가격 그 자체일지 모른다. 우리는 그 아파트 높이와 가격으로 스스로 누군가와 차별화를 하고 계급을 정하고 있었거나 이를 방조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보다 높은 계급에 속한 것에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행복함과 우월감 이면에는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심화되는 빈부 격차 속에서 누적되는 사회적 불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쌓이든 사회적 불만은 언젠가는 폭발할 수 있고 이는 모두의 공멸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의 대지진은 천재지변이 아닌 사회 구조적 모순의 폭발로 볼 수도 있다.

영화는 모두가 함께 불행에 빠질 수 있는 탐욕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이가 우리 자신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사회 공동체적 가치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사진 : 영화 페이지 / 위키백과,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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