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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를 맞이한 수사반장 1958이 더 강렬한 시대 풍자로 매운맛을 더 강화했다. 수사반장 1958은 7, 8회를 통해 1960년대 초반 중요한 권력형 비리와 인권유린 사례를 포함했다. 당시는 5.16 군사정변으로 정변의 중심인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구악을 일소한다는 명분으로 정권을 중심으로 각종 사회개혁 조치가 시행됐다. 

최고 권력 기관인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조직한 군사정권은 그 일환으로 자유당 정권과 유착됐던 이정재로 대표되는 정치깡패 세력들을 일소하기도 했고 부정부패에 척결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야심찬 시작과 달리 군사정권은 증권파동, 워커힐 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 바찡꼬사건을 포함한 4대 의혹 사건과 최근 과거사위에서 중대 인권침해 사건으로 판단한 서산개척단, 대한청소년개척단 사건도 있었다.

이는 구악을 청산하는 혁명세력임을 표방한 군사정권을 신악으로 불리게 했다. 새 시대가 열렸지만, 국민들은 자유당 정권과 별다를 것이 없는 세상 속에서 살게 됐기 때문이다. 5.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사정권은 민정 이양이 이행된 이후 정치세력으로 변신해 집권세력이 됐지만, 4대 의혹 등은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게 했다. 

 

 

 




중앙정보부가 주도했던 주가조작 사건, 1962년 증권파동 


수사반장1958에서는 4대 의혹 사건 중 증권파동, 서산개척단 사건을 드라마 스토리와 함께 했다. 7회에서는 증권파동에 앞서 박영한이 포함된 수사팀의 위기 극복 과정이 전반부와 함께 했다. 박영한 수사팀의 중요한 버팀목이었던 유대천 반장에 대한 린치와 함께 수사팀은 그 존립 기반마저 흔들렸다 

린치의 배경은 종암 경찰서에서 대립관계에 있었던 전 서정과 신임 서장과 관련이 있었다. 전 서장은 친일 경찰들이 주축이 된 사조직에 포함된 인물이었다. 경찰의 중요한 기득권 세력인 친일 경찰들은 권력과 유착하며 경찰에서 강력한 권력이 됐고 각종 이권을 장악했다. 그들은 고질적인 경찰의 부정부패의 중심이기도 했다. 유대천 반장은 이런 경찰에서 부정비리 연루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서장의 친일 행각과 사조직 연루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경찰서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친일 경찰인 서장이 경찰 부국장으로 영전하는 상황에 반발해 군사정권에 투서를 지속 제출하며 맞섰다. 이에 친일 경찰들은 유재천 반장의 린치를 감행했고 신임 경찰서장은 그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그는 전쟁영웅이었지만, 실상은 친일파 인사였고 6.25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군납비리에 연루되어 강제 전역당했지만, 친일 경찰 세력과 연결되며 경찰에서 다시 기회를 잡았고 종암 경찰서 서장으로 영전했다. 

박영한 수사팀은 유대천 반장의 린치 사건에 이들이 연루됐음을 인지하고 본격 수사에 나섰지만, 그들이 감당하지 힘든 조직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 상황에서 유대천 반장은 부국장의 친일 관련 자료와 그들의 자신에 대한 린치 사건 등을 덥은 조건으로 수사팀에 대한 자유로운 활동을 약속받는 타협을 했다. 수사팀의 거악으로 척결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과의 거래에 수사팀은 좌절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악과 계속 맞서 싸우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AI 생성 이미지

 




증권파동을 중심으로 한 7회 


그렇게 다시 입지를 회복한 수사팀 앞에 한 증권사 직원의 극단적 선택에 의한 사망 사건과 한 어린 아들과 함께 살아가던 한 여성의 끔찍한 피살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과거의 사건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지금의 우리와도 연결점이 있는 사건이었다. 

증권사 직원의 사망사건은 그가 회삿돈을 횡령한 사실이 밝혀지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였지만, 사건의 실체를 파고들수록 거대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박영한의 수사팀은 수사 과정에서 사망한 증권사 직원이 경제사건을 전담하는 검사와 만남을 가지려 했고 그 검사도 석연치 않게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이 사건들이 단순한 횡령 사건이 아님을 인지한다. 

박영한 수사팀의 노력으로 이 사건은 5.16 군사정변 이후 군사정권이 창설한 중앙정보부 중정이 연루된 주가 조작 사건과 관련되었음이 밝혀진다. 중정은 한 하수인을 앞세워 증권사들과 결탁해 한 종목에 대한 주가조작을 했고 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챙기려 했다. 주가조작은 지금도 자본시장의 근간을 흔들리게 하고 공정성을 해치는 악질적인 범죄다.

이런 주가조작 사건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근거로 발생하고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개인 투자자들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주가조작 세력은 개인들의 돈을 갈취해 수익을 챙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박영한 수사팀은 이런 흑막을 파악했다. 사망한 증권사 직원은 관련 비리를 수사기관에 알리려 하다 살해를 당했다. 그들은 담당 검사도 함께 살해했다. 증권사 직원 사망사건과 관련해 유언장을 가짜로 만드는 등 사건 조작도 했다. 

박영한 수사팀은 탐문과  유언장의 조작을 밝히기 위한 전문가의 필적 대조 등을 통해 증거를 확보했고 범인 검거에 성공한다. 하지만 중정과 연결된 사건인 탓에 제대로 된 단죄에는 이르지 못한다. 사건을 주도한 인물은 중정의 비호를 받으며 혐의에서 벗어났다. 살인을 실행한 이들은 박영한 수사팀의 강경한 대처로 기소에 이르지만, 그들은 모두 의문사나 실종되면서 제대로 단죄 받지 못했다. 다행히 증권사 직원의 억울함은 풀렸지만, 찜찜한 사건 해결이었다. 

실제로 7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언급한 1962년 증권파동은 중정이 증권업자와 증권사들과 결탁해 주가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는 주식시장이 열린지 얼마 안 된 시점에 증권붐이 강하게 일어났고 많은 이들이 사전 지식 없이 주식에 투자하며 시장이 과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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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죄되지 못한 주가조작 그리고 4대 의혹


중정은 이를 이용해 수익을 창출해 정치자금 등으로 활용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중정은 그들의 권한을 이용해 증권사는 물론이고 금융기관의 자금을 투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주가조작에 나선 종목의 대량 매도에 따른 대금 지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었다. 그중에는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되며 국고 손실도 발생했다. 

훗날 이와 관련해 수사가 이루어지고 주가조작을 주도한 이들이 수사와 재판을 받았지만, 대부분 무죄로 풀려났고 사건의 진상 규명은 희지 부지됐다. 전형적인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건이었고 힘 있는 이들이 힘없는 이들의 돈을 갈취하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힘 있는 이들은 끝내 단죄되지 못했다. 이 사건은 건전한 자본시장의 성장을 막았고 한국 주식시장 발전을 더디게 했다. 이후 대기업을 포함해 상당수 기업들은 자금 조달을 방법으로 은행 등 금융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자금은 고리의 사채시장을 크게 하는 부작용을 발생했다. 

이 외에 군사정권 치하에서는 워커힐 호텔 건설과 관련해 정부 예산을 유용하고 군인들을 공사에 동원하는 등 권력 남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63년 개관한 워커힐 호텔은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리조트호텔로 숙박시설 외에 다양한 오락 시설이 함께 했고 오랜 세월 우리나라 서울을 대표하는 호텔이었고 지금도 손꼽히는 호텔이다. 이런 상징성에서 워커힐 호텔은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가 함께 한 어두운 역사가 있다. 이 호텔 건설의 주축도 중앙정보부 중정이었다. 

또한, 국내 자동차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새나라자동차와 관련해 부동한 권력의 힘이 작용했고 정작 자동차 산업 육성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고 일본 차 수입만 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막대한 횡령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결국, 국내 자동차산업 육성은 한참 뒤 이루어졌다. 

바찡꼬 사건은 과거 정권에서는 엄격히 금지됐던 도박사업인 바찡꼬가 국내에 유입되어 사업이 시행된 사건이었다. 재일 동포 사업자가 주축이 된 이 사업은 기계의 도입부터 의혹이 있었다. 도박 기계의 유입은 국민 정서상 용인되기 힘든 일이었다. 당연히 기계 도입 등 과정에서 권력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 강하게 일어났다. 악화된 여론에 관련 사업의 영업허가가 취소되고 연루자들이 처벌받았지만, 관련 자금 등 진짜 의혹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렇게 4대 의혹 사건들은 군사정권의 도덕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일들이었다. 그들의 혁명이라 했던 5.16 군사정변의 명분도 흔들리게 했다. 관련하 사건들은 민정 이양 후 군사정권 세력들이 창당한 공화당의 정치자금으로 사용됐을 것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있었지만, 추측으로만 남게 됐다. 당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충분히 의혹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거대한 힘에 의해 진상 규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 사건의 여파로 중앙정보부를 창설하는 등 정권의 실세였던 김종필은 관련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외유를 떠나게 됐다. 이는 정치 역학 관계에서 큰 변수가 됐다. 

 

 




달라진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은 부조리 


드라마에서 박영한 수사팀은 거대한 권력형 비리를 단죄할 수 없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그 힘과 맞서 정의를 구현하려는 수사팀의 모습을 대비했다. 박영한이 말한 '그림자가 길다'라는 말은 수사반장 마지막 회에 최불암 배우가 했던 말로 시대가 변하고 발전할수록 악이 근절되지 않고 더 강하게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고 있다. 수사반장 1958에서도 그 시절 그리고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사회 부조리를 풍자하고 있다. 

이 사건에 이어 8회에서 등장한 한 여성의 살인 사건은 애초 그와 가까운 사이였던 애인이 유력한 용의자였지만, 수사를 진행할수록 명백한 증거들의 허점이 드러나며 미궁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끈질긴 탐문과 과학적 수사를 통해 진범에 다가갈 수 있었다. 충격적이게도 그 범인은 사망한 여성의 어린 아들이었다. 

아들은 병약하고 순진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사실은 철저한 계획을 통해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를 살해하고 어머니 살해의 죄를 어머니의 애인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다. 그 계획은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았던 박영한에 의해 진실이 밝혀졌다. 범인인 아들은 마지막 순간 그가 형사처벌은 받지 않은 촉법소년임을 주장하며 수사팀을 당황하게 했다. 범행부터 사후 대응까지 모두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였다. 

 

 

 




지금도 논란이 되는 촉법소년 문제 


하지만 그는 실제 촉법소년의 적용을 안 받는 나이였고 죗값을 치르게 됐다. 이 사건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촉법소년과 관련한 법의 허점을 생각하게 했다. 청소년 범죄가 날로 잔인해지고 그 나이가 어려지는 상항에서 지금의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수사반장1958은 현재의 문제를 시대를 초월해 조명했다. 

한편으로 수사반장1958은 당시 있었던 인권침해 사례인 서산개척단 사건을 당시에 만연했고 지금도 발생하는 취객들을 상대로 한 퍽치기 사건과 함께 조명했다. 퍽치기 사건은 서산개척단에 소속됐다 나온 청소년들에 의한 범죄였다. 그들은 생계를 위해 범죄에 나섰고 수사팀에 덜미가 잡혔다. 

이 과정에서 수사팀은 서산개척단이 부랑인 이주정착이라는 애초 사업 목적과 달리 가혹행위가 난무하는 인권침해 사건임을 인지하게 된다. 드라마에서 박영한 팀은 서산개척단을 찾아 폭력에 시달리던 청소년들을 구출하고 일침을 날리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실제 서산개척단의 인권침해는 1960년대와 1970년대까지 계속됐다.

서산개척단에 소속된 이들은 부랑자들과 윤락여성이 대부분이었다는 발표와 달리 그와 무관한 이들도 많았다. 그중에는 어린 청소년들도 있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강제 노역과 폭력에 시달렸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이들도 다수 있었다. 긴 세월 강제 노역에 시달린 이들은 국가가 약속했던 토지 분배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서산개척단 사건 


이 사건은 최근 진상이 밝혀진 선감학원 사건과 5공화국 시절 대표적 인권침해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 등과 함께 국가의 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였다. 당시는 물론이고 최근까지 복지 정책은 부랑자들과 고아 등 불우한 이들을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여기기보다는 사회와 분리해 수용하고 감시해야 하는 존재로 여겼다. 이들은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들이었다. 그런 인식은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자행되는 원인이었다. 

최근에 와서야 그 피해가 드러나는 등 진상이 규명되고 있지만, 긴 세월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의 원통함은 여전히 남아있다. 또한, 그들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지금이라도 진상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드라마에서 이런 사건들이 조명되는 건 최근에는 거의 없었다. 이에 수사반장 1958은 이전 회와 달리 코믹적 요소가 덜해지고 다소 무거운 분위기에서 스토리가 전개됐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이 알려지고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가지게 하는 건 긍정적이었다. 드라마에서나마 완벽하지 않지만, 일정 단죄가 이루어진 점도 의미가 있었다. 그 속에서 박영한 팀은 젊은 혈기로 무조건 밀어붙이는 수사팀이 아닌 침착하고 보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 실체에 접근하는 수사팀으로 발전하는 서사를 보였다. 

남은 2회는 아직 그들과 대척점에 있는 경찰 내 거악과 그들과 연결된 소위 힘 있는 자들의 범죄에 대한 단죄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경찰 고위직으로 이끈 부국장을 배신하고 독자 행보에 나선 종암 경찰서장은 더욱더 권력에 유착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보이고 이와 관련해 수사팀과 큰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예고편에 등장한 한 공장의 여성 노동자들들의 잇따른 실종과 한 여성 노동자의 변사체 발견은 긴장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박영한 수사팀이 거악과의 마지막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또 어떤 풍자로 시대 조명으로 매운맛을 더할 수 있을지, 다시 현재로 돌아올 것으로 보이는 엔딩에서 과거의 현재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남은 2회가 궁금해진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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