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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아프리카의 서북쪽 끝, 대서양과 지중해를 모두 접하는 나라 모로코는 북으로는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로 유럽과 근접해 있고 드넓은 사하라 사막과 아프리카의 험준한 산맥인 아틀라스산맥까지 다양한 지형이 함께 하고 있다. 기후 역시 해양성 기후와 건조한 사막기후 고산 지역의 기후가 혼재한다. 

모로코는 이런 다양한 환경 조건과 함께 나라의 역사도 로마의 지배를 시작으로 다수 이민족의 침략이 있었고 세계 역사에도 언급되는 이슬람 대국인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독자적인 이슬람 왕국의 역사를 만들어가기도 했다. 그 이슬람 왕국은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유럽의 식민지 쟁탈전이 벌어졌던 제국주의 시대에서 그 자주성을 유지했다. 1777년 신생 국가였던 미국을 세계 최초로 국가로 승인한 나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모로코 역시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를 피하지 못했다. 20세기 다시 심화된 프랑스와 스페인 두 서구 열강의 침탈에 모로코는 1912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보호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신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 비해 식민 지배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길지 않았고 1956년 독립하여 자주국의 역사를 다시 시작했다. 

모로코는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국왕이 군 통수권자가 되고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역할을 하는 등 전제군주제의 혼합된 독특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울러 인구 구성에서 이슬람교가 아랍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이슬람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지만, 선사시대부터 북부 아프리카에 살았던 원주민  베르베르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특징도 있다. 

 




아프리카 가장 서쪽 다양성의 나라 모로코 


이처럼 다채롭고 다양성이 공존하는 나라 모로코를 EBS 세계테마기행이 찾았다. 모로코는 유럽에 아주 근접한 지리적 여건 탓에 지근거리의 나라 스페인, 포르투갈과 묶여 패키지여행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그 때문에 몇몇 여행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인지도가 높다.

모로코의 가장 큰 도시, 카사블랑카는 동명의 영화와 노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졌고 모로코의 대표적 여행지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그 밖에 모로코에는 지중해와 대서양과 면한 바다 풍경, 사하라 사막의 풍경까지 색다르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  테마기행에서는 이런 여행지와 함께 모로코 사람들의 삶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장소도 찾았고 모로코의 역사, 문화를 보다 세심하게 살폈다.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 여정에 포함된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에서 만난 고대 유적지, 리바트를 가기 전 찾은 베르베르인들의 천년 역사를 간직한 마을, 라마단을 맞이한 모로코인들의 생활상과 라바트 인근 작은 도시의 시장과 소박한 이슬람 사원에서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먼저 카사블랑카를 대표하는 유적지는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인 하산 2세 모스크다. 대서양과 접해 있는 이 모스크는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매우 이색적이었다. 높이가 200여 미터에 이르는 탑인 미라네트는 이 모스크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카사블랑카의 최고 유적지를 떠나 여정은 우리의 정육 식당처럼 고기를 사서 별도 조리를 거쳐 즐길 수 있는 모로코만의 독특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멈춤이 있었고 100미티어 넘는 거대한 계단형 폭포인 우즈드 폭포에서 모로코의 대자연과 함께 했다. 광활한 사하라 사막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 모로코에서 만난 이 폭포는 청량감으로 다가왔다. 직접 사공이 노를 저어 폭포 바로 앞으로 향하는 투어는 아찔함도 있었지만, 정겨움이 함께 했다. 

 




천년 역사의 베르베르인 마을 


그리고 다른 여행 프로그램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베르베르인의 마을은 시간 여행을 하는 시간이었다. 모로코 중부 산악지역에 자리한 베르베르인의 마을 타나그말트는 천년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마을의 모습들은 그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마을의 주민들이 하루하루 남. 여가 벌갈아 이용하는 목욕탕은 우리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아궁이에서 불을 피워 목욕물을 데우는 정겨움이 있었다. 

오래된 마을은 분명 여러 가지로 불편함이 있겠지만, 이 마을에 사는 베르베르인들의 그들의 전통을 지켜가며 마을과 함께하고 있었다. 베르베르인들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있지만, 아랍 민족과는 다른 혈통이고 아랍인과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 탓인지 마지막 이슬람 대제국이었더 오스만제국 시기에는 차별적 대우를 받기도 했다. 모로코가 식민 지배를 받던 시기에도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소외됐고 도시 지역보다는 척박한 내륙 지역에서 농사나 목축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타나그말트 마을은 이런 베르베르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담고 있는 곳이었다. 

베르베르인의 마을을 떠나 여정은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로 향했다. 라바트는 승리의 근거지라는 의미를 그 이름에 담고 있다. 과거 고대 로마제국에서 이곳을 점령해 정착촌을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요새화됐다. 이후 12세기 모로코를 포함해 북부 아프리카를 지배하던 이슬람 왕국 알모하드 왕조 시기 라바트는 스페인 공격을 위한 전초기지로 발전했고 군사 기지로서 기능을 강화했다. 이 시기 라바트는 승리의 근거지 리바투 알 파트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https://worldtrip.ebs.co.kr/worldtrip/replayView?siteCd=KH&courseId=BP0PAPD0000000013&stepId=01BP0PAPD0000000013&lectId=60468392

 

세상의모든기행 - 시간을 거슬러 모로코-천년 도시를 거닐다

라바트(우다야스 카스바, 올드 메디나), 고속도로 휴게소 정육 식당, 우조드 폭포, 타나그말트(베르베르족 마을)...

worldtrip.ebs.co.kr

 

 



수도 라바트 

 
이후 알모하드 왕조는 이베리아반도까지 그 세력을 넓혔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밀려 지배력을 상실했고 내분이 발생하면서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라바트는 모로코의 중요한 도시로 그 역사를 이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라바트에는 알모하드 왕조시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미완의 모스크지만, 그 모스크의 규모를 상상하게 하는 거대한 탑이 있었고 지금도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거대 성채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모로코의 과거 영광을 상징하고 있는 유적지였다. 

여정의 막바지 라바트 인근 도시 살레에서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했다. 시장의 풍경을 보고 그곳에서 작은 이슬람 사원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아무리 바쁜 일과에서 꼭 시간이 되면 성지인 메카를 향해 절을 하고 예를 갖추는 그들의 모습은 종교에 대한 강한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 

모로코는 얼마 전 있었던 2022 카타르 남자 월드컵에서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에 진출하는 새 역사를 만들었다. 당시 모로코는 조 예선 통과조차 불투명했지만, 예선부터 축국 강국들을 연파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월드컵에서의 선전은 모로코라는 나라에 대한 관심을 더 크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모로코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과 그 나라를 소개하는 제한된 콘텐츠에 의존하고 있다. 세계테마기행 모로코 편은 모로코가 어떤 나라인지 알 수 있었다. 알려진 여행지 외에 모로코인들의 가공되지 않은 일상을 만날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 그 속에서 모로코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본 게시글은 EBS 스토리 기자단 18기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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