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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은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이었다. 3년여의 전쟁 기간 국토는 황폐화됐고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 전쟁의 상처는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휴전 협정은 계속되는 전쟁의 비극을 멈추게 했지만, 전쟁을 멈추게 한 건 아니었다. 


한반도의 허리는 남. 북의 경계를 이루는 거대한 경계선이 그어졌다. 육지에는 긴 철책선이 만들어졌고 바다와 하늘도 자유로이 오갈 수 없게 됐다. 남. 북은 휴전선을 경계로 각각 2KM의 완충지대, DMZ으로 불리는 비무장지대를 설정했다.


하지만 비무장지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남. 북한의 비무장지대에는 엄청난 화력의 군사 관련 시설이 위치하고 중무장 상태로 상호 대치중이다. 남한에는 남방 한계선과 인접한 지역을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설정했다. 민통선을 넘을 수 있는 이들은 오래전부터 그 지역에 사는 이들이나 허가를 받은 이들로 한정됐다. 


그렇게 사람의 발걸음이 통제된 DMZ와 민통선은 전후 수십 년간 잊힌 지역, 가면 안 되는 지역이 됐다. 몇몇 지역이 안보 관광지로 개방되어 사람들이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장소는 매우 한정적이었다. 

 

 

 

 

안보 관광지가 밀집한 파주에 최근 일반인들에게 개방된 곳이 있다. 민통선 지역에 주둔한 미군 기지 캠프 그리브스다. 캠프 그리브스는 1953년 7월 한국 정부가 지역에 주한 미군의 주둔을 위해 토지를 제공하고 미 8군 2사단 소속의 부대가 시설을 만들고 군영을 설치했다. 가장 가깝게는 506연대가 이곳에 주둔했다. 


이 시설은 시대 흐름에 따라 그 필요성이 크게 줄었고 2004년 폐쇄가 결정됐다. 이후 2007년 미군은 캠프 그리브스 시설을 한국에 반환했다. 이 시설은 반환 후 민통선 지역에 위치한 탓에 그 활용에 제약이 컸고 철거될 위기에 있었지만,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에서 국방부와 협약을 맺고 이 지역을 안보체험관광지로 개발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특히, 2016년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의 촬영장이 되면서 캠프 그리브스의 대중적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다. 이에 캠프 그리브스는 예약제로 제한된 인원만 방문할 수 있는 시설에서 벗어나 당일 방문과 관광이 가능한 새로운 관광지로 거듭났다. 


최근에는 임진각 관광지에서 이곳으로 연결되는 케이블카가 설치되고 보다 편하게 더 많은 이들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다. 민통선 내 그것도 과거 미군 시설을 직접 살필 수 있다는 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고 이로 인해 그 방문자들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개방 후 코로나 팬데믹으로 시설 방문이 상당 부분 제한되기도 했지만, 이제는 개방된 시설을 자유롭게 거닐거나 살필 수 있고 편의 시설도 완비되어 방문자들이 보다 편안하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5월의 어느 주말, 캠프 그리브스를 찾았다. 그곳에서 6.25 한국 전쟁과 관련한 사진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캠프 그리브스로 향하는 케이블카

 

 

민통선을 넘어 이동하는 긴장감과 반대로 케이블카 아래로 보이는 농촌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캠프 그리브스의 조감도, 아쉽게도 대부분 시설은 관람할 수 없었다. 대신 13번 갤러리 그리브스에서 열리는 사진전을 볼 수 있었다. 

 

 

 

내부에 들어서니 한국 전쟁과 관련한 인물들의 사진이 크게 보였다. 

 

 

갤러리로 활용되는 이곳은 과거 캠프 그리브스 내 미군들이 이용하는 볼링장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부대 내 볼링장, 접경지의 긴장과는 크게 대조되는 풍경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주둔했던 미군들의 정복과 전투복이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이곳에 민통선 내 북한과의 접경지임을 보여주는 지도, 휴전선 현황 

 

 

한국전쟁 관련 사진 자료들 모음 

 

 

마거릿 히긴스 - 위키트리

 

 

사진에 등장하는 한 미국인 여성이 눈에 띄었다. 그의 이름은 마거릿 히긴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전장에서 취재활동을 했다. 여성을 배려할 수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그는 수많은 위험을 이겨내고 취재활동을 이어갔고 한국전쟁 관련 소식들을 미국과 서방에 알렸다. 

그는 취재활동을 통해 느끼고 경험한 한국전쟁의 상황을 미국에 돌아가 알리고 이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이런 활동은 1951년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했다. 이후에도 그는 한국전쟁 관련 책을 집필해 출판하는 등 관련한 활동을 지속했고 베트남 전쟁에서도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1966년 지병으로 4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활동은 긴 세월이 흘러 한국에서도 인정을 받았고 2010년 한국 정부는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그는 위험에 굴하지 않는 언론인이었고 보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전쟁을 살피고 그 참상을 알린 전쟁의 증인이었다.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전쟁의 장면들

 

 

외부 전망대 가는 길

 


불과 얼마 거리에 군사 분계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게 하는 평화로움이 있었지만, 철조망 밖에는 다수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는 모습에서 전쟁이 아직 현재 진행형인 우리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은 아직 우리 삶과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둔감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우리들이다.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전쟁 뉴스를 그저 덤덤히 볼 뿐이다. 그 안에 사람들의 삶을 외면하고 있다. 우리는 불과 70여 년 전 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그리고 그 전쟁의 상처는 곳곳에 남아있다. 이런 관광지의 모습을 스쳐 지나가는 콘텐츠로만 소비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전쟁은 우리 모두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고 먼 훗날 추억이 될 수 없다. 전쟁을 피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는 노력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때가 되면 캠프 그리브스와 같은 곳이 진정한 역사의 현장이 될 수 있다. 



사진,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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