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등을 통해 재조명되고 있는 고려의 역사, 고려 거란 전쟁에서 여러 인물들이 새롭게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과거 고려 거란 전쟁은 3차 고려 거란 전쟁의 마지막 전투, 귀주대첩으로 대표됐고 그 승리를 이끌었던 강감찬이 중심인물이었다. 흔히, 고려와 거란의 역사는 귀주대첩 강감찬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를 통해 2차 고려 거란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 양규라는 위대한 장군을 알 수 있었고 위기의 고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하공진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고려사에서는 위대한 군주로 칭송받았던 현종에 대해서도 다시 살필 수도 있었다. 현종은 고려 왕조의 치열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어린 시절부터 수차례 목숨을 잃을 위기를 넘겨야 했다. 그의 즉위 역시 강조의 정변으..
중국 역사에서 중앙아시아와 몽골 지역에 자리한 유목을 주로 하는 북방 민족들은 항상 큰 위협이었다. 중국에서 북방민족은 잔혹한 침략자였고 야만인들이었다. 실제 고대 중국 역사에서부터 북방 민족들은 끊임없이 중국을 침략해왔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진시황제는 북방민족의 침략에 대비해 만리 장성의 대 역사를 시작했고 왕조가 수차례 바뀌는 상황에서 그 사업은 지속됐다. 지금 만리 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역사 유적이다. 자신들은 세상의 중심이라 할 정도로 자존감이 강했던 중국이었지만, 북방민족은 늘 두려운 상대였다. 북방민족을 야만인을 뜻하는 오랑캐로 칭한 건 그들에 대한 비하이기도 하지만, 두려움의 표현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북방 민족들은 중요한 대결 상대였다. 만주 지..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2차, 3차 고려 거란 전쟁을 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에 당시 왕이었던 현종과 3차 전쟁의 대승을 완성했던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또한, 현종을 왕위에 옹립한 정변을 일으킨 강조와 2차 전쟁의 영웅 양규가 극 초반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2차와 3차 전쟁 이전 거란의 1차 침략을 극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있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외교를 했다고 추앙받는 서희가 그 인물이다. 서희는 1차 전쟁 당시 거란의 장군 소손녕과 담판을 통해 거란의 침략을 멈추고 강동 6주의 지배권을 확정해 영토까지 넓히는 성과를 만들었다. 각종 역사서나 위인전에서 서희가 이룬 성과는 지금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서희는 이런 외교적 성과와 함께 ..
고려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라 할 수 있는 30여 년간의 고려 거란 전쟁 기간을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이 5회부터 본격적으로 2차 고려 거란 전쟁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강조의 정변이라는 큰 사건이 있었고 현종의 즉위가 있었다. 고려 현종은 드라마에서처럼 실제 유년기부터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며 큰 시련을 겪어야 했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다. 현종은 왕위 계승에 있어 우선 순위에 있었지만,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고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서 고아가 됐고 권력 투쟁의 중심에 서야 했다. 아무런 정치적 배경이나 왕실 내 우호세력이 없었던 상황에서 승려가 되기도 했고 계속된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왕위에 오른 것도 선왕이 시해당하는 정변의 결과였..
고려와 거란 전쟁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이제 제2차 여요 전쟁, 고려 거란 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 전쟁은 1010년 10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이어졌다. 이 전쟁에서 고려는 서북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수도 개경이 함락되고 당시 왕이었던 현종이 나주까지 몽진을 하는 등 치명적인 피해를 당했다. 고려 역사에서는 아픈 순간이었지만, 이 전쟁은 결코 패배한 전쟁이 아니었다. 그런 판단의 배경에는 양규라는 인물이 있었다. 양규는 2차 고려 거란 전쟁이 발발하기 전 고려 목종 집권기 형부낭중,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관리였다. 이에 그가 무관이 아닌 문관 출신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한다. 그가 고려사에서 한층 비중 있게 등장하는 건 강조의 정변 이후 권력 구도가 ..
우리 역사의 중심은 각 시대 왕들이다. 과거부터 전해지는 역사서는 왕의 연대기를 중심으로 기술되는 게 보통이고 각 그 시기 집권층들이 역사와 관련 기록 편찬을 주도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이는 역사를 남성들의 역사로 기술하게 했다. 인류 역사에서 남성 중심으로 가부장적 사회 질서가 일찍부터 자리를 잡았고 고대부터 국가 권력구조 역시 그 흐름이 이어졌다. 각 왕조의 왕은 남성들이 승계하는 구조였다. 왕조 계승의 원칙은 부자간 세습, 더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에서 장남으로 세습이 원칙이었다. 물론, 정치적 상황의 변화와 집권층 내 권력 투쟁의 결과로 부자 세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형제 세습이 이루어지거나 형제간 권력 투쟁으로 장자 상속의 원칙이 깨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중요한 건 여성들은 권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