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결한 삼국 시대는 군사적 대결만큼이나 치열한 외교전이 전개되는 시기였다. 삼국은 한강 유역의 지배권을 놓고 대결했고 한강 유역을 차지하는 나라가 삼국 경쟁의 주도권을 잡았다. 그 순서는 백제, 고구려, 신라의 순이었다.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건 신라가 삼국 중 가장 발전이 늦었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라는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동남쪽에 치우쳐 있었다. 이는 중국의 앞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했다. 중국으로 사신을 파견하려 하면 고구려 또는 백제의 협조가 필요했다. 마침 이들 나라는 신라보다 국력이 강했고 신라로서는 중국과의 교류에 제약이 있었다. 신라는 바다 건너 일본, 왜와는 전통적으로 대립관계에 있어 교류보다는 군사적 충돌이 많았고 일찍부터 대외 무역과 ..
월드컵이나 국제 축구 관련 기사 등을 살피면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FIFA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한 나라에서 복수의 축구 협회가 등록된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이 그렇다. 영국은 FIFA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등록되어 있고 국제 경기에 하나의 나라와 같이 출전한다. 2022년 11월에 열리는 카타르 월드컵도 다르지 않다. 카타르 월드컵 B조는 같은 영국팀의 대결 가능성이 크다. 시드를 배정받은 잉글랜드가 이 조에 선착해 있다. 여기에 이란과 미국이 더해졌다. 남은 한자리는 유럽 플레이오프 승자가 들어올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그 플레이오프에 웨일스와 스코틀랜드가 우크라이나와 경쟁 중이다. 예정대로라면 웨일스가 스코틀랜드 와 우크라이나 경기의 승자와 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대결..
우리가 흔히 보는 세계지도에서 아일랜드는 유럽의 가장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거리만 먼 나라다. 섬나라 영국의 서편에 자리한 또 다른 섬나라 아일랜드는 물리적 거리는 우리와 멀지만,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는 공유하고 있다. 아일랜드의 영국에 의한 피 식민 지배의 역사는 무려 750여 년에 이른다. 그 기간 아일랜드는 수많은 고난의 역사를 쌓았고 그렇게 생긴 응어리는 지금도 영국에 대한 불편한 감정으로 국민들의 마음 한 편에 남아있다. 2022년은 1922년 아일랜드가 자유국으로서 독립을 선포한지 100년이 되는 해다. 유럽의 마지막 식민자였던 아일랜드는 이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아일랜드는 긴 고난의 역사를 견뎠고 치열하게 투쟁했다. 그렇게 독립한 아일랜드는 1970년대까지 농업과 축산이..
우리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은 그의 뛰어난 자질과 함께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수립한 강력한 왕권이 있어 성군이 될 수 있었다는 게 보통의 평가다. 세종대왕은 건국 후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왕권과 신권의 대립했고 왕자들 사이에서도 대립이 있었다. 이는 유혈 충돌로 이어졌고 다수의 사람들이 희생됐다. 조선을 설계한 개국공신 정도전도 권력 투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고 조선 건국한 이성계 역시 사실상 아들 이방원에 밀려 권자에서 물러나 쓸쓸한 노년을 보내야 했다. 치열한 권력 투쟁을 이겨낸 이방원은 정도전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정승들이 주도하는 정치 시스템인 의정부 서사제를 폐지하고 왕이 주도하는 6조 직계제를 채택하며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다. 왕권에 위협이 되는 세력은 외척이든 공신이든 숙청했..
1863년 1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 제16대 대통령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했다. 당시 미국은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 11개 주와 북부지역을 기반으로 한 링컨 대통령 정부의 남북전쟁 중이었다. 1861년부터 시작한 전쟁은 북부 연합이 우세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장기전으로 이어졌고 남북 모두에 인적, 물적으로 큰 피해가 발생한 참혹한 대결이었다. 링컨의 노예해방 선언은 전쟁의 전세를 북부에 유리하게 바꾼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링컨으로서는 정치적으로 큰 승부수였고 결과적으로 미국이 견고한 연방 국가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워싱턴이 미 건국의 아버지라면 링컨은 미합중국을 연 대통령으로서 미국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다.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347회에서..
우리 역사에서 마지막 왕조였던 조선시대의 역사는 1592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가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다. 그만큼 임진왜란은 사회,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었다. 1592년부터 7년 동안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임진왜란은 막대한 인적, 물적 피해를 가져왔다. 전 국토는 황폐화됐다. 산업의 근간인 농업을 지탱하는 농토의 피해는 극심했다. 그때의 피해는 조선 후기에 복구되지 못했다. 또한, 전란의 와중에 조선의 사회 시스템 전반이 파괴되고 전후 수습에 긴 시간이 필요했다. 여기에 16세기와 17세기 소빙기라 불릴 정도로 이상 저온 현상으로 대표되는 이상 기후는 농업생산을 더 위축시키고 식량난을 불러왔다. 전쟁과 이상기후는 일반 백성들의 삶을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기아와 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