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전 터키는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였다. 멋진 자연과 동. 서양이 교차하는 독특한 문화 전통, 6.25 한국 전쟁 참전 등의 이유로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칭하는 현지의 우호적 분위기도 터키에 대한 친밀감을 높였다. 그중 이스탄불은 대표적 관광지다.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시아와 유럽이 나뉘고 아프리카와도 연결되는 지리적 위치는 이스탄불을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로 만들었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스탄불을 소개하는 각종 프로그램이나 영상을 보면 이슬람의 문명과 서양의 문명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때문인지 이스탄불은 로마제국 시대 그 이름을 바뀌기 전까지 비잔티움이라 불렸고 이후 고대 그리스어에서 온 콘스탄티노폴리스나 콘스탄티누폴리스 등으로 불렸다..
조선 제15대 임금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왕의 시호조차 받지 못한 채 폭군으로 기록되었지만, 후대에 와서 그 평가가 다라진 임금이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당시 세자로서 제2의 정부인 분조를 이끌며 전쟁 극복에 큰 역할을 했고 왕위로 올라 전후 복구와 신흥 강국 후금과 명나라 사이 중립 외교를 통해 조선을 또 다른 전란의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등의 치적이 있었다. 하지만 광해군은 그가 살던 시기 실패한 임금이었고 긴 유배생활 끝에 그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그는 왕위에서 폐위된 이후 강화도와 제주도로 유배지를 옮겼고 일체의 이동과 사람들과의 만남이 통제된 가택연금 상태로 18년을 보냈고 그가 왕으로 집권한 15년보다 더 긴 세월이었다. 비운의 왕이었던 광해군의 삶에 있어 대척점에 있는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