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 곳곳에서 복고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습니다. 과거를 추억하는 레트로를 벗어나 새로운 유행이 되고 있는 뉴트로가 중요한 문화적 흐름이 됐습니다. 방송에서도 뉴트로는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는데 그 흐름 속에서 30여 년의 시간을 넘어 다시 조명받는 연예인도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결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어지고 있다는 걸 강하게 느끼는 요즘입니다. 서울 역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행로로 바꾼 서울로 7017을 비롯해 곳곳에서 고대의 역사부터 근대의 역사적 장소들을 보존하고 새로운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광화문 근처의 돈의문 박물관 거리도 그 중 한 곳입니다. 이곳은 근처의 경희궁과 서울역사문화박물관, 경찰 박물..
서울 한 가운데 우뚝 선 남산은 도심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개발의 파고속에서 그 모습이 조금 변하긴 했지만, 계절마다 그 모습을 달리하며 도시인들의 쉼터로 도시의 삭막함을 덜어주는 힐링의 장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보다 편리하게 도보로 찾을 수 있도록 보행로가 정비되고 공원도 잘 조성되었습니다. 남산의 공원은 서울시민은 물론이고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 곳입니다. 저도 지난 주말 남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보았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과 함께 하는 풍경이 잠깐이었지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사진으로 담아보았습니다. 남산공원 입구, 올라가는 길에서 강아지풀 높아진 하늘과 함께 독립운동가 이시영 동상 코스모스와 함께하는 길 조금..
도심 한가운데 고가 도로를 보행로로 공원으로 바꾼다는 발상 자체가 무척이나 혁신적이지만, 그 탄생 때부터 논란이 많았던 서울로 7017입니다. 많은 차량이 이동하는 고가 도로를 없앤다는 건 상당한 교통 체증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었고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상당했습니다. 전시행정이라는 비난도 있었습니다. 보행로로서 제 기능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습니다.지금 서울로 7017은 서울의 명소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쉼터가 부족하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걷는 길이 되었고 주변의 상권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로 7017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행사도 함께 열리면서 도시 재생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습니다. 저도 서울 도심에 가면 이 길을 걷곤 합니다. 사람들이 마음껏 도심에서 걸을..
긍정과 비판 여론이 공존하며 최근 개장한 서울로 7017, 수명이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행로로 바꾼다는 발상 자체만으로도 많은 관심을 모았던 사업이었다. 안전 문제부터 시작해서 교통체증,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타당성, 운영, 관리의 문제까지 이전까지 없었던 시도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그리고 서울역 고가도로는 서울로 7017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서울로 7017은 그 이름에서 나오듯 1970년대 고도 성장기에 자동차의 빠른 주행을 위해 지어진 고가도로가 2017년 사람들의 보행도로의 변신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 아닌 공존을 함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낡은 것은 무수고 새롭게 반듯하게 지어지는 것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서울로 7017은 도시재생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
거리를 걷다가 만난 노점상, 그 모습들을 모아보았습니다.노점상이 통행을 막고 불편함을 준다는 이들도 있고어떤 기업형 노점상은 막대한 이익을 취하면서 세금도 잘 안 낸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실제 일부 노점상 연합은 과도한 자릿세를 요구하는 등일종의 이익단체가 된 곳도 있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이 있는 건당연하겠죠. 하지만 그 사람들의 잘못을 노점을하는 모든 이들의 잘못으로 일반화 하는 것도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바라본 노점상의 모습을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획일화된 도시에서 노점상은 다름으로 또 다른 도시 풍경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도시속 노점상이 좋은 방향으로 공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먹거리 빛 반짝반짝 역동성 이런 다양함을 유쾌하게 즐길 수 있기를..
조선 말기 우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습니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그 인물입니다.흥선 대원군은 고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로 오른 이후섭정으로 왕과 이상의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막강한 권한을 활용해 당시 수탈 기관으로 전락해 백성들의 원성이 컸던 지방의 서원들을 정리하고 국정을 어지럽히던 세도정치를끝냈습니다. 그 밖에 여러 개혁정책으로 일반 백성들의 지지를받았습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를 무시한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 조선의 근대화를크게 지연시켰고 경복궁 중건으로 대표되는 무리한 토목공사 강행,천주교에 대한 극심한 박해 등 일방통행적이고 독선적인 정책으로 곳곳에 정적을 만들었고 민심도 등을 돌렸습니다. 결국, 대원군은 아들 고종과 며느리 명성황후에 의해 실각되며 자신의 권력을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