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급속히 냉각된 한일 관계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일본의 수출규제와 우리나라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등 맞대응과 민간의 일본 보이콧 운동이 겹쳐지면서 인적, 물적 교류가 급속히 위축되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에 따른 일본의 갑작스러운 한국인 입국 불허 조치와 정부의 대응 조치가 더해지면서 사태 해결이 더 어려웠다. 일본의 아베 정권은 정권의 유지를 위해 험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고 일본의 우익 세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지속적으로 독도가 자신의 영토임을 주장하면서 국제 분쟁 지역화하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일본은 국제사법 재판소에서 시비를 가리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오랜 기..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51번째 여정은 강원도 삼척이었다. 삼척은 맑은 동해바다와 태백산맥의 산세가 함께 하는 곳으로 왠지 모를 거리감이 있는 곳이다. 삼척은 수도권에서는 최근 올림픽을 거치며 교통망이 확충된 강릉이나 속초와 달리 관광지로도 다소 소외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과거 삼척은 석탄과 시멘트 산지로 여러 광산들이 함께 하는 광업 도시로 70년대와 8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이곳에서 나는 시멘트는 건설업의 중요한 재료가 되었고 석탄은 서민들의 난방 연료인 연탄의 원료였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연탄보일러는 보편적인 난방 수단이었다. 이렇게 산업화와 함께 발전했던 삼척은 90년대 들어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연탄 수요가 급감하고 값싼 수입석탄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쇠락을 길을..
수도권의 대도시 수원은 조선 후기 마지막 부흥기를 이끌었던 정조의 꿈이 함께 하는 도시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비참한 죽음을 직접 지켜보았고 이후 계속되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생명의 위협까지 이어진 수 맣은 위기를 극복하고 왕위에 올랐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는 왕권을 강화해 반대 세력을 힘으로 누르는 한편, 상공업 진흥 정책을 추진했고 보다 나은 백성들을 삶을 위해 노력했다. 수원은 정조의 사상과 철학이 함축된 도시였다. 수원을 둘러싼 수원성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술이 집약되어 건축된 신개념 건축물이었고 그 안에서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아버지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수도 한양에서 수원 화성으로 대규모 행차는 지금도 그 웅장함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수원은 정조에게는 정치적 ..
정도전은 고려 말과 조선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정도전은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건국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조선의 통치 시스템을 만들고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있어 중요한 설계자였다. 하지만, 조선 3대 왕이 된 이방원과의 권력 다툼에 밀려난 이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고 이후 조선의 역사에서 역적이었고 철저히 배척됐다. 조선은 정도전이 세운 토대 위에 건국되고 수백 년의 역사를 유지했지만, 정도전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정치적으로 복권된 된 조선 후기 대원군이 집권한 이후 이루어졌다. 정도전은 살아서도 그리고 죽고 나서도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한 풍운아였다. 8월 7일 방영된 JTBC 시사 교양 프로그램 차이나는 클라..
안산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산업단지다. 과거 반월공단이라 불리기도 했다. 우리 산업화 역사에서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안산이었다. 거대한 방조제로 바닷길을 막아 조성된 안산과 접하고 있는 시화호는 과거 활발히 일어났던 간척 사업의 산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안산은 우리나라의 산업화, 현대화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곳이다. 그리고 지금의 안산은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안산의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들면서 생긴 현상이다. 이 안산에서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5번째 이야기가 펼쳐졌다. 안산의 이야기는 시화 방조제를 걸으며 시작됐다. 시화 방조제는 7년여의 공사 끝에 1994년 완공됐다. 이를 통해 만들어진 담수호 시화호와 그 주변의 땅은 신도시와 농..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34번째 여정은 서울 서남부의 금천구의 이런저런 이야기로 채워졌다. 금천구는 과거 구로공단이라 불렸던 섬유 산업의 중심지로 1970년대 대한민국 수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던 공업단지였다. 이곳에는 당시 수많은 섬유, 의류 공장을 비롯해 경공업 공장이 즐비했고 고향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온 많은 젊은이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꿈을 키워왔던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금천구는 세월이 흐르고 대한민국의 산업의 첨단 산업으로 변화하면서 경공업 단지는 쇠락했고 당시의 공장들은 하나둘 사려져 지금은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IT 산업단지로 변모했다. 이 때문에 금천구는 대한민국의 산업화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으로 독특한 현대사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진행자는 이 금천구 전체가 내려다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