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96회에서는 신년 특집으로 국난 극복의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했다. 이번 주는 지난주 임진왜란에 이어 6.25 한국전쟁,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장면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을 주제로 막전 막후의 이야기를 다뤘다. 1950년 9월 15일 단행된 인천상륙작전은 6월 25일 전쟁 발발 이후 수세적 위치에 있었던 국군과 유엔군이 이를 극복하고 공세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작전으로 낙동강 전선에 몰려있던 북한군은 보급이 차단되는 한편 고립되어 괴멸될 수밖에 없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단시간 내 수도 서울을 수복하고 10월 1일 3.8선을 넘어 북진을 단행했다. 개전 이후 6월도 안되어 일어난 반전이었다. 인천상륙작전의 중심인물은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정부 주도의 수출을 중심으로 한 경제발전 정책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놀라운 성과로 이어졌다. 1960년대 초반 대표적인 빈곤 국가였던 대한민국은 이 기간을 거치며 전후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신흥 국가로 떠올랐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갖춘 국가로 발전했고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던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는 국가로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변화했다.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93회에서는 이런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역사에서 한 축을 담당했던 해외 파견 근로자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 명과 암을 함께 다뤘다. 이를 통해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힘든 시절을 견디고 이겨낸 지금은 희미해진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을 다시 한번 재조명할..
대한민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내수 시장만으로는 성장을 대신할 수 없고 무역에 크게 의존해야 하는 우리 현실에서 수출은 경제 성장의 중요한 수단이라 할 수 있다. 매월, 매 분기 경제 관련 뉴스에서 수출 실적과 그에 부수되는 무역수지, 경상수지 흑자와 적자 관련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더 절실했던 1960년대와 1970년대 수출 증대는 국가 생존을 위해 작게는 정권의 생존을 위해 절실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반공과 경제성장을 쿠데타의 명분으로 삼았다. 전후 세계 최빈국 하나였던 대한민국에서 경제성장은 꼬 필요한 과제이기도 했다. 군사정권은 경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경제발전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를 위해 국가적 역량을 집중했다. 그 한편..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78회에서는 1969년 9월 통과된 3선 개헌을 둘러싼 막전 막후 상황들을 그 주제로 했다. 3선 개헌은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 연임을 명시한 헌법을 바꿔 3번째 대통령 출마의 길을 열기 위해 단행됐다. 하지만 헌법을 개정해야 하는 일로 이를 위해서는 국회의 개정안 통과와 국민투표를 거쳐야 했다.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박정희 대통령이 철권통치를 하던 시절이었다 해도 3선 개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상당한 상황에서 힘으로만 이를 실행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3선 개헌안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고 이는 이후 10월 유신으로 이어지며 장기 독재의 시작이 됐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서 여유 있..
역사 교양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277회에서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남은 대형 토목공사였던 경부고속도로 공사와 관련한 당시 시대상과 그 의미를 다시 한번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은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인 고속도로지만, 경부 고속도로가 가져온 사회 경제적 파급효과는 실로 놀라웠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중요한 배경은 1960년대와 7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발전과 함께 한다.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권 정권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강력히 추진하며 경제발전에 가속도를 붙였다. 경제발전은 정권의 불안전한 기반을 다지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했다. 여기에 당시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 체제 속에미국은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최 전방에 있었던 대한민국의 발전이 체제 우위를 과시할 수 있는 방편이기도 했..
1945년 해방 이후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미진했던 친일청산이었다. 친일청산의 문제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로 자리하고 있다. 일제에 협력해 부귀영화를 누린 이들은 자자손손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 사회의 중요한 기득권 세력이 되었지만, 독립운동가들의 자손들은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현실이 대비되며 국민적 공분을 불러왔다. 이러한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번번이 벽이 부딪혔다. 세대가 바꾸면서 친일청산의 문제는 과거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친일 청산을 위한 범정부적인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1948년 조직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는 민족을 배신하고 일제와 영합한 이들에 대해 법적 응징을 할 수 있는 기관이었다. 역사저널 그날 262회에서는 이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