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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카타르 월드컵이 11월 21일 개최국 카타르와 에콰도르와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그 여정을 시작한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32개국은 8개 조로 나뉜 예선 리그에서 16강 진출이라는 첫 번째 목표를 위해 대결한다.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에 성공한 대한민국 대표팀도 H조에서 포르투갈, 우루과이, 가나와 2장의 16강전 티켓을 놓고 경쟁한다. 

이런 우리 대표팀에 대한 팬들과 국민들의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다. 그동안 평가전과 A 매치의 경기력이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고 에이스 손흥민의 부상과 그의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국내외 여러 사건 사고와 부정적 변수들로 인해 가라앉은 사회적 분위기도 월드컵에 대한 열기를 식게 하고 있다. 방송 등에서 월드컵 관련한 특집을 내놓고 있지만, 4년 전과 비교하면 그 양이 미미한 수준이다. 조심스럽다 할 정도의 월드컵 마케팅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카타르 월드컵의 분위기 속에 20년 전 2002년 한. 일 월드컵이 재조명되고 있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여름은 우리나라는 월드컵이 온 나라를 지배했다. 사람들의 일상은 모드 월드컵으로 채워졌다. 마침 대표팀의 엄청난 선전은 월드컵의 열기를 광풍으로 만들었다. 당시 우리 대표팀은 꿈에서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월드컵 4강에 진출하며 온 국민을 흥분 시켰다. 그때 대표팀 선수들은 이후 축구계에서 지도자로 행정가로 방송인으로 다방면에서 활약하며 우리 일상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2002년 한. 일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은 국민 감독으로 신드롬에 가까운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축구팬들의 마음속에 국가대표 감독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대단한 성적을 남기기도 했고 이전까지 구태의연했던 대표팀 운영의 틀을 깨고 선진 축구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히딩크의 유산은 우리 축구의 혁신과 발전에 중요한 초석이 됐다. 그가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지 2년도 채 안 되는 기간이 이룬 성과였다. 

 

 

 



이 점에서 지금 4년 넘게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벤투 감독과 그 리더십에서 비교되는 부분이 많다. 벤투 감독은 4년 넘게 축구협의 절대 지지를 받으며 자신만의 색깔로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점유율을 높이는 빌드업 축구로 대표되는 벤투 감독의 축구는 4년 내내 그 기조를 유지하며 일관성을 지켰다. 하지만 그 일관성에 대해 팬들과 상당수 전문가들은 우려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보다 유연한 전술에 대한 의견도 있지만, 벤투 감독은 자신의 의지와 축구 철학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다. 

이는 2002년 당시 히딩크도 마찬가지였다. 히딩크는 전후반 내내 상대를 압박하고 기동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 강화를 대회 준비 기간 내내 시도했다. 이전에 없었던 훈련법이 도입됐고 대회를 얼마 안 남긴 시점에서 체력 훈련이 이어졌다. 이런 히딩크 훈련법은 평가전에서의 부진 등으로 상당한 비난에 직면했다. 좀처럼 경기력이 나아지지 않는 대표팀의 상황은 히딩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히딩크는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했고 그 사이 선수들은 달라진 몸 상태를 실감했다. 항상 어려움을 겪었던 유럽 선수들의 경기에서 몸싸움에서 밀리지 않고 향상된 운동 능력은 경기에 대한 자신감을 높였다. 월드컵 개막 직전 열린 평가전에서의 선전은 선수들과 축구팬들을 고무시켰다. 히딩크 감독은 평가전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대회 개막에 맞춰 팀을 만들었다.

이런 준비가 가능했던 건 소속팀 경기를 사실상 포기하게 할 정도로 대표팀 선수들이 국가대표에 주력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최국으로서 예선 탈락을 당할 수 있는 위기에서 대표팀은 사실상 FC 대한민국으로 대회에 모든 걸 쏟아부었다. 히딩크 감독은 자신의 팀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체력훈련에 상당한 비중을 둘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히딩크 감독의 리더십은 이런 훈련에서만 차이점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는 대회를 앞둔 시점에도 엔트리를 확정하지 않았고 평가전 등에서 엔트리 변화를 주는 등 실험을 거듭했다. 이는 스타 선수들에게도 적용됐다. 히딩크의 대표팀은 실력으로 기회를 준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히딩크는 틈틈이 K 리그 경기를 관람하며 직접 선수를 발굴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 새로운 얼굴들이 지속적으로 대표팀에 선발됐다. 

이에 대표팀 소집훈련에는 긴장감이 흘렀고 경쟁 구도는 선수들의 큰 동기부여 요소이기도 하다. 학연과 지연 등에 의해 대표팀 선수가 선발되는 관행을 깨는 히딩크 감독의 선수 선발은 이전에 없었던 일종의 파격이었다. 그 속에서 당연히 선발될 것으로 여겨졌던 몇몇 스타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탈락하는 일도 있었다. 엔트리 탈락이 유력했던 박지성의 선발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그렇게 발탁된 박지성은 월드컵에서 스타로 떠올랐고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됐다. 

선수 구성뿐만 아니라 히딩크는 전술적인 면에서도 유연함을 보였다. 애초 그는 당시 중요한 수비 형태인 포백시스템을 정착시키려 했지만, 선수들이 이에 적응하지 못했고 전술 완성도도 높지 않았다. 이에 히딩크는 3백으로 전환하며 수비 안정을 꽤 했다. 대신 기존의 한 명이 더 쳐진 수비를 하는 스위퍼 시스템이 아닌 3명의 수비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3백을 택했다. 홍명보를 중심으로 대인 마크 능력이 뛰어난 김태형과 최진철이 수비라인을 형성했다. 히딩크의 3백은 엄청난 운동량을 소화한 좌우 윙백 이영표, 송종국과 함께 대표팀의 단단한 수비벽을 이룰 수 있었다. 

이런 히딩크의 유연함과 달리 벤투는 그가 선택한 선수 구성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며 안정감을 더 중시했다. 전술의 변화도 크게 없었다. 이번 월드컵에 출전하는 26명의 엔트리는 몇몇 선수를 제외하면 4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유럽리그를 중심으로 한 해외파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고 그 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4-2-3-1을 기본으로 한 전술을 유지하고 있다. 

 

 

 



벤투 감독은 축구는 골키퍼까지 포함해 후방에서 공을 안정되게 소유하고 빌드업을 거쳐 공격에 나서는 축구다. 최대한 공 점유율을 높여 경기 주도권을 유지하는 전술이고 수비보다는 공격에 더 중심을 둔다. 하지만 강한 압박을 펼치거나 수비 위주의 전술로 나서는 팀에는 약점을 보였다. 강한 압박에서 빌드업이 흔들이고 잔잔한 플레이는 두꺼운 수비벽을 지키는 팀에 대한 공격에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이런 선택에는 이유가 있다. 히딩크와 달리 벤투 감독은 오랜 시간 감독직을 수행하긴 했지만, 상시 훈련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A 매치 기간 짧은 훈련만 할 수 있었다. 1년 가까이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히딩크의 대표팀과는 분명 다른 환경이었다. 그 시간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려움이 있었다. 자신의 축구에 맞는 선수들과 함께 조직력을 다지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에이스 손흥민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와 이강인과 같은 재능 있는 선수들의 발탁에 소극적인 면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었다. 기존의 플랜 A가 무너졌을 때 플랜 B가 제대로 가동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든다. 당장 에이스 손흥민의 부상 변수에 대한 대응책에 의문이 생기고 있다. 

대회 직전의 상황도 히딩크와 벤투는 차이가 있다. 히딩크는 대회를 앞두고 강팀과 잇따라 평가전을 했고 달라진 전력을 과시했다. 그 평가전에서 대표팀은 이전 약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며 주목을 받았다. 잇따른 평가전 선전으로 대표팀 선수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벤투 감독은 다른 나라와 달리 카타르에 보다 일찍 입국한 이후에도 일체 평가전 없이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상대 팀의 평가전에 전력 분석관을 파견하는 조치도 없었고 철저히 보완을 지키며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국. 내외 큰 관심사인 에이스 손흥민의 부상 회복과 출전 가능성에 대해서도 일체 보안을 유지 중이다. 대회를 시작하는 시점에 대표팀은 강한 연막을 피우며 최대한 스스로를 숨기도 했다. 상대팀에 혼선을 주는 일일 수도 있지만, 축구팬들에게는 다소 답답함이 느껴지는 일이다.

강해진 우리를 드러내며 상대를 긴장하게 했던 히딩크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히딩크는 더 나아가 자신이 적극적으로 심리전을 전개했다. 기자회견을 통해 도발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 상대 팀의 경기 대한 전력 분석에도 나섰다. 단적으로 예선 라운드가 진행되는 과정에 16강전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팀의 경기를 관전하며 묘한 심리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한, 대회 기간 홈팀의 이점을 적극 활용했다. 응원단과 접촉해 그들이 응원을 통해 심판 판정에 압박을 가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벤투 감독은 연막을 피우며 우리의 전력을 가능한 노출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원정 월드컵이고 열광적인 응원과 홈 이점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일 수도 있다. 누구의 전략이 더 나은지는 당장은 판단하지 어렵다. 히딩크의 2002년 한. 일 월드컵과 벤투의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은 그 간극이 너무 넓고 주어진 여건도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드컵을 지켜보는 축구팬들에게 2002년 한. 일 월드컵은 자꾸만 떠오르는 기분 좋은 기억이다. 실제 당시 대표팀의 경기력을 매우 경이적이었다. 불과 1년 전 강팀들에게 힘없이 패하던 약체 이미지의 대표팀이 강팀을 차례로 이기며 4강에 오르는 모습은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때 한층 높아진 축구팬들의 눈높이는 이후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에게 큰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자리가 독이든 성배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벤투 감독이 부임할 당시에도 많은 후보들이 있었지만, 쉽게 한국행을 결정하지 못하면서 감독 선임에 난항을 겪기도 했다. 마침 벤투 감독은 지도자로서 공백기에 있었고 대표팀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한국행을 선택했다. 당시 벤투 감독은 대표팀에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벤투 감독은 축구협회의 절대적인 지원과 지지를 받았고 그 기조는 4년 내내 이어졌다. 축구팬들 역시 아쉬운 결과가 있었을 때도 감독을 존중하고 임기를 지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며 감독에 힘을 실어줬다. 그 결과 벤투 감독은 역대 그 어느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보다 긴 시간 감독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우리 축구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할 수 있다. 1년여의 기간 동안 성과를 내야 했던 히딩크 감독과는 큰 차이다. 

그는 2002년 한. 일 월드컵 당시 한국에 예선 3차전을 패하며 예선 탈락한 포르투갈 대표팀의 멤버였다. 자신의 선수 커리어에 큰 아픔을 남긴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그는 그때의 설욕을 노리는 포르투갈을 맞서야 하는 운명에 직면해 있다. 또한,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는 2002년 한. 일 월드컵 4강의 성과를 낸 히딩크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하는 부담도 가지고 있다. 

히딩크 감독은 한. 일 월드컵 성과를 바탕으로 빅 리그 클럽과 다수의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하며 화려한 감독의 이력을 다시 쌓을 수 있었다. 벤투 감독 역시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자신의 커리어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20년의 간극이 있고 그 색깔은 차이가 있지만, 히딩크와 지금의 벤트 감독 모두 월드컵은 소중한 기회의 장이다. 또한, 자신에 대한 평가는 의문부호가 더 많이 달려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의문부호를 히딩크는 느낌표로 바꿔냈고 벤투는 결과로 말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이 또다시 2002년 한. 일 월드컵의 향수를 추억하는 시간이 될지 다른 월드컵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될지 11월 24일 우루과이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그 답이 어느 정도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사진 : FIFA,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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