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영웅 이순신이 전사한 마지막 전투이자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이기도 한 노량해전, 이 노량해전을 다른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서울의 봄'에 이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로 흥행을 지속하고 있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 12 군사반란이라는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을 배경으로 이를 기점으로 권력을 찬탈한 신군부 세력과 이를 막으로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이들의 대결을 스토리로 하고 있다. '노량, 죽음의 바다'는 조선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전쟁,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다.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의 전쟁은 조선에 인적, 물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국가 운영 시스템도 붕괴됐다. 조선 왕조의 존립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었다. 조선 왕조는 유지됐지만, 공고했던 신분 질서에..
서기 900년, 676년 이후 지속됐던 통일 신라 시대에 큰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발생했다. 옛 백제 지역의 군벌이었던 견훤이 지금의 전주인 완산주를 도읍으로 하는 후백제 건국을 선포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신라는 한반도 전역의 지배권을 잃었고 고구려의 부활을 명분으로 궁예의 후고구려까지 삼국으로 나뉘며 후 삼국시대로 접어들었다. 일각에서는 926년까지 존속했던 발해를 포함해 후사국 시대로 그 시대를 칭하기도 한다. 견훤은 이런 후삼국 시대를 연 인물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지만, 그동안 평가 절하되어 왔다. 후백제가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왕건의 고려와 경쟁에서 패하며 그 존속 기간이 짧았던 탓에 관련 기록이 부족했다. 이후 고려 시대 역사도 당연히 후백제의 비중이 크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의 역사에서 권력 구조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시기는 초기 태종 이방원의 집권기와 수양대군 세조의 집권기다. 이들은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지만, 치열한 권력 투쟁 속에서 이복형제와 친 조카를 죽이고 반대파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왕위에 올랐다. 태종과 세조는 집권 과정에서 정통성을 가지지 못했지만, 왕권을 강화하고 조선의 통치 시스템을 확립하는 한 편 그들 뒤를 이은 세종과 성종 때에 나라의 전성기를 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태종에서 시작해 세조를 거쳐 성종대까지 조선은 최전성기였다. 철저한 신분제를 표방한 조선이었지만, 이 시기 조선에는 능력이 있으면 출세할 길이 열려있었고 남녀 간의 관계도 차별이 아닌 역할이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전성기는 성종 사후 최악의 폭군으로 ..
1592년 발발해 1598년 종결된 임진왜란은 우리 역사상 최악의 전쟁 중 하나다. 이 7년간의 전쟁으로 조선은 사회, 경제적으로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나라의 근간마저 흔들렸다. 인구는 크게 감소했고 국가 경제의 중요한 기반이었던 농토도 대부분 황폐해졌다. 사람과 농토의 상실은 나라의 재정을 궁핍하게 했다. 백성들의 삶은 전쟁 이후 더 비참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특히, 17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지속되고 소 빙하기라 불릴 정도로 지구의 평균 기온이 내려간 시기였다. 농업 생산에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그 속에서 대 기근과 전염병, 자연재해 지속적을 발생했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사회개혁과 변화가 절실했지만, 조선의 집권층은 성리학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우리 근. 현대사의 암흑기였던 일제 강점기는 해방이 된 지 70년이 넘어 80년이 다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아픈 흔적이 우리 삶 곳곳에 남아있다. 일제의 잔재는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고 그 시대 피해를 입은 이들의 상처도 완벽하게 치유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역사의 가해자인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일 간의 역사 인식에 대한 차이는 국가 간 갈등의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일제 강점기 민족을 배신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들에게 협력한 친일 매국세력들의 청산은 여전히 우리 역사의 숙제로 남아있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를 통해 반민족 행위자들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정치적 상황과 이어진 냉전시대의 도래, 6.25 한국 전쟁 등을 거치..
고려의 역사는 무신정변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 시대를 통일하고 건국한 고려는 거란에 멸망한 발해 유인들을 포용하며 진정한 통일을 이뤄냈다. 이에 고려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통일 국가로 인정받는다. 그전 통일 신라가 있었지만, 이후 고구려 유민들이 중심이 된 발해가 건국되고 남북국 시대가 시작되면서 완전한 통일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고려는 내부적으로 왕권을 위협하는 지방 호족들의 세력을 억제하고 신흥 강국 거란과의 대결을 극복하며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안팎의 어려움을 이겨낸 고려는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했고 활발한 대외 교역을 하는 역동적인 국가로 자리했다. 지금 대외적으로 우리나라를 표현하는 코리아의 어원은 고려에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런 번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