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 18, 19회] 격물 연구 운명을 건 승부수가 던져지다.

자칫 장희제에 의해 불태워질 위기에 처했던 장영실의 새로운 물시계는 마지막 순간 장희제의 양심이 발동하며 극적으로 보존됐다. 장희제는 자신을 몰래 미행해왔던 김학주에 위해를 가하면서까지 물시계를 지켜냈다. 장희제 역시 장영실 물시계의 독창성과 그 기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격물 진흥이라는 대의를 장희제는 저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장희제는 함께 물시계 제작과 천문 연구를 하고자 내민 장영실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장희제는 그동안의 연구 결과물을 그대로 두고 칩거에 들어갔다. 위기를 벗어난 장영실의 물시계는 마침내 세종과 대신들에 공개됐다. 그의 혁신적인 기술에 세종은 물론이고 여타 대신들도 찬사를 보냈다. 이는 그동안 격물 연구에 반대하던 대신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로서도 조선의 표준시간을 알려주는 물시계의 존재가 나라 발전에 중요한 요소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종은 이 물시계를 자격루라 이름 짓고 백성들에 공개했다. 이를 통해 격물 연구의 성과를 일부 지배층만이 것이 아닌 백성들과 함께 나눌 것을 천명했다. 이는 격물 연구에 아직도 부정적인 사대부 세력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백성들에게 연구성과를 공유하기 위한 정치적 계산을 가진 일이었다. 

이렇게 조선의 격물 연구는 다시 활기를 띠었고 장영실 역시 마음껏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여건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세종의 격물진흥 정책에 반대하는 사대부 세력의 반발은 여전했다. 특히,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보수 사대부 세력의 수장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들의 반발은 더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들은 자격루의 공개를 철회해줄 것을 주장하는 것과 동시에 조선의 새로운 물시계로 지정되는 것에도 강하게 반대했다. 

이들은 물시계를 비롯한 격물 진흥을 통해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 지고 지적, 경제적 역량이 커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는 조선의 지배층을 구성하는 사대부 세력들의 입지를 흔드는 중대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들에게 격물 진흥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를 추구하는 조선의 성리학적 이념을 무너뜨리는 일임과 동시에 사대부 세력의 기득권 유지에 큰 위협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이들의 방해로 조정의 여론은 분열됐다. 모처럼 조성됐던 격물 진흥의 움직임도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세종은 큰 승부수를 던졌다. 세종은 명나라의 책력에 의존하지 않은 조선 서운관의 연구결과에 따른 일식 예보에 따라 구식례를 올리기로 했다. 세종은 이를 통해 조선 격물 연구의 우수성을 입증하고 격물 연구에 대한 반대 조정의 반대 여론을 무마시키려 했다. 

이런 세종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정확한 일식 예보에 제약이 있었다. 그동안 비밀 연구를 통해 축적된 천문연구 자료가 화재로 소실된 상황에서 누적된 기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한정된 기록으로 일식의 일자와 시간까지 정확하게 맞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세종의 결정에 장영실을 비롯한 그를 따르는 대신들은 우려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세종은 이런 우려에도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서운관의 예보대로 일식이 일어나지 않더라고 일정을 진행하려 했다. 이런 세종의 의지에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 과거 조선 비밀 천문대가 화재로 소실될 때 함께 불타 없어진 것으로 여겨졌던 관측 기록을 장희제가 가지고 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 기록만 검토할 수 있다면 정확한 일식 예보 가능성이 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정보는 이미 격물 연구를 막으려는 세력들에게도 전해졌다. 이들은 장영실보다 한 발 앞서 장희제를 회유했다. 그들은 장희제에게 기록을 조작하도록 겁박했다. 장희제는 다시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학자로서의 양심과 개인의 영달 사이에서 갈등했다. 장희제는 그가 가지고 있던 관측 기록을 조작해 장영실에 넘겼다. 결국, 그의 선택은 개인의 영달이었다. 

결국, 장희제가 넘겨준 기록을 토대로 예보된 일식 일정에 따라 구식례 준비가 시작됐다. 장희제의 기록에 몇 몇 서운관 대신들은 의문을 가졌지만, 장영실과 이천 등은 장희제에 강한 신뢰를 보냈다. 이대로라면 일식 예보는 틀리게 되고 세종의 격물 진흥을 위한 승부수도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세종은 물론이고 모두를 이롭게 하려는 장영실의 격물 연구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다만, 반대편에 서기로 결정했지만, 여전히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장희제가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이 커졌다. 

사진, 글 : 심종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