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역사 이야기] 헤이그 특사 사건의 숨은 조력자 윌리엄 스테드

문화/미디어

by 지후니74 지후니74 2020. 2. 24. 08:32

본문

728x90
반응형

우리 근현대사에서 헤이그 특사 사건은 중요한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 당시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밀명을 받은 이준, 이상설, 이위종 3명의 특사는 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대한제국의 대표로 회의 참석을 시도했다. 그들은 그와 동시에 세계 각국의 대표단과 각국의 기자들을 향한 여론전을 펼치며 일본의 대한제국 침탈의 진실을 알렸다. 그들은 1905년 을사늑약의 부당성과 불법성을 알리며 일본의 주창하는 동양평화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일본은 영국, 미국 등 서구 열강들과의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세계 외교무대에서 상당한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대한제국의 외침은 일본에 의해 철저히 가려졌다. 특사단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회의 참석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러.일전쟁 패전 이후 일본과의 적대 정책을 포기한 러시아는 일본과의 밀약을 통해 일본의 대한제국에서 대한 지배권을 인정해주면서 자신들의 이권을 챙겼다.  특사단의 기대 역시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특사단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회의장 밖에서 그들의 주장을 알리고 또 알렸다. 하지만 외교권을 상실한 약소국의 외침은 쉽게 전달되지 않았다. 이런 특사단에 손을 내민 이가 있었다. 그는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 윌리엄 스테드였다. 2월 24일 일요일 방송된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헤이그 특사단의 활동을 도왔던 인물인 윌리엄 스테드의 삶을 조명했다. 

 



윌리엄 스테드는 진보적 성향의 언론인으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비평에 적극적이었고 기사에 삽화를 삽입하거나 하는 등의 변화를 이끌었고 인터뷰 기법을 도입하는 등 현대 저널리즘의선구자였다. 그와 동시에 서구 세계에서 그 명성이 상당했다. 

윌리엄 스테드는 만국평화회의보의 편집장으로 회의 장소에 있었다. 그는 대한제국 특사단의 활동을 눈여겨보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침략 행위를 인지했다. 그는 특사단의 주장을 담은 기사를 만국평화의보에 기재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서구 언론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윌리엄 스테드는 이에 더해 대한제국 특사단이 외신 기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지금의 기자회견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특사단은 일본의 대한제국 침략의 부당성을 널리 알릴 수 있었고 대한제국에 대한 여론의 관심을 이끌어 냈다. 이는 보다 활발한 외교전을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회의장에 참석할 수 없었다는 한계 탓에 특사단의 활동은 더 이상의 성과를 만들 수 없었다.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평화와 정의를 논하는 만국평화회의에서 대한제국의 주장은 강대국 중심의 세계 질서를 변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윌리엄 스테드가 제공한 기회는 특사단에 큰 도움이 되었다. 

월리임 스테드는 특사단의 파견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던 친한파 미국인 헐버트와 함께 중요한 조력자였다. 대한제국의 외교전을 이끌었던 헐버트는 자신에게 쏠린 일본의 관심을 이용해 3인의 특사가 헤이그로 갈 수 있도록 지원했고 그곳에서의 활동을 지원했다. 윌리엄 스테드는 돈과 권력에 굴복하거나 결탁하지 않고 언론인으로서 사명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약자인 대한제국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주장을 알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의 노력이 있어 대한제국 헤이그 특사의 활동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지금도 당시의 기록이 지금까지 남겨질 수 있었다. 

이렇게 참된 언론인으로서 삶을 살았던 윌리엄 스테드였지만, 그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불운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1912년 영국을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초대형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그 배는 유명한 타이타닉호였다. 대서양에서 빙화와 출동해 침몰한 타이타닉호에서 윌리엄 스테드는 자심의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는 1등석 승객으로 구명정에 우선 탈 수 있었지만, 그 자리를 타인에게 양보하고 대서양의 차디찬 바닷속으로 빠져들어간 타이타닉호와 운명을 함께했다. 

비록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했지만, 언론인으로서 그의 업적은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던 헤이그 특사사건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인물로 계속 기억되어야 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사진,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