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13,14회] 각성한 이방원, 강대강 대결로 치닫는 부자간 권력투쟁

 

이방원이 유약함을 떨쳐내고 본격적인 권력 투쟁의 길로 들어섰다. 조선 건국의 중요한 공신이었지만, 아버지 이성계의 뜻을 거스른 정몽주 격살을 주도한 이유로 이성계의 눈밖에 난 이방원은 아버지와 멀어진 거리에 좌절했다. 여기에 이성계가 두 번째 부인인 신덕왕후의 둘째 아들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면서 이방원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더 커졌다.

이런 원망의 마음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이방원은 점점 권력에서 멀어졌고 그를 견제하는 신덕왕후에 그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다. 신덕왕후와 이성계는 나이 어린 세자에게 이방원이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임을 알았다. 그에 대한 견제는 점점 더 강해졌고 이방원은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들과 처가의 안전까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방원은 숨죽이며 살아가던가 자신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싸움을 하던가의 선택이 필요했다.

그 시점에 이방원을 가장 강하게 견제하던 신덕왕후가 세상을 떠났다.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성이기도 했지만, 고려 시대부터 강력한 힘을 가진 가문의 일원이었다. 신덕왕후의 집안은 이성계가 고려 말 중앙 정계로 진출해 정치적인 입지를 다지는 데 큰 힘이 됐다. 신덕왕후는 이성계에 있어 중요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신덕왕후에 대한 이성계의 각별한 마음은 세자 책봉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신덕왕후에 세상을 떠나면서 이성계는 큰 상심에 빠졌다. 사랑하는 배우자와의 이별도 있었지만, 어린 세자의 미래 대한 걱정도 함께 했다. 이미 장성한 왕자들이 다수 존재하는 상황에서 세자의 입지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이성계 역시 점점 노쇠화되는 시점이었다. 그가 강건하게 왕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성계는 왕자들 중 가장 특출난 능력을 가진 이방원을 더 강하게 경계했다. 이성계는 이방원에게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를 강력히 경고했다. 이성계는 언제든 이방원에게 칼끝을 겨눌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런 아버지에 이방원은 부자의 정으로 호소했지만, 이미 자신을 강력한 정적으로 여기는 아버지의 마음을 달라지지 않았다. 이런 이성계의 이방원에 대한 마음은 이방원에게 큰 위험 신호였다. 언제든 역모의 죄를 뒤집어쓰고 몰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신덕왕후는 세상을 떠났지만, 이성계와 세자 옆에는 조선 개국공신 세력을 이끄는 정도전이 있었다. 이방원은 옴짝달싹할 수 없는 현실에 좌절했다. 

그렇게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이방원에게는 3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이방원으로서는 지켜야 할 가족들이 더 늘었고 가족의 미래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이방원을 더 강하게 냉정한 정치가이자 야심가로 만들었다. 이방원은 자신의 살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함을 직감했다. 그는 많은 희생이 따르는 거사에 부정적이었지만, 자신이 살기 위해 누군가를 힘으로라도 이겨내야 하는 권력투쟁의 속성에 눈을 떴다.  이방원은 부자간의 정이나 지인들과의 의리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스스로 힘을 키우고 세력을 만들어야 했다.

이방원이 일어서자 그의 부인인 훗날 원경왕후가 되는 민씨와 그의 가문이 힘을 더했다. 그의 장인 민제는 조정에서 이방원에 우호적인 세력을 만들고 확장했다. 또한 무력 사용을 대비해 군사를 모았다. 이방원 역시 자신의도 절세사 직책을 활용해 자신이 관할하는 병사들을 도성으로 불러들였다. 이방원을 그들을 자신의 사병으로 훈련시켰다. 이방원과 함께 다른 왕자들도 사병을 키우기 시작했다. 이방원과 함께 다른 왕자들도 서서히 차기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가 서서히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성계는 이러한 상황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다. 그는 세자를 지켜야 했다. 하지만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을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 이성계는 특히, 이방원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면서도 정적을 제거하듯 하지는 못했다. 냉정한 아버지였지만, 이성계는 아버지라는 위치를 완전히 버릴 수 없었다. 직접적인 움직임이 없는 상황에서 제거를 위한 명분도 부족했다. 이성계가 머뭇 거리는 사이 이방원은 점점 그 세력을 확대하고 군사력을 강화했다. 조정을 이끄는 정도전도 점점 이방원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정도전은 세자 책봉이나 신덕왕후의 연대 제의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세자를 지켜야 하는 마음을 더 굳건히 했다. 이는 자신이 왕으로 세운 창업 군주 이성계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설계한 조선을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정도전으로서는 자신의 조선이 무너지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제 이성계와 함께 정도전은 이방원은 강력한 이방원의 정적이 됐다. 두 사람의 힘을 이방원이 당해 내기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방원 역시 자신의 조선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제거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지키는 것에서 벗어나 왕좌를 차지하려는 야심을 분명히 했다. 그는 거사를 위한 계획을 빠르게 진행했다. 아버지 이성계와 무력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도 개의치 않았다. 이제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극한의 대결 속으로 빠져들었다.

누구든 먼저 칼을 빼드는 이가 유리한 상황이었지만, 창업 군주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이성계에게 이방원이 정면으로 대응하는 건 분명 무리가 있었다. 이방원은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세자 방석의 자리를 새롭게 하려 했다. 

긴장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대외 변수가 발생했다. 조선 건국부터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가 다시 냉각됐다. 이방원이 명나라 사신으로 파견된 이후 관계가 복원된 듯 보였지만, 명나라는 돌연 조선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심지어 파견된 사신들이 살해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명나라는 여전히 조선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고 적대시했다.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외교의 근간으로 하는 조선으로서는 대외적으로 큰 위기였다. 

 

 

 

정도전은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을 왕자들에 대한 견제에 활용했다. 정도전은 왕자들에 분산된 군권을 중앙이 통제하도록 했다. 이성계는 조선 건국 후 군권을 왕자들에게 분배했다. 혹시 모를 분란 가능성을 차단하고 한쪽에 힘을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한 일이었지만, 왕자들이 각각의 사병을 거느리게 되면서 오히려 큰 위험 요인이 됐다. 정도전은 이성계에게 사병 혁파를 건의했다. 이성계는 고심 끝에 이를 받아들였다. 왕자들의 반발이 거세질 있고 무력 충돌의 우려가 있었지만, 왕자들 특히, 이방원의 힘을  꺾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는 이방원에게 큰 충격이었다. 이방원의 그들 세력과 함께 구체적인 거사 일을 조율하는 중이었다. 거사에 있어 잘 달련 된 사병들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왕명으로 그 사병들은 중앙군에 편입되고 말았다. 이방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정도전과 이성계의 승부수가 이방원에게 큰 상처를 준 셈이었다. 

하지만 이방원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의 야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이성계와 대립각을 세운 상황이었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는 권력투쟁의 패배자로 사라질 수 있었다. 이미 그는 권력을 위한 강한 의지를 버릴 수 없고 권력을 위해서는 악마와도 거래를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는 더는 과거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아버지의 불호령에 노심초사하고 의기소침하는 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더 강한 힘과 권력을 쫓는 정치인이 됐다. 그는 자신의 뜻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 이방원이 그에게 닥친 또 한 번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이는 부자간 피의 대결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초기 큰 비극인 2차례 왕자의 난을 예고하고 있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