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17, 18회] 1차 왕자의 난, 왕위 앞에 다가선 이방원, 권력무상 이성계

이방원의 칼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이방원은 상대가 머뭇거리는 사이 먼저 칼을 빼들었고 상대를 제압했다. 역사에서 1차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이방원의 쿠데타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빠르게 정도전 등 이성계 측근 공신 세력들을 제거했고 군권을 장악했다. 그 위세에 대신들도 쉽게 이방원에 장악됐다. 이성계는 궁궐에 사실상 유폐됐다. 이성계는 강하게 분노했지만, 이미 권력을 장악한 이방원에 대항할 수 없었다.

고려 시대 왜구와 홍건적 등 수많은 외적들을 격퇴했고 북방을 호령했던 장군,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창업 군주 이성계는 그의 아들에 의해 사실상 왕위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성계를 지켜주고 힘이 될 이들은 사라졌고 이방원에 뜻을 함께 했다. 그의 곁에서 아무도 없었다. 그가 누군가를 지켜줄 수도 없었다. 그는 우리에 갇힌 호랑이가 되고 말았다. 

이방원에 주도하는 피의 숙청이 이어졌다. 공신 세력들에 이어 이방원에 큰 대척점에 있었던 신덕왕후의 자식들이 그 대상이 됐다. 신덕왕후의 둘째 아들이자 세자였던 방석이 먼저 희생됐다. 궁을 포위한 이방원 세력은 조준 등 남은 대신들을 압박해 방석의 세자 폐위와 둘째 형 방과의 세자 책봉을 이성계에게 건의했다. 강요였고 통보였다. 이성계는 버틸 수 없었다. 이미 권력을 위해 발톱을 드러낸 이방원을 기세를 제어할 수 없었다. 그의 뜻을 거부한다면 이성계 역시 무사할 수 없었다. 그가 고려 왕실을 힘으로 굴복시켰 듯 그 자신이 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졌다. 세자 방석에 이어 신덕왕후의 또 다른 아들 방번이 칼날에 희생됐다. 신덕왕후의 마지막 남은 혈육은 경순공주는 마지막까지 이성계 곁을 지켰던 남편 이제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경순공주는 결국 이성계에 의해 비구니 승려가 됐다. 딸을 지킬 수 없는 이성계는 딸을 죽음에서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렇게 신덕왕후의 자식들은 모두 속세와의 인연을 끊게 됐다.

 

 

피의 숙청 과정을 거치며 이방원을 빠르게 국정을 장악했다. 그의 측근 인사들이 조정을 주도했고 군권도 그의 것이었다. 이제 그를 막을 자가 없었다. 이방원에 적대적이었던 이성계 측근 인사들도 이런 변화를 더는 제어하지 않았다. 이방원이 당장 왕위에 오른다 해도 문제 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방원은 서두르지 않았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다. 아버지를 밀어내고 왕위에 오르는 건 분명 안팎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었다. 중앙군을 장악했지만, 이성계를 따르는 동북면 방면의 군사들이나 지방의 군사들을 상대하는 건 부담이 있었다. 정국을 안정시키고 자신의 대세론을 강하게 해야 했다. 그 징검다리가 필요했다. 이방원은 이를 위해 이성계의 둘째 아들인 방과를 세자로 세웠다.

이는 그의 정변의 명분은 서자의 자식을 세자로 세운 잘못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이는 훗날 그가 강력히 서자 출신들에 차별과 관직 진출을 막는 법을 제정하고 이를 시행하게 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방과는 강직한 무장이긴 했지만, 왕위에 큰 관심이 없는 비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첫째 부인으로부터 자식이 없었다.

그가 세자로 책봉된다 해도 그다음을 이을 적장자가 없다는 점은 또 다른 선택지를 찾게 할 수 있었다. 즉, 방과가 이방원에서 자리를 양보하는 수순을 밟게 해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방과는 이런 이방원의 의도를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 이성계의 안위를 위해 더 이상의 분란을 막기 위해 세자 자리에 올랐다.  이미 노쇠한 이성계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방원은 방과를 거쳐 자연스럽게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이방원의 정변에 참여하지 않았던 그의 형들이 권력에 대한 욕심을 드러냈다. 넷째 형 방간은 그의 사병을 동원했고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방원이 고려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이방원은 이복동생들의 제거로 왕위로 가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으로 여겼지만, 그의 친형들과의 권력 투쟁이라는 상황에 직면했다. 칼은 이방원이 먼저 뽑아 들었지만, 그를 향한 또 다른 칼이 그를 노리고 있었다. 또 한 번 형제간 피의 대결이 예고되는 일이었다. 

여기에 이방원과 협력하는 듯했던 방과가 마음을 돌렸다. 이성계는 강요에 못 이겨 방과에게 세자 자리를 줬지만, 이방원의 권력 이양 과정에 협조한 건 아니었다. 이성계는 세자 책봉 후 얼마 안가 방과에 양위를 선언했다. 방과는 곧바로 왕으로 즉위했다. 조선 제2대 왕 정종의 시대가 열렸다. 여전히 실권은 이방원이 쥐고 있었지만, 이성계는 이방원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마음을 거두지 않았다. 이성계는 정치적인 반격을 모색했다. 그 뜻을 방과는 외면할 수 없었다. 

왕위에 오른 방과는 곧바로 첩의 아들 중 한 명을 원자로 책봉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성계는 이방원이 실권을 장악하는 걸 막을 수 없다면 그가 왕위에 오르는 건 막고자 했다. 즉, 방과가 왕위에 오르고 그의 뒤를 이을 세자가 정해진다면 이방원이 이를 뒤엎을 명분이 약해지기 때문이었다. 이방원은 정변을 일으키면서 적장자 승계의 원칙을 어겼음을 명분으로 했다. 그런 이방원이 왕이 된 방과를 다시 힘으로 끌어내린다면 여론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미 국정을 장악한 이방원과의 대결이 불가피한 일이었다. 방과는 그와 함께 할 대신도 군사도 없었다. 오로지 왕의 권위로 맞서야 하지만, 힘없는 왕이 이방원에 맞서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원자가 적장자가 아니라는 점도 큰 약점이 될 수 있었다. 방과의 즉위와 원자 책봉을 위한 시도는 이성계의 마지막 반격이라 할 수 있다.

 

 

최고 권력에 한발 더 다가선 이방원으로서는 친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을 이겨내야 하는 과제가 생겼다. 노골적으로 권력에 대한 야심을 드러내고 있는 방간, 아버지 이성계를 배경으로 맞서는 방과와의 대결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친 형제들과의 권력 투쟁은 괴로운 일이지만, 이방원은 멈출 수가 없다. 멈추면 그와 그 가족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이들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이미 권력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이방원으로서도 생존을 위해 그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왕위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는 과거 이성계의 고민과 닮아 있다. 그의 앞을 막아서는 이들은 누구든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다. 이방원은 정몽주를 처단했고 창업 동지였던 정도전 등 다수의 동지들로 처단했다. 이복형제들도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한번 시작한 피의 숙청은 그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제 시간은 형제간의 피의 대결인  2차 왕자의 난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런 큰 격변 속에서 이성계와 이방원 사이의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이방원의 아버지에 대한 원망은 강한 권력욕과 맞물리며 아버지를 힘으로 제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아들에 권력에서 밀려난 이성계는 아들 이방원에 대한 강한 분노와 복수심을 보였다. 부자간의 대화는 가시 돋친 말들이 오갔다.

이들은 권력을 놓고 대결하는 정적의 관계가 되고 말았다. 이방원은 이성계를 철저히 힘으로 눌러야 했고 이성계는 이방원을 미리 제거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이방원에게 반격을 한 방을 노리는 중이다. 정치와 권력의 비정함, 비극적인 일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자의 모습이다. 부자간에도 권력을 나눌 수 없고 승리한 자가 모든 걸 차지하는 약육강식의 세계가 부자 사이에 펼쳐지고 있다. 

이 대결에서 패한 이의 앞날은 쓸쓸함과 처량함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창업 군주 이성계는 그런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아직 몇 가지 관문이 남아있지만, 조선에 이방원의 시대가 서서히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