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21, 22회] 왕위에 오른 이방원, 하지만 끝나지 않은 권력 투쟁

1, 2차 왕자의 난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이방원은 그의 의도대로 왕위로 가는 과정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살해됐다. 이에 더해 이방원은 신덕왕후 강씨의 아들들을 모두 살해했다. 아버지 이방원을 권력에서 밀어내며 그를 궁궐에 사실상 유폐시켜다. 왕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던  넷째 형 방간을 굴복시키며 그를 유배길에 오르게 했다. 한때 그와 대립하던 둘째 형 방과 역시 이방원에 대한 복수를 원하는 이성계의 기대를 저버리고 이방원의 왕위 계승에 협조했다. 

이방원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바로 왕위에 오르지 않고 방과, 정종의 세자가 되고 그의 양위를 받는 과정을 거쳤다. 그가 왕자의 난을 일으킨 중요한 명분인 장자 상속의 원칙을 지키는 모양새를 만들었다. 이로써 이방원은 조선 건국 이후 치열한 권력 투쟁의 승자가 됐다. 하지만 왕위에 오른 자신의 정치를 하기에는 넓어야 할 산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신생 왕국이 건국하면 발생하는 공신 세력과 친위 세력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했다. 그들은 한때 힘을 합쳤던 동지들이었지만,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과의 관계 정립에 있어 공헌에 대한 지분을 인정해 권력을 나눌 수도 있었지만, 이방원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유교의 통치 이념을 구현하는 데 있어 왕 중심으로 중앙집권 시스템을 원했다. 모든 세력들이 그의 발아래, 그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어야 했다. 이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대립과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은 그가 왕위에 오르는 동안 하륜을 포함한 무신 세력과 이숙번과 조영무 등 무신 세력, 그의 든든한 정치적 배경이 된, 훗날 원경왕후가 되는 그의 배우가 민씨 가문 등의 지지와 헌신이 있었다. 이방원으로서는 이들 세력이 이제는 큰 부담이 됐다. 문신 세력은 위협의 강도가 크지 않았지만, 나머지 무신 세려고가 민씨 가문은 언제든 왕권에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이방원은 협치와 화합의 정치를 하기 위해 왕위에 오른 건 아니었다. 이방원은 권력의 독점을 위해 그에 필요한 일을 시작했다. 

 

 

 

이방원은 우선 사병 혁파를 단행했다. 사병은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지만, 도 절세사 들에 분산된 군권은 언제든 자신에서 칼날을 들이될 수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그 역시 사병을  통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의 경험 속에서 그는 사병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병 혁파에는 큰 반발이 있었다. 그의 가장 큰 후원 세력인 민씨 가문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아낌없는 지원도 지지를 보냈던 민씨 가문이었지만, 그들 힘의 원천인 사병 혁파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었다. 이는 여타 공신 세력들도 다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방원은 배우자 민씨가 큰 의견 대립을 보였다.

민씨는 이방원에게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는 이방원에서 그가 왕위에 오르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한 자신과 민씨 가문의 정치적 지분을 분명히 요구했다. 민씨는 정치가 결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될 수 없고 여성들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원했다. 민씨는 조선이 이방원만의 나라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가 이방원의 정적이 되었음을 의미하는 일이었다. 민씨는 이방원에게 남편으로서 가족으로서의 존중과 사랑을 기대했지만, 이방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왕이 된 이방원은 권력을 나눌 마음이 없었다. 이방원은 이미 아버지 이성계와의 대립 속에서 권력에는 가족 간의 정이 녹아들 수 있음을 경험했다. 

이방원은 유교적 통치 이념을 기반으로 민씨에게 정치 일선에 나서지 말고 가부장적인 사회 속 여성의 역할에 머물기를 원했다. 하지만 민씨의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확인한 이방원은 민씨를 더는 배우자로서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는 민씨 그리고 그 가문과의 정치적 대립을 불러왔다. 그 대립은 초기 한 쪽으로 힘의 추가 기울지 않았다. 이방원은 왕위에 있었지만, 민씨 가문의 세력은 조정 곳곳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 이방원이라도 쉽게 그 세력을 제거하기 힘들었다. 사병 혁파 문제에 있어서도 민씨 가문의 협조가 없으면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결국, 이런 양측의 대결에서 민씨 가문이 한발 물러섰다. 이방원이 원하는 대로 사병 혁파가 단행됐다. 일부 반발이 있었지만, 민씨 가문의 이에 동조하면서 조선의 군권은 모두 왕의 통치권에 내에 포함됐다. 이렇게 민씨 가문과의 첫 번째 갈등은 봉합됐지만, 말 그대로 봉합이었다. 어느 한 쪽이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그 갈등이 표출될 수 있었다. 

이방원은 왕의 권위를 앞세워 더 노골적으로 민씨와 그 가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민씨의 중전 책봉을 미루고 민씨 가문에 대한 견제를 분명히 했다. 이방원은 민씨와 그 가문이 자신에서 완전히 굴복하길 원했다. 민씨의 아버지 민제는 이런 이방원의 의도를 파악하고 최대한 몸을 낮추려 했지만,  민씨는 달랐다. 민씨는 당당히 정치적 역할을 하길 원했다. 이방원의 뜻에 반해 궁궐에 입성에 중전의 자리에 올랐다. 이방원으로서도 차기 권력인 그의 아들들을 어머니인 민씨의 중전 책봉을 미룰 명분이 없었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있을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다. 이방원은 궁궐에 들어온 민씨는 철저히 배격하고 무시했다. 사실상 중전으로 인정하지 않고 중전의 권위와 위신을 깎아 내리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이방원이 왕이 되기 전 많은 자식을 낳았고 금술이 좋았던 이 부부는 권력 투쟁의 상대가 되면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이방원은 많은 후궁을 두기 시작했고 그 대상은 중전이 아끼는 시녀까지 포함됐다. 중전이 된 민씨는 궁궐에서 사실상 고립무원의 신세가 됐다.

여기에 더해 민씨 가문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분명히 했다. 이방원은 자신에 대한 부정적 상소를 근거로 그 배후를 조사했고 그의 장인이자 민씨 가문의 수장인 민제가 있음을 밝혀냈다.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분명 큰 죄가 될 수 있었다. 이방원은 민씨 가문을 고사시킬 중요한 근거를 가지게 됐다. 이제 중전 민씨와 그 가문은 정치적으로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이는 역사가 남긴 스포대로 이방원에 의한 또 다른 피의 숙청을 의미했다. 

 

 

이런 정치적 상황 속에 궁궐 밖에서는 이방원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이가 그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궁궐을 떠난 이성계가 그의 근거지 동북면 일대에서 군사를 모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동북면과 거리가 있는 사찰에 머물며 불공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 한편으로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세상을 떠난 신덕왕후 강씨의 친적이 되는 조사의에게 그 일을 맡겼다. 조선 초기 큰 내전이었던 조사의의 난이 시작됐다.

여전히 이성계의 영향력은 지금의 함경도 지역인 동북면 일대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세력도 많았다. 그 병력이 모인다면 이방원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이방원이 국내 정치적 상황 정리에 온 힘을 쏟는 사이 고려 때부터 불패의 장수였던 이성계는 아들을 향해 그의 칼끝을 겨눌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성계가 이끄는 군대라면 이방원에게도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이방원은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안팎으로 위기가 지속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정치의 비정함과 냉혹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방원은 철저히 왕권을 중심으로 한 통치체제 구축을 원했고 이런 조선이 그의 대를 이어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 했다. 이에 반하는 세력은 아버지가 됐건, 배우자가 됐던 베고 넘어서야 했다.

이방원은 이미 피의 재단 위에 터 잡아 왕위에 올랐다. 그는 그 왕위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피로 이미 흘린 피를 씻어내야 했다.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생존과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이 시간이었다면 이제는 왕위를 지키기 위한 피의 대결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이방원으로서는 나눌 수 없는 권력이라면 나누길 원하는 세력을 제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직 조선 왕조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또 다른 피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