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23, 24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신. 구 권력의 마지막 대결

 

2차례 왕자의 난을 거치며 세자 그리고 왕위에 오른 이방원, 하지만 그는 왕위에 오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권력 장악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방원은 아버지와 형제들들과 치열한 권력 투쟁 과정을 거치며 그들을 정적으로 돌렸다. 왕이 된 이후에는 그와 함께 했던 공신들과 가장 큰 공이 있었던 중전 민씨의 가문도 경계했다. 이방원은 국왕 중심의 강력한 왕권, 그 바탕 위에 둔 중앙 집권 체제를 구현하려 했다.

이는 왕의 권력 독점을 의미했고 권력의 분점과는 거리가 있었다. 특히, 이방원의 권력 장악에 있어 정치적 동반자였던 민씨 가문의 생각과는 크게 다른 일이었다. 민씨 가문은 이미 이방원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상황에서 차기 권력에서도 중심 세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방원의 강력한 왕권 아래에서 민씨 가문은 중요한 협력자고 충성을 맹세했지만, 그 충성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이방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왕을 능가하는 또 다른 세력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이방원은 모든 정치세력들이 왕을 중심으로 한 통치 시스템에 포함되길 원했다. 국가 운영에 있어 또 다른 힘이 작용하는 걸 이방원은 원치 않았다. 결국, 이방원은 민씨 세력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는 중전 민씨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이방원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였고 동반자였던 중전 민씨는 이방원의 권력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정적이 됐다. 그를 구심점으로 민씨 가문이 결속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이방원은 우선 조정에서 민씨 가문을 대표하는 장인 민제의 정계 은퇴를 이끌어냈다. 이방원은 자신을 비판하는 상소의 배후에 민제가 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상황에 따라 역모의 죄로 확산될 수 있었다. 이방원은 민제를 압박해 그를 굴복시켰다. 조정의 많은 신료들과 신진 관료들의 수장이었던 민제는 왕의 압박에 더는 버틸 수 없었다. 이방원과의 큰 갈등은 자칫 가문 전체의 위기가 될 수 있었다.

 

 

 

이는 중전 민씨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방원은 이미 중전의 정치 참여 불허에 반발하는 중전 민씨에 상당한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궁궐에서 중전을 고립시키는 가 하면 다수의 후궁들을 두며 중전의 권위를 흔들었다. 여기에 중전으로서의 예우를 박탈하고 또 다른 중전을 간택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중전 민씨는 궁궐에서 이름만 중전인 상황에 몰렸다. 그가 반발하면 할수록 이방원의 견제와 압박은 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중전 민씨의 아버지 민제가 불충의 죄로 국문을 받는다면 중전의 폐위가 현실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민씨 가문의 정치적 입지를 완전히 흔들리게 하는 일이었다.

결국, 민제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천명했다. 이로써 민씨 가문의 정치적 입지는 크게 축소됐다. 이런 상화에서 중전 민씨도 더는 이방원에 맞서기 어려웠다. 중전 민씨 역시 가문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씨 역시 현실 정치에서 물어나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민씨 가문의 세력은 강했다. 이방원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는 게 기정사실인 상황에서 민씨 가문은 언제든 정치 일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들의 갈등은 이방원이 승리로 보였지만,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 불씨를 남겨두고 있었다.

이 시점에 동북면에서 심상치 않은 군사적 움직임이 보였다. 명백한 반란의 조짐이었다. 그 배후에는 이방원의 아버지 이성계가 있었다. 사실상 궁궐에서 유폐 상태에 있었던 이성계는 궁궐을 나온 이후 사찰에 머물며 현실 정치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은밀히 그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동북면 일대에서 군사를 모으고 있었다.

그는 동북면, 함경도 일대는 이성계 가문이 대대로 지역을 지배하는 힘의 원천이었다. 이 일대에서 이성계의 영향력을 여전히 막강했다. 그가 왕위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동북면 일대에서 왕은 여전히 이성계였다. 이성계는 그의 권위를 앞세워 군사를 모으고 전쟁을 준비했다.

그 세력은 동북면과 함께 평안도 지역인 서북면까지 확대됐다. 그 일대에서 1만명 이상의 군사가 모였다. 동북면과 서북면 일대의 군사들은 고려 시대부터 잦은 외침에 대응했던 숙련된 병사들이 많고 지역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었다. 군량이나 각종 병참 지원도 계속될 수 있었다. 여기에 창업 군주 이성계의 권위까지 더해진 반란군의 기세는 매우 강했다. 

이성계는 북쪽 군사들의 힘을 결집해 도성으로의 진군을 시도했다. 역사에서 나오는 조사의의 난이었다. 조사의의 난으로 기록됐지만, 실상은 이성계가 그 중심이었다. 이방원은 진압군을 보내 이들을 막으려 했지만, 이성계를 앞세운 반란군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군사의 수 그 이상의 힘이 작용하며 진압군의 사기를 저하시켜다. 젊은 시절부터 전장을 누비며 패하지 않았던 최고의 장군 이성계가 이끄는 반란군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방원은 반란군의 기세를 꺾기 위해 또 다른 권위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이방원은 왕의 권위로 이에 맞서려 했다. 그는 이례적으로 진압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나갔다. 왕자의 난 당시 이성계는 병석에 누워있었고 이방원의 기습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역량을 모아 아들 이방원을 응징하려 군사를 일으켰다. 아들은 이런 아버지를 다시 힘으로 제압하기 위해 전장으로 향했다. 부자는 전쟁터에서 적이 되어 만나게 됐다.

이방원은 그 한편으로 이성계의 근거지인 동북면 일대를 조영무 등을 보내 다시 장악하고 반란군의 후방을 교란하는 작전을 병행했다. 하지만 연이인 전투의 승리로 사기가 오른 반란군의 기세는 여전히 큰 부담이었다. 만, 반란군의 세력이 커지고 여타 지역이 합세한다면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전개될 수 있었다. 군사력 외에 민심이 이성계로 쏠리게 된다면 이방원의 왕위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이는 이방원은 물론이고 그의 권력 장악에 함께 했던 세력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이는 중전 민씨도 잘 알고 있었다. 정치적으로 크게 대립하고 있지만, 이방원과 중전 민씨, 그의 가문은 공동 운명체였다. 만약, 이성계가 전쟁에 승리한다면 그들 가문의 미래를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이방원의 왕권이 유지돼야 가문의 다음도 기약할 수 있었다. 민씨는 이방원을 지원토록 하면서 이방원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느새 가장 강력한 반란군의 수장이 된 시아버지 이성계는 중전 민씨에게도 싸워 이겨야 할 상대였다.

 

 

진압군을 이끌게 된 이방원은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다. 그는 이성계의 군대가 반란군임을 명확히 하는 한편, 자신이 조선의 왕임을 지속 적으로 강조했다. 반란군의 명분을 퇴색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이는 반란군을 고립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시작했다. 하지만 동북면과 서북면의 군사로는 부족함이 있었다. 진압군의 규모는 컸고 군수 지원도 훨씬 우수할 수밖에 없었다. 반란군은 계속된 승리로 바람을 일으켜야 했지만, 이방원이 자신의 최전선에 나서 왕의 권위로 그 바람을 차단했다. 결국, 이방원의 군대는 반란군을 제압했다. 이성계는 기습 공격으로 이방원의 본진을 노렸지만, 이방원이 이를 제압하며 마지막 희망도 사라졌다. 이제 이방원과 이성계는 승장과  패장으로 전장에서 마주하게 됐다.

무패의 장수 이성계였지만, 그는 그의 아들에게 패배하며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날 운명에 처했다. 수백 년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세운 이성계였지만, 그의 왕국은 아들에 의해 그의 생애 내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성계는 자신의 원했던 후계 구도를 실현하지 못했다. 건국의 공신들로 지키지 못했다. 창업 군주의 권위로 다시 한번 권력의 중심에 서려 했지만, 그의 아들 이방원은 이성계를 능가하는 정치인이고 이미 권력을 손에 쥔 권력자였다.

어느새 이성계는 구권력을 대표하는 인물이 됐고 세력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조정과 군권을 장악한 이방원에게 대항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이성계였다. 이제 이성계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그렇게 부자간의 피의 대결은 아들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아버지마저 완전히 넘어선 이방원은 권력과 왕의 권위를 모두 가지게 됐다. 조선에서 그를 막을 자는 더는 없다.

하지만 이방원의 더 강한 권력을 위한 발걸음은 멈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방원은 극한의 외로움에도 자신의 길을 계속 가고 있다. 비정하고 냉정한 정치는 그와 누군가의 동행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