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보였던 기후 위기가 이제 당면한 문제가 되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서 파생된 이상 기후와 그에 따른 예상치 못한 그리고 예상 이상의 자연재해는 우리 삶을 파괴하고 있다. 가뭄과 폭우, 폭설, 한파 등 극단적인 자연재해가 매년 이어지고 있다. 이에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한 탄소 중립에 상당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각각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그 실천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에 기후 위기는 점점 인류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영향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과 생태계 파괴는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이에 지구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줄을 잇고 있다. 이런 상황은 공상과학 소설에서 등장하는 지구 외 행성에 대한 이주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우주개발을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거나 연구를 위한 수단 그 이상의 목적을 위한 추구하도록 하고 있다.
우주개발, 보다 세밀하게 지구를 벗어난 우주로의 진출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 체제 속에서 빠르게 발전했다. 미국과 소련은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비대칭 전력인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의 개발 등 군사적 목적을 위해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이는 우주 공간에 비행 물체를 쏘아 올리기 위한 로켓 개발을 촉진했다.
로켓 기술의 원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개발한 살상용 미사일 V2에서 비롯됐다. 독일의 로켓 과학자 베르너 폰 브라운이 주도하는 독일의 연구팀은 장거리 로켓 개발에 성공했고 나치 독일은 이를 전쟁에 활용했다. 영국을 포함한 연합국 소속의 국가들 상당수가 나치 독일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에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나치 독일이 패망하고 독일의 로켓 기술자 상당수는 미국과 소련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곳에서 로켓 연구를 지속했다.
이런 배경 속에 초기 우주개발은 소련이 미국을 앞서 나갔다. 소련은 19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프투니크 1호 발사에 성공했다. 소련이 개발한 로켓에 실려 지구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려진 스프투니크 1호는 원형에 4개의 안테나를 단 모양이었고 대기권 밖에서 전파 신호를 지구로 송신했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에 큰 충격이었다. 과학 분야에서는 소련에 절대 우위를 보이고 있다 자부했던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이었고 핵 실험을 성공한 소련의 핵 위협이 현실화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스프투니크 쇼크라 할 정도였다. 이에 미국은 우주개발에 더 박차를 가했다. 하지만 서둘러 발사한 인공위성 로켓이 전국에 생중계되는 상황에서 발사 중 폭발사고가 발생하는 등 미국의 로켓 발사는 순탄치 않았다. 그 사이 소련은 우주개발에서 계속 앞서 나갔다.
미국과 소련은 무인 우주선의 발사에 이어 생물체를 태운 우주선의 발사 경쟁에 돌입했다. 먼저 소련이 라이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를 우주선에 태워 쏘아 올렸지만, 라이카는 발사 후 얼마 안 가 우주선 온도의 급격한 상승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희생은 우주개발 발전에 큰 초석이 됐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침팬지 등 생물체를 우주로 쏘아 올려 살아서 귀환시키는 등 발전 속도를 높였다. 미국은 1958년 7월 미 군사적 우주개발은 총괄하는 국가기관인 미국 우주 항공국 NASA를 창립하는 등 국가 주도의 우주개발 사업을 더 활발히 전개했다. 소련 역시 국가적 역량을 우주개발에 집중했다. 우주개발은 양강 체제의 국제 질서 속에서 자기 진영의 결속력을 높이는 일이었고 체제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이었다. 이에 우주개발은 누가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우주를 탐험하는 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런 경쟁 속에 소련은 1961년 4월 세계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의 발사와 귀환에 성공하면서 미국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그 우주선에 탑승했던 유리 가가린은 세계 최초의 우주인으로 기록됐다. 가가린은 지구 궤도를 1시간 30분 정도 돌다 지구로 귀환했다. 당시로는 큰 모험이었고 이에 소련 당국은 중위 계급이었던 그에게 2개급 특진의 소령 계급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의 무사 귀환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가린은 무사위 귀환했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체제 선전을 위한 중요한 모델로 수많은 나라를 방문했다. 미국도 얼마 안 지나 유인 우주선 발사에 성공했지만, 최초의 타이틀을 내주면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이렇게 우주개발 경쟁에서 소련에 지속적으로 밀리는 상황은 일거에 극복하지 위한 미국의 야심찬 계획이 진행됐다.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미국 대통령 케네디는 1962년 아폴로 계획을 발표하며서 1960년대가 지나기 전 우주인의 달 착륙을 실현하겠다고 발표했다. NASA가 주관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는 아폴로 계획의 시작이었다. 지구 궤도를 벗어나 지구 밖 별에 다다른다는 건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계획이었고 이에 필요한 재원도 매우 큰 규모였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우주개발 사업에서 소련을 능가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념이 지배하는 냉전시대는 체제의 우월성 확보가 큰 가치였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아폴로 계획은 미국이 우주개발에서 소련을 능가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소련은 미국만큼의 재정을 우주개발에 하기 어려웠다. 그 사이 미국은 지속적으로 아폴로 우주선을 발사하며 달에 우주인을 보내는 계획을 진행했다.
마침내 1969년 7월 16일 선장인 닐 암스트롱, 사령선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 달 착륙선 조종사 버즈 올드린까지 3명의 우주인을 태운 아폴로 11호 로켓이 우주로 발사됐다. 아폴로 11호는 7월 20일 달에 착륙선을 착륙시켰고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사람으로 기록됐다. 아폴로 11호는 달에서 월석과 우주 먼지 등을 수집하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불의의 흉탄에 암살됐지만, 그가 말했던 꿈이 이루어지면서 미국은 물론이고 그 모습을 지켜본 세계인들이 열광했다.
하지만 아폴로 11호를 포함해 미국의 유인 달 탐사에 대한 음모론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음모론자들은 당시 미국이 달에 우주인을 보낼 기술이나 능력이 없었다는 전제하에 달 탐사 장면이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된 지 10여 년이 흐른 시점에 인간의 달 착륙이 이루어졌다는 점은 놀라움 그 이상의 발전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음모론들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혀진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유인 달 탐사 이후 우주개발에 대한 미 국민들의 관심이 급속히 식어버렸다는 점이었다. 이미 중요한 목표를 이루고 소련과의 기술 격차를 분명히 한 상황에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우주개발에 대한 회의론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 사이 일어난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군비 지출도 우주개발에 대한 예산 투입을 어렵게 하는 이유였다. 결국, 아폴로 계획은 1972년 10월 아폴로 17호의 달 탐사를 끝으로 중단됐다.
대신 NASA는 새로운 우주개발 프로젝트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NASA는 달 탐사를 뛰어넘어 태양계 행성들의 탐사 계획은 실행에 옮겼다. 그 일환으로 보이저 1, 2호가 발사됐다. 보이저호는 우주개발에 대한 범위를 크게 확대했다. 두 우주선은 화성을 물론이고 태양에서 지구보다 더 멀리 위치한 목성과 토성, 해왕성을 탐사했다. 그 결과 미지의 행성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보이저호가 찍은 행성들의 사진은 지금도 우주연구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또 한 편으로 보이저호가 먼 태양계 먼 곳에서 담은 지구의 모습은 지구 그리고 우리 인류의 존재가 우주 속에서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그 사진에서 지구는 우주 먼지 속 희미하게 보이는 하나의 먼지였기 때문이었다. 이에 더해 보이저호에는 지구인들의 생존 기록들을 담은 황금 레코드를 함께 실어 만약에 만날 수 있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와 지구인의 존재를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보이저 1, 2호는 그들의 임무를 수행하고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 머나먼 우주로 그 항해를 지속하고 있다.
이렇게 우주개발은 여러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비용 부담과 당장 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점점 그 입지가 줄어들어갔다. 특히, 미. 소 냉전이 소련의 해체로 사라진 이후 체제 경쟁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우주개발의 열기는 더 식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1980년 NASA가 강력히 야심 차게 추진했던 우주왕복선을 통한 우주개발 사업은 발사체와 우주선의 재사용을 통한 비용 절감, 우주과학의 산업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대중들의 흥미 유발 등의 목적으로 진행됐지만, 1986년 챌린저호가 발사 중 폭발 사고와 잇따른 사고로 그 계획이 연기되거나 축소되면서 우주개발 전반을 위축시키고 말았다.
냉각기를 가졌던 우주개발 사업은 2000년대 들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민간의 우주개발 사업 참여가 확대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주개발을 위한 기업이 설립되고 그 기업을 중심으로 관련 사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NASA는 민간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고 대신 우주개발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 지출을 줄일 수 있다. 이제는 민관이 협업하는 우주개발의 시대가 됐다.
민간 기업들은 우주개발은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로켓의 재활용을 활성화해 로켓 발사 비용은 대폭 축소하고 일반인들의 우주여행 상품 개발로 이어지고 있다. 우주여행 상품은 여전히 엄청난 가격으로 인해 대부호들이 주로 이용하고 있지만,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우주인들이 아닌 일반인들이 우주비행에 나선다는 것 자체만으로 우주개발에는 큰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주개발 개발 사업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다시 높이고 수익이 발생하는 사업에 더 많은 투자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한 우주개발 회사는 화성에 기지를 건설하고 사람들은 이주시켜 거주하게 하는 화성 이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인류가 오랜 세월 꿈꿔왔던 일로 우주개발 사에 있어 혁명 같은 일이 될 수 있다.
우주개발 사업의 다변화는 새로운 우주개발 사업과 연결되고 있다. 새 사업은 전 세계의 협업과 경쟁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우선, 지구 궤도를 돌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은 미국을 포함해 우주개발의 선진국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우주인들이 장기간 체류하면 다양한 실험과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장기간의 연구는 의미 있는 데이터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산업에 응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 우주개발 사업을 사업을 하면서 발전된 기술은 첨단 산업은 물론이고 일상을 바꾸는 제품 개발과 생산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런 국제 협업 외에 우주개발은 국가의 이익을 위한 경쟁이 한 편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속에서 과거 아폴로 계획 이후 관심이 식었던 달과 관련한 각국의 탐사와 개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아르테미스로 불리는 새로운 달 탐사 계획을 시행하고 있고 2025년 다시 한번 달에 우주인을 착륙시키려 하고 있다. 이번에는 과거처럼 달에 착륙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달 기지 건설이라는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달 기지 건설을 통해 영구적인 인간의 주거를 실현하고 그 달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화성 탐사 및 이주 등 또 다른 우주개발을 위한 전초 기지로의 활용성도 높이려 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움직임과 더불어 중국, 인도, 일본 등도 탈 탐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한국 역시 최근 탈 탐사 위성 다누리호를 달 궤도에 진입시켜 탐사를 지속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7번째 달 탐사 국가가 됐다.
이렇게 달에 대한 탐사 열기가 뜨거워진 건 달에 매장된 막대한 자원 때문이다. 달 탐사 국가들의 중요한 목적은 미래 연료 자원인 헬륨 3와 반도체 생산의 중요한 원료인 희토류에 대한 개발권을 얻기 위해서다. 이는 더 이상 우주가 신비로운 동경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이용하고 개발될 수 있는 곳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주개발은 여전히 많은 비용이 소요되고 관련 기술이 특정 국가를 중심으로 보유되고 있고 그 혜택이 제한적이다. 인류 공동 번영을 위한 우주개발은 사실상 어렵다. 또한, 우주개발이 지속하면서 폐위성 등 우주쓰레기의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또한,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은 우주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우주 미생물 등의 위험 요소가 많다. 그럼에도 인류는 우주개발의 꿈을 버리지 않고 더 발전시키고 발전 방향을 진화하고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지구의 위기에 대응하는 측면도 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하는 우주개발이지만, 더 중요한 건 지구에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일이다. 지구가 제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개발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굳건히 지키는 기반 위에 우주개발이 이루어질 때 그 의미가 실효성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주개발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어떤 성과를 낼지 그리고 평화로운 우주개발이 지속될 수 있을지, 무엇보다 그 결과가 인류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길 기대해 본다.
사진 : NASA/ 픽사베이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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