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728x170

 

최근 학교폭력 문제를 소재로 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터진 공직 후보자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과 맞물리면서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을 증폭됐다.
 
드라마는 고교 시절 막대한 부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집안의 아이들로부터 극심한 학대와 가혹행위에 시달린 학교폭력 피해자가 성인이 되어 가해자들에게 처절한 복수를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드라마 전개 과정에서 학교폭력 장면이나 몇몇 자극적인 장면이 있었지만, 이 드라마는 그 장면으로 주목받지 않았다.
 
학교폭력 장면이 잔혹했지만, 그 잔혹성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었다. 그 정도의 학교폭력이 빈번하게 있었고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중들은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것을 넘어 학교폭력 피해자인 주인공의 복수를 응원하게 된다.
 
주인공은 매우 치밀하게 그리고 잔혹하게 가해자들을 파멸시켜 나간다. 우리 법에서는 이런 사적 복수가 엄연한 불법이고 처벌을 받게 되지만, 주인공은 그런 법망을 교묘히 피해 가며 복수에 성공한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 역시 법을 어긴 셈이지만, 대중들은 그런 복수극에 열광했다.
 
이는 단순히 주인공이 학교폭력의 피해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복수가 공감을 얻는 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불평등과 극심해지는 빈부 격차, 그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이해도 나아지지 못하는 삶에 대한 불만과 절망이 함께 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구현할 수 없는 일을 통해 대중들은 대리 만족을 얻었다 할 수 있다.
 
주인공은 불우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런 주인공의 환경은 소위 상류층 집안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집단에게는 괴롭히기 용이한 먹잇감으로 인식됐다. 이미 학교에서 학교폭력을 자행하던 가해자들은 주인공에게도 이를 자행했다. 그들은 폭력은 신체적인 학대로도 이어졌다. 주인공은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분명 피해자였지만, 주인공을 그 피해를 알리고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학교는 물론이고 경찰 등의 공권력도 주인공을 도와주지 않았다. 돈과 권력의 힘 앞에 피해자는 점점 작아져갔다. 오히려 피해 사실을 알리면서 더 큰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를 도와주려는 이들 역시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그와 멀어졌다. 심지어 주인공은 가족에게도 버림받으며 홀로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결국, 피해자인 주인공은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는 최근 학교폭력 사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 많은 학교에서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치가 우선돼야 하지만, 이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해자에 대한 징계나 처벌도 미온적으로 기간이 길어지는 게 비일비재하다.
 
피해자는 자신에서 고통을 안긴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계속 함께 해야 한다. 이는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가해가 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가해자들 중 상당수가 소위 힘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배경은 학교폭력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 돈과 권력의 힘은 피해자에게 사건을 잊어버릴 것을 강요한다.
 
학교 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이 최근 마련되긴 했지만, 그 시스템은 피해자들 편이 아니다. 돈과 권력은 피해자가 괜한 문제를 일으킨 사람으로 문제가 있어 그런 일을 당한 사람으로 만든다. 학교는 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이는 용기 내 그의 피해 사실을 알린 피해자를 더 궁지에 몰아넣는다.
 
최근 문제가 된 한 공직자 자녀의 고교 시절 학교폭력 사건 역시 다르지 않았다. 가해자는 이와 관련해 전학이라는 징계를 받았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소송전으로 맞섰다. 그 소송은 대법원까지 이어졌고 그 사이 가해자는 고교 과정을 거의 다 마칠 수 있었다. 결국, 가해자는 유명 국립대에서 합격했다. 하지만 길어진 징계 과정과 함께 피해자는 정상적인 학업을 하지 못했다.
 
옛말에 ‘때린 놈은 다리를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를 뻗고 잔다’라는 속담이 있지만, 학교폭력 사건에서는 그 반대의 상황이 보통이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피해자 구제에 힘쓰는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징계에 따른 불이익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학생기록부에 학교폭력으로 인한 징계 상황이 기록되는 걸 막는 게 더 급하다. 이에 피해자들에게 합의와 선처를 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300x250

 

 

 


 
피해자들은 이에 마지못해 이에 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문제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가해자의 부모가 힘 있는 집이라면 피해자의 압박감은 더하다. 결국, 학교폭력 사건은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하고 그대로 덮이는 일이 많다.
 
가해자는 그 사건을 잊어버리면 그만이고 집안의 배경으로 성인이 되어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지만, 피해자는 그 기억을 마음에 묻고 살아가야 한다. 학창 시절의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큰 트라우마로 남을 수밖에 없다. 마침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습을 본다면 그 고통을 배가될 수밖에 없다. 뒤늦게 가해자의 행위가 알려지고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일을 극 소수에 불과하다. 법적 처벌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피해자가 용기를 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를 위한 법 절차는 복잡하고 길기만 하다.
 
그 그간 피해자는 고통의 기억을 수없이 기억하고 말해야 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고통의 기억을 계속 끄집어 내야 한다. 가해자들은 망각 속에 자신의 잘못을 묻어두고 법리적인 다툼을 한다. 그렇게 법적 처벌이 있다 해도 그 정도는 미미하기만 하다. 피해자가 겪은 고통의 세월을 보상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결과가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 법은 일반 대중들에게는 한없이 엄격하지만, 힘 있는 자들에게는 매우 관대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공정과 상식의 최소한의 규정이 법이지만, 그 공정과 상식은 상황에 따라 기준이 달라지고 그 속에서 대중들은 심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학교 폭력 사건에서 법은 피해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더 글로리’에서 주인공은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에 주인공은 사적인 복수를 꿈꾸게 된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능력으로 그것이 불가능함을 알고 긴 세월 그 복수를 준비한다. 복수의 방법론에서 주인공은 그들 앞에 직접 나서는 방법 대신 치밀한 계획과 구조를 만든다. 돈과 권력이 있는 가해자들과 직업 맞서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주인공은 학창 시절 분명히 깨닫았다.

대신 주인공은 가해자들이 자신을 위해 할 수 없는 입지를 차지하고 이를 위한 준비를 했다. 그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됐고 가해자들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를 고리로 가해자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해자들의 카르텔을 서서히 붕괴시켜 나갔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복수를 도울 이들을 하나 둘 모아 나갔다. 가해자들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이 있었고 주인공과 같이 법의 모순과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 피해 입은 이들과 연대했다. 주인공과 조력자들은 복수라는 하나의 목표에 공감했고 힘을 합쳤다.
 
또한, 주인공은 가해자들의 배경이 될 수 있는 존재들에게도 접근해 복수의 도구로 활용했다. 자신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이들이 자신을 떠나가는 고통을 가해자들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복수의 정점에 서 있는 가해자 가정을 해체하면서 복수는 절정을 향해간다.
 
이렇게 주인공은 철저한 빌드업과 협력자들과의 협업으로 가해자들의 목을 조여 들어갔다.
 
복수의 방식은 가해자들의 연대를 해체하고 그들 스스로 무너지도록 했다. 가해자들은 연대는 애초부터 이해관계가 얽힌 같은 범죄를 저지르면서 서로의 약점을 공유한 불안정한 것이었다. 만약 한 축이 무너진다면 쉽게 붕괴될 수 있는 모래성 위의 집이었다.
 
주인공은 가해자 카르텔의 가장 아랫단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먼저 공략했다. 그들은 돈과 권력을 가진 카르텔 상층부와 함께 하며 이익을 취하고 있었고 가해자들의 행동 대원 역할을 했다. 학창 시절 그 관계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주인공은 카르텔의 하위그룹에 있는 이들 마음속에 자리한 허영심과 더 높을 곳으로 향하고 싶은 욕망과 탐욕을 부추겼다. 그 욕망과 탐욕은 바닷물이었고 그 바닷물은 카르텔의 모래성을 허물어지게 했다.

 

 

 


 
가해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아귀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했고 이런 의심은 그들의 결속력을 빠르게 해체시켜 나갔다. 그 속에서 가해자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단죄를 하나 둘 받았다. 악의 축을 이루고 있었던 가해자의 우두머리는 완벽해 보였던 자신의 세상이 파괴되는 과정을 겪었다. 그는 모든 이들에게 버림을 받았고 그를 든든히 뒷받침하던 가족들도 그를 외면했다. 그는 모든 걸 잃었다. 그리고 감옥에 갇혀 청춘을 보내는 처지가 됐다.
 
그의 모습은 학창 시절 주인공의 모습 그 자체였다. 주인공은 가해자들의 파멸과 함께 그들이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도록 복수를 설계했다. 가해자들은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한 대가를 죽음으로 또한, 살아도 산 게 아는 인생으로 받게 됐다. 살아남은 가해자들은 영원할 것 같았던 자신의 세계가 파괴되는 과정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하고 그들의 범죄가 언론의 먹잇감이 되고 사람들의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는 상황 속에서 거대한 감옥에 갇히게 됐다.
 
주인공은 학창 시절 주인공이 겪었던 무력감과 절망감, 외로움을 그대로 돌려줬다. 과거 서부영화의 주인공처럼 액션 영화의 주인공처럼 슈퍼 히어로가 되어 악당들을 직접 처단하지 않았지만, 그 이상의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복수를 주인공은 해냈다.

이 드라마가 더 특별했던 건 복수 이후였다. 통상적으로 복수 주인공은 자신의 목표를 이룬 후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끼는데 보통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역시 자신의 인생을 건 복수를 마치고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려 했다.

 

 

반응형

 


 
하지만 주인공은 다시 한번 인생의 목표를 설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그는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조력자와 인생을 설계하는 한편 그의 복수에 동참하기로 한다.
 
또한, 복수라는 목표에 밀려나 있었던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다시 시작했다. 이를 통해 주인공은 마음의 상처까지 치유했다. 드라마의 제목처럼 주인공은 복수를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의 빛을 얻었다. 어쩌면 주인공은 빛나는 자신의 삶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복수가 필요한 또 다른 이와 함께 하면서 살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복수에 성공했지만,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법과 상식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주인공은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대변하고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바를 실현해 주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실제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법이나 제도, 심지어 종교마저 자신을 구원해 주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절망했다. 그 절망을 주인공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냈고 같은 절망 속에 있던 이들과 함께하며 구원을 얻었다.
 
이 드라마는 복수의 과정을 통해 통쾌함을 주는 것과 함께 약자들의 연대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음을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우리 사회가 사회적 불평등과 선별적으로 적용되는 법과 정의에 대한 무관심하고 이를 외면한다면 그 속에서 쌓인 다수의 분노가 폭발할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건 누군가의 분노가 복수로 이어지기 것을 보고 열광하기 전에 피해자가 발생하는 일을 막는 것일지도 모른다.  드라마의 소재가 된 학교폭력 역시 폭력의 발생을 근원적으로 막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행위가 일어나면 그 단계에서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누군가의 영혼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부터 공정한 정의가 실현돼야 한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진정한 사과와 반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이런 사회적 이슈의 본질을 외면하고 자극적인 보도를 하면서 트래픽을 유도하려는 데 혈안이 되는 우리 언론들의 행태도 달라져야 한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가해이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은 해결책은 피해자에게는 큰 상처가 되고 그렇게 쌓인 피해자들의 분노는 누군가에 대한 증오로 발전할 수 있고 결국 폭발할 수밖에 없다. 이는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일이다. 이는 이 드라마를 흥미로운 단순 복수극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이 드라마의 복수극이 공감을 얻고 지지를 얻는 건 많은 이들의 삶 속에 사회부조리와 관련한 분노와 억울함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는 한국인들의 중요한 정서인 '한'이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이를 견디는 게 미덕이었지만, 이제는 억울함을 밝히고 이를 해결하는 게 사회의 상식이 되야 한다.  더는 피해자들이 참고 견뎌야 하는 불공정은 없어야 한다. 

 
공정과 정의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세상, 이는 우리 사회를 항상 밝게 하는 데 있어 기본이 될 수 있다. 드라마를 본 이의 리뷰 중, '만약 가해자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 건설사의 사장이 아닌 검사와 결혼을 했었다면 이 복수가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두가 구성원이 되는 게 자랑스럽고 밝은 내일을 꿈꿀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 본다. 


사진 : 넷플릭스 / 픽사베이, 글 : jihuni74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댓글
반응형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