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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도의 탈 탐사선이 전 세계에서 누구도 닿지 못한 미지의 영역인 달 남극에 착륙해 임무를 수행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최근 여러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탈 탐사에 인도가 주목받는 순간이었다. 인도는 그동안 자체 기술로 많은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고 지속적으로 우주탐사를 진행하고 있는 우주 강국이다.  

이 밖에 인도는 신흥 IT 강국으로 관련 산업 분야에서 그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세계 IT 산업의 중심인 미국 실리콘 밸리의 기술 인력 상당수는 인도 출신이고 그 인도 출신들이 빅 테크 기업의 CEO가 되는 일을 보는 건 이제 이상하지 않다. 이 밖에 인도는 각종 첨단 산업분야에서 독자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다수의 핵탄두를 보유한 핵보유국이기도 하다.

또한, 인도는 중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인구 대국이 됐고 이는 거대한 내수 시장을 형성하게 했다. 또한, 넓은 영토와 천연자원,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하는 농산물과 축산물의 전 세계 시장에서의 비중도 매우 크다. 최근에는 산업화를 급속히 진행했고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이를 바탕으로 인도는 미국과 중국의 양강 구도에서 벗어난 새로운 다자간 경제협력체인 브릭스의 핵심 국가로 국제외교에서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고 있기도 하다. 


신흥 강국으로 급부상한 인도 


최근 신흥 강대국으로 발전하는 인도지만, 어두운 이면 또한 함께 하고 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들이 다수 존재하지만, 다수의 빈곤층이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극심한 빈부 격차의 문제가 존재하고 이는 큰 사문제가 되고 있다. 다민족, 다종교가 혼재하는 나라의 특성상 갈등 요소가 가득한 점도 불안요소다. 그 한편에서는 참선과 깨달음의 나라라는 또 다른 면이 존재하고 무질서와 각종 범죄 등의 문제가 공존하다. 최근 인도 관련에서 자주 등장하는 여성들을 상대로 한 끔찍한 성범죄는 인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렇게 인도는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함의 나라고 극과 극의 요소들이 한 공간에 함께 하는 혼돈의 나라다. 여러 가지 퍼즐들이 모여 만들어진 느낌의 나라다. 그러면서도 나라가 유지되고 있고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역사 예능 프로그램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복잡다단한 나라 인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힌두교와 카스트제도를 인도 전문가의 설명과 함께 살폈다. 

 

 

 



인도의 수천 년 넘은 역사에서 힌두교는 단순한 종교 이상의 의미가 있다. 힌두교는 인도의 정치,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힌두교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도를 하나로 묶는 이념 그리고 가치의 기준이다. 힌두교의 시작은 기원전 1500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인도 갠지스강 유역으로 진출한 유목민과 기존 토착민들의 문화 전통이 결합하여 탄생됐다는 설이 다수다. 

힌두교는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종교들과 달리 다신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인도의 각 지역과 각 민족별로 섬기는 신이 존재하고 그 신들을 인정하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인도에서는 힌두교의 이런 정책은 힌두교가 뿌리를 내리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 

다신교이긴 하지만, 힌두교는 창조의 신인 브라마신과 보존의 신 비뉴누신, 파괴의 신 쉬바신이 중심을 이룬다. 창조, 유지, 파괴라는 역사의 중요 흐름을 이 안에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힌두교의 근간을 이루는 윤회사상과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현재의 삶이 떠 다른 삶과 연결되어 있다는 윤회사상은 지배계급의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활용됐다. 


힌두교의 시작, 카스트제도의 확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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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기반으로 힌두교는 철저한 계급제에 입각한 카스트제도를 확립 적용했다. 카스트 제도에 의하면 인도의 구성원들은 사제 역할을 담당하는 브라만을 시작으로 왕과 귀족, 무사들이 주류를 이루는 크사트리아, 농업과 상업 종사자들이 대부분인 바이샤,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하는 수공업자들과 노예 계층의 수드라로 구분된다. 이는 피라미드 형태로 계층화되고 인도의 문명이 발전하는 가운데 더 공고해지고 사회에 뿌리를 내렸다. 

카스트제도의 가장 정점이 있었던 브라만 세력은 인도가 고대 왕국으로 발전하고 통일된 제국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서 그 입지를 더 공고히 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브라만은 신과 가장 가까운 이들로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았다. 우리 역사에서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제의 존재는 고대 국가 시기까지 권력자 그 이상의 힘이 있었다. 삼한시대 치외법권 지역인 소도는 사제들의 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인도의 브라만 역시 그들에게 부여된 권위를 바탕으로 사회 지배계층으로 변모해갔다. 그러면서 그들의 기득권을 강하게 하기 위해 힌두교의 교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를 통해 브라만들은 그들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성스러운 존재로 개념화했다.

이와 관련해 갠지스강은 성스러움의 성지이자 힌두교의 최고 성지가 됐고 수많은 힌두교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한편으로는 생의 마지막을 갠지스강에서 마치는 것이 최고의 영광으로 여겼다. 이에 갠지스강에서는 매일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인도인들의 장례 절차인 화장이 이루어지고 그 재가 갠지스강에 뿌려진다.

갠지스강은 노천 화장장 운영과 인근 공장지대와 주거지역에서 배출하는 공해물질과 생활 하수 등으로 크게 오염됐지만, 그 한편에서는 성스러운 강에서 목욕을 하고 기도를 올린다. 삶과 죽음, 성스러움과 악취가 공존하는 극과 극이 공존하는 곳이 갠지스강이다.  

이렇게 브라만은 인도의 계급 구조에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는 한편 카스트의 하층민 계급에 대한 차별을 노골화했다. 인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농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바이샤와 각종 육체노동과 생산활동에 종사하는 수드라 계급은 차별 속에 살아야 했다. 

 

 




카스트제도에 대한 반발과 변화 


이런 차별적 사회 구조는 반발에 직면했다. 석가모니가 주창한 불교의 탄생과 발전은 기존 힌두교의 차별과 브라만들의 과도한 특권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물이었다. 석가모니는 기원전 6세기 경, 신흥 종교인 불교를 창시하며 무소유와 살생의 금지, 브라만들의 중요한 권력 유지 수단이었던 제사 금지 등을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의 그간에는 카스트제도를 부정하는 평등사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억압받고 있었던 이들에게 불교는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에 브라만 계급은 수많은 소들은 재물로 바치는 제사 방식에 변화를 주고 소를 신성시하는 변화를 꾀했다. 농업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농경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은 인도에서 이에 종사하는 이들의 반발은 카스트제도를 흔드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소를 신성시한다는 건 농업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안정적인 농경사회를 유지하는 일이었다. 이를 통해 농업에 주로 종사하는 계급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었다. 

이렇게 힌두교는 그들의 교리를 그 시대의 상황에 변화시키며 그 힘을 유지했다. 이러한 유연함은 힌두교가 그 교세를 수천 년 동안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됐다. 힌두교는 교리를 체계화한 힌두 법전을 만들었고 이는 국가 통치의 근본이 됐다. 

힌두 법전에는 브라만의 특권을 규정하고 카스트 최하층민인 수드라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했다. 이를 통해 카스트제도에 대한 정당성을 공고히 했다. 그러면서 매우 세속적인 면도 보였다. 부의 축적과 소비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임을 명시했다. 일종의 자본주의 경제체제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인도의 상상을 초월한 초호화 결혼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인도에서는 자신의 번 돈을 어떻게 쓰든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교리는 기득권층에게 절대 유리한 시장경제의 상황을 고려하면 사위 카스트의 지배력을 강화시키는 한 방편으로 보인다. 

이 밖에 육체적 쾌락 추구에 매우 관대하다. 종교인의 금욕을 강조하는 여타 종교와는 다른 점이다. 힌두교는 남녀 간의 성생활을 신성시하고 경전에 이와 관련한 외설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는 한편으로 농경사회인 인도에서 중요한 노동력 확보를 위한 출산을 장려하는 측면도 존재한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은 사회 유지를 위해 하층민의 수를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한 면도 있다.

 

 




사색과 깨달음의 나라 인도? 


힌두교는 세속화와 함께 수행과 참선을 강조하는 또 다른 면도 함께 가지고 있다. 특히, 수행을 위해 극한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고행을 하는 힌두교도들도 있다. 그 고행자들은 인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인도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이에 인도는 수행자의 나라, 사색의 나라, 깨달음의 나라로 지금도 인식되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1960년대 미국 사회에 큰 유행이었던 히피 문화와 결합되며 서구 사회에서 인도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1968년 당시 세계 최고 팝 아티스들이었던 비틀지 멤버들의 인도 방문과 문화체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지만, 힌두교와 카스트제도는 복잡다단한 인도 사회를 규율하고 유지하는 근본이 됐다. 그 수천년을 이어온 전통은 인도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런 카스트제도 시스템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존재들도 있다. 불가촉천민들이다.

불가촉천민들은 그들을 지칭하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체 접촉조차 하면 안 되는 혐오의 대상이고 극심한 차별을 받는 대상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밤에만 이동을 해야 했고 할 수 있는 일도 극히 제한됐다. 불가촉천민들은 가장 힘든 분야의 노동을 전담했다. 그들은 힌두교에서 가장 죄악시하는 가장 더러운 존재들이었고 이로 인해 카스트의 계층에도 들어갈 수 없었다. 이는 인도의 사회 시스템에 포함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불가촉천민들은 카스트제도의 모순을 감추기 위해 지배층들에 의해 더 심한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카스트의 하층 계급들에게 불가촉천민들의 존재는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고 일종의 갑질을 하면서 사회적 불만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 불만을 특정 계층과 집단의 잘못으로 몰아 그들을 적대시하고 심지어 폭력을 행사하며 무마시키는 전체주의적 사고와 일맥상통하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실제 불가촉천민들은 사회적 약자로 심각한 차별에 시달렸고 폭력의 대상이 됐다. 근. 현대 사회가 되었어도 불가촉천민들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카스트제도가 시대의 변화 속에 점차 수천 개로 분화되고 사회 계층이 아닌 직업의 의미로 변화하는 시점에도 마찬가지였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 통치 방식도 문제가 있었다. 영국은 인도의 통치를 보다 수월하게 하기 위해 인구의 인구를 카스트제도에 근거해 다시 단순화했다. 점차 의미를 잃어가던 카스트제도가 현대에 와서 되살아났다. 영국은 소수를 차지하는 카스트 상단의 계층들에게 통치의 권한을 일부 주고 인도를 통제하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인 혐오와 차별의 대상, 불가촉천민


일제 강점기 일제가 다수의 친일파를 양산해 조선인을 통치에 활용한 것도 비슷한 방식이다. 또한, 영국은 인도를 통치하면서 종교별 분리 정책을 통해 인도의 분열을 오히려 조장했다. 인도가 독립 후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로 분열되는 원인을 영국이 제공했다. 

이런 상황에서 불가촉천민들의 삶이 나아질 리 없었다. 이에 불가촉천민들은 인도의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는 시기 차별 철폐 운동으로 맞섰다. 그 중심에는 암베드카르가 있었다.  지금도 인도에서 존경받는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인권 운동가인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 출신으로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하며 선진 문물을 공부했다. 그는 불가촌 천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미국과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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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암베드카르는 변호사이자 법 전문가로서 일하는 한편 인권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그는 인도의 악습인 차별적인 신분제 철폐 운동을 이끌었고 그 안에는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차별 철폐가 핵심이었다. 

그는 인도 독립 후 법무부장관으로 인도 헌법을 기초하는 한편, 불가촉천민 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또한, 힌두교가 지배하는 인도 사회에서 불교 부흥운동을 강력히 전개하고 그 스스로가 불교 신자로 개종하기도 했다. 그를 따라 많은 불가촉천민들이 불교로 개종했다. 이는 차별에 대한 저항이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인도는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1950년 1월 반포한 헌법에서 카스트제도의 철폐와 불가촉천민제 폐지를 포함한 차별 금지를 명시했다. 이로써 수천 년을 이어온 카스트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인도 사회에서 카스트는 그 힘을 발휘하고 있고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에 맞서 불가촉천민들 역시 강하게 저항하고 맞서면서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질 우려도 있다. 


사회적 불평등 해소가 시급한 인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인도 정부는 불가촉천민 및 소수 민족 등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우대하는 지정 카스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정 카스트에 포함된 이들은 교육이나 공직 진출 등에서 혜택을 받는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 정책으로 취지는 나쁘지 않지만, 그 대상이 증가하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오히려 역차별 논란 속에 타 카스트들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 보호를 위한 정책이 사회적 갈등을 더 크게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근본 문제는 그동안 누적된 인도의 극심한 빈부 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구조에 있다. 인도는 극소수가 나라의 부를 독점하고 있고 더 심화되고 있다. 정치권은 이 문제를 해결할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카스트 간 갈등을 자신의 세력 확대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는 앞으로 인도가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 큰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또한, 카스트제도가 가진 불평등 구조를 일소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사회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 사람을 출신 지역이나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로 평가하고 재단하는 건 현존하는 가장 선진적인 사회 운영 시스템인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다. 

인도의 카스트제도는 이 점에서 분명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 평등의 구현과 거리가 있다. 그 나라의 역사, 문화, 전통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세계 모른 나라는 싫든 좋은 다양한 공급망으로 연결되고 있고 소통과 교류를 하고 있다. 자급자족의 국가가 아니라면 보편적 가치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 

인도는 이제 지역의 선도 국가로 경제 대국으로 그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 잠재력 또한 무궁무진하다. 인도가 단순한 강대국이 아닌 선진국으로 더 발전하고자 한다면 전근대적인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피할 수 없다. 인도의 장점은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것으로 승화시켜왔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힌두교와 카스트제도 역시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나라가 인도이기도 하다. 인도가 과연 그들의 전통과 변화에 대한 안팎의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궁금하다. 


사진 : 프로그램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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