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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필수품이 된 스마트폰, 이제 스마트폰은 나이나 국적, 성별에 상관없이 전 세계인들에게 보급되어 있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전화 통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는 것에서 벗어나 한 손에 들어가는 컴퓨터의 역할도 하고 있다. 유선을 넘어 무선 인터넷 통신망이 세계 곳곳에 구축되면서 스마트폰은 다양한 업무나 일상의 일들을 처리할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은 실시간으로 다양한 이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수단이고 지식과 정보를 언제든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와 관련해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이에 현대의 삶에서 스마트폰은 만능열쇠나 다름없다.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현대인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이유다. 

스마트폰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시대를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미국은 대표하는 IT 기업 애플의 창업주였던 스티브 잡스다. 그는 자동차 차고에서 애플을 창업해 애플을 미국 주식시장에서 시가 총액 1, 2위를 다투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상상하기 못했던 혁신적인 제품을 연달아 출시하면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잡스는 혁신의 아이콘이 됐고 잡스의 이미지는 애플을 상징했다. 애플이 잡스 그 자체였고 이는 애플의 전 세계적으로 그 영향력을 가진 기업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고교시절 잡스 - 위키백과




불우했던 유년기, 그리고 문제 학생


이렇게 시대를 선도한 혁신가였던 잡스였지만, 그에게는 냉혹한 사업가, 매우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인물이라는 또 다른 수식어도 함께 따른다. 그의 성공 이면에 잡스는 어두운 개인사와 사업가의 면모도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잡스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애플은 잡스라는 공식은 유효하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인물로 남아있다. 그만큼 그가 남긴 업적이 크고 대단했기 때문이다. 

잡스의 어린 시절은 행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의 친부모는 그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그를 입양 보냈다. 어린 잡스에게는 큰 충격이 될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가 10대 시절 방황의 시간을 보내는 원인이 됐다. 그는 천재성을 가진 학생이었지만, 청소년기 히피 문화에 심취해 무난한 삶과는 크게 다른 시간을 보냈고 마약에 손을 대는 등 방황을 거듭했다. 한 마디로 문제 학생의 삶이었다. 

이런 그에게 실리콘밸리에서의 경험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잡스의 10대 시절 실리콘 밸리는 작은 시골마을이었지만, IT 기업들이 하나 둘 이주해 특화된 산업단지로 발전하는 시기였다. 그곳에서 잡스는 공학자들과 기술자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잡스는 그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지는 결정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잡스에게 기존의 사회적 관습에 덜 얽매이고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IT 산업이 잡스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가능성이 크다. 

IT 산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잡스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19살의 어린 나이에 게임회사에 취직했다. 당시 그 게임회사의 대표는 그의 가능성을 확신하고 그를 채용했다. IT 산업의 선구자 잡스 인생의 시작이었다. 게임회사에서의 생활을 순탄하지 않았다. 평범함과 거리가 있는 잡스의 생활 패턴과 성향은 동료들과의 융합을 어렵게 했다. 부정적인 평판은 회사 내에서 잡스의 입지를 좁게 했다. 

하지만 잡스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는 과정에 훗날 애플의 공동 창업자가 된 워즈니악과 만나게 된다. 워즈니악은 컴퓨터에 있어 천재적 재능이 있었다. 이는 잡스가 가지지 못했던 능력으로 그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다른 회사에서 일을 했지만, 함께 1인용 게임을 개발하는 등 교류를 이어갔고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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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즈니악과의 만남, 애플 창업


결국, 두 사람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1976년 4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투자해 개인용 컴퓨터 회사인 애플 컴퓨터를 창업했다. 잡스는 워즈니악은 개발한 개인용 컴퓨터의 가치를 알아봤고 그들의 컴퓨터를 만들어 팔기 위해 차고지 한 편에서 회사를 차렸다. 

당시 개인용 컴퓨터는 크기가 매우 크고 가격도 일반인들이 구입하기에는 매우 비쌌다. 일반 개인이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그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신생 기업인 애플컴퓨터의 도전은 무모한 일일 수 있었다. 실제 애플의 첫 번째 개인 컴퓨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제품이었지만, 매우 높은 가격으로 인해 대중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애플은 그 제품을 보다 발전시켰고 크기를 지금의 컴퓨터와 비슷하게 슬림화 했다. 그러면서도 성능을 유지했고 컴퓨터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게임 프로그램을 내장해 관심을 높였고 가격을 대폭 낮추는 전략을 사용했다. 그 결과 애플이 두 번째로 출시한 개인용 컴퓨터는 매우 큰 인기를 얻었다. 애플이라는 회사가 대중들에게 그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잡스는 이 성공을 바탕으로 애플을 주식시장에 상장했고 금세 성공한 사업가,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애플은 성공은 얼마 안 가 치열한 경쟁에 직면했다. IT 업계의 공룡이라 할 수 있는 IBM이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제품을 출시했다. IBM 컴퓨터는 애플의 방식과 달리 뛰어난 호환성과 확장성이 장점이었고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이 뛰어났다. IBM은 애플이 주도하던 개인 컴퓨터 시장의 강자가 됐고 애플은 시장에서 점점 위축됐다. 

잡스는 이에 맞서 애플만의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컴퓨터 개발에 몰두했다. 이전에는 없었던 마우스를 도입했고 아이콘을 클릭해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다양한 서체를 내장해 디자인적 요소를 더했다. 지금은 매우 보편적이지만, 당시는 획기적인 컴퓨터였다. 이를 통해 잡스는 IBM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애플의 장점을 더 부각시키는 마케팅 전략을 병행했다. 하지만 애플 특유의 프로그램의 폐쇄성과 비싼 가격정책은 시장에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었다.

잡스는 이런 우려에도 개발과 출시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매우 독선적이고 때로는 강압적인 면모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신념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반대 의견을 수용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데만 주력했다. 이는 내부 구성원과의 갈등을 초래했다. 여기에 1984년 출시했던 잡스의 야심작인 개인용 컴퓨터 매킨토시가 성공적이지 못하면서 회사 내에서 잡스에 대한 배제 분위기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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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용 컴퓨터 시대 주도, 창업한 회에서 축출된 스티브 잡스 


결국, 잡스는 1985년 자신의 설립한 회사 이사회의 결정으로 회사에서 축출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애플을 창업했던 워즈니악도 건강 이상 등의 문제로 애플을 퇴사하면서 애플은 창업자가 모드 회사를 떠나는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다. 

하지만 잡스는 포기하지 않고 실리콘 밸리에서 자신의 컴퓨터 회사를 창업하고 재기를 모색했다. 또한, 스타워즈,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의 컴퓨터 그래픽 회사를 인수해 애니메이션 회사로 변모시켰다. 픽사로 회사명을 변경한 이 애니메이션 회사는 3D 장편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를 성공시키는 등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 회사로 성장했다. 이 픽사의 성공은 잡스가 재기하는 데 있어 중요한 발판이 됐다. 훗날 픽사는 월트 디즈니에 매각됐고 픽사의 1대 주주였던 잡스는 월트 디즈니의 대주주가 된다. 

이렇게 잡스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며 성공한 사업가로 그 명성을 되찾는 사이 그를 내보낸 애플은 지속적인 사업 부진으로 경영난에 시달렸다. 결국, 애플은 창업주였던 잡스에게 손을 내밀었고 잡스는 1997년 10년이 넘은 세월을 지나 애플의 CEO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잡스는 애플로 복귀한 이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한계 사업을 정리하고 대량 해고를 단행했다. 그 과정에서 잡스는 매우 냉철한 독재자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과감한 구조조정과 주력 사업의 정리는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애플을 적자 기업에서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았다.

 

 




재기 성공과 금의환향, 애플에 주입한 혁신


이 과정에서 잡스는 애플에 혁신의 이미지를 더했고 애플 이미지 제고에 주력했다. 이를 위해 애플은 차별화된 이미지 광고를 통하 홍보를 지속적으로 펼쳤고 잡스 스스로도 자신만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지금도 잡스 하면 떠오르게 되는 청바지에 검은색 상의는 하나의 유니폼이 됐고 애플을 상징하는 또 다른 이미지가 됐다. 그때부터 잡스는 애플이었고 애플은 잡스가 됐다. 

잡스의 혁신은 그때부터 본격화됐고 그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가 등장했다. 우선 음악 시장이 음반에서 음원 중심으로 유통구조가 변모하는 흐름을 읽고 언제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다운로드할 수 있는 음악 서비스를 시작하는 가 하면 그 음원을 들을 수 있는 제품도 출시했다.

애플의 음악 서비스는 그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과거에는 애플 제품만 호환의 되는 폐쇄성이 제품 판매에 악재가 됐지만, 애플에 현식이라는 이미지가 더해지고 특별함이 더해지면서 애플 그리고 잡스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면서 애플의 생태계 속으로 소비자들이 기꺼이 들어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 속에서 애플은 음원을 보다 저렴하게 유통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음원 서비스가 실시되는 초기 불법 음원들이 자유롭게 유통되는 상황에서 애플의 시도는 무리한 일일 수도 있었지만, 애플 생태계에서 음원 유통이 자연스럽게 정착됐다. 이는 애플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지속적으로 수익을 발생하게 하는 플랫폼을 형성하게 했다. 이를 통해 애플은 컴퓨터를 만드는 제품 생산자에서 플랫폼 사업자로 소프트웨어 판매자로 사업을 다양화할 수 있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잡스는 2007년 혁신의 절정을 이루는 제품을 출시했다. 기존의 음원 재생장치에 전화 통화 기능과 컴퓨터 기능을 더한 아이폰이 그것이었다. 아이폰은 스마트폰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제품이었다. 아이폰은 점점 발전하는 무선 인터넷 시대에 부응하는 제품이었고 수려한 디자인과 이전에 없었던 화면 터치 방식, 배터리 일체형으로 크기를 얇게 하는 변화를 보였다. 여기에 애프만의 애플리케이션과 이모티콘 등 차별성을 더하며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는 많은 판매량으로 연결됐다. 

이는 아이폰을 사용하는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소비자가 되는 일종의 유행으로 변모했고 애플 제품에 대한 팬덤을 형성하게 했다. 실제 지금도 애플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충성도는 여타 제품을 크게 능가한다. 신제품이 출시되는 시점에는 제품을 먼저 사기 위해 판매점에서 줄을 서는 진풍경이 지금도 연출되고 있다.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아이폰, 애플 = 잡스


아이폰의 성공은 애플을 세계 최고 IT 기업이 되도록 했다. 당연히 잡스 역시 한 회사의 CEO가 아는 대중 스타로 그 입지가 변모했다. 그의 생각과 삶에 대한 각종 서적이 쏟아졌고 혁신하면 잡스라는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됐다. 중요한 건 아이폰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그 운영 체제는 차이가 있지만, 아이폰은 스마트폰에는 일종의 표준이 됐다. 어느 제품을 사용하던 스마트폰의 시작은 아이폰, 그리고 잡스라는 이미지는 변함이 없다.

이렇게 스마트폰의 시대를 연 잡스는 이후에도 새로운 제품을 연달아 출시하며 성공한 CEO의 길을 계속 걸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발명한 췌장암 투병으로 고통받았다. 그 와중에도 잡스는 강한 의지로 애플을 이끌었지만, 2011년 10월 56세의 다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2011년에도 신제품 출시 현장에 등장하는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웠지만, 암은 그를 그대로 놔두지 않았다.

정말 파란만장하다는 표현이 맞는 인생이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애플은 여전히 잡스의 그림자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그의 사후 출시되는 제품에는 아직도 잡스 때와의 비교가 따라붙는다. 그의 사후 애플의 혁신 이미지가 퇴색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잡스는 애플의 번영을 가져온 인물이지만, 애플이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짐이기도 하다. 다르게 말하면 잡스가 IT 산업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큼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물론, 잡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그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미화되고 영웅 됐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잡스는 시대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벌거벗은 세계사 스티브 잡스편은 그의 삶의 다양한 면을 조명했고 혁신이라는 단어 뒤에 숨은 어두운 이면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사진 : 프로그램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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