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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아주 오랜 세월 그 영향력을 주고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그 역사 중 상당수는 침략과 전쟁의 역사가 차지하지만, 중국을 통해 한반도는 다수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바탕 위에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해 나갔다. 

물론,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 중국을 통일한 거대 왕조가 들어섰을 때는 우리가 신하가 되는 사대의 관계를 맺기도 했고 그 관계가 조선말까지 이어지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교류가 이어졌다. 그 관계를 창조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중화주의를 신봉하고 성리학적 세계관에 갇혀 사대를 강조한 조선 시대의 흐름이 그런 흐름을 더 강하게 한 면도 있다. 

현재 중국은 대외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고 남. 북이 군사적으로 대처하는 상황에서 안보적으로 중요한 국가이기도 하다. 6.25 한국 전쟁 당시 적으로 상대하기 했지만, 현재 중국은 미국에 버금가는 강국으로 발전하고 있고 그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매우 크다. 우리가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이는 중국을 잘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커지게 한다. 특히, 중국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는 부분도 있고 여러 교훈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중국에서 가장 강성했던 당나라의 수도이자 국제도시 시안


얼마 전 방영한 EBS 여행 프로그램 세계 테마기행에서는 중국 한시를 연구한 중국 전문가인 김성곤 교수와 함께 중국 역대 많은 왕조들이 수도로 삼았던 장안, 지금의 시안을 중심으로 그 일대와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역사가 함께 하는 쓰찬 지역을 여행하며 각 역사시대에서 파생된 고사성어와 그 의미, 역사적 인물, 지역의 맛과 멋을 찾아가는 시간을 보냈다. 

여정은 시안이 있는 산시성을 시작으로 그 인근의 쓰찬 지역 등을 함께 찾았다. 그 속에서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왕조인 진시황제의 진나라와 우리나라 사람들도 애독하는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유비와 제갈량, 장비와 같은 영웅들, 중국 고대 국가 중 가장 국제적으로 강성했던 당나라의 왕들에 대한 이야기, 멋진 경관의 명승지와 중국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 함께 했다. 중국의 과거와 현재가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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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당나라의 흥망성쇠를 살피는 시간이었다. 당나라가 강성하던 시절 당나라 황제들의 이야기 속에서 훌륭한 왕의 조건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었다. 당나라 건국 후 당나라를 전성기로 이끌었던 태종, 그의 뒤를 이어 당나라를 더 강하게 부강한 나라로 만든 중국 역사의 최초이자 마지막 황제 측천무후, 선대 왕들의 업적을 이어 전성기를 지속한 당나라 현종은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권력 투쟁 과정에서 반대파에 대한 피의 숙청을 단행하기도 했지만, 통치기에는 유능한 신하들을 고루 기용하고 그 신하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그 간언이 자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당나라는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다. 

 

 

 



당나라 전성기 이끌었던 성군들의 이야기 



이와 관련한 고사성어로 말할 수 있는 길을 널찍이 연다는 의미의 '廣開言路(광개언로)', 양측 의견을 모두 들어야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의 '兼聽則明(겸청즉명)' 사람으로 거울을 삼는다는 의미의 '以人爲鏡(이인위경)' 고사성어를 공부할 수 있었다. 이 말들 속에는 높은 자리에 갈수록 스스로 겸손하고 자신의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주변의 말들을 귀담아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과 소통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함을 의미하고 있다. 실제 이 고사성어의 가르침 대로 통치를 한 당나라 왕들은 당나라를 전성기로 이끌었다. 

하지만 이런 당나라의 쇠락은 통치자의 잘못된 판단과 본분을 잊은 행동이 초래했다. 당나라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끌었던 현종은 집권 초기 성군이었지만, 이후 사치와 향락에 빠져들었고 당나라의 국력도 점점 기울어갔다.  이 시기 등장한 인물이 양귀비다. 당나라 현종은 아름다운 외모의 양귀비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했고 당 현종의 총애를 얻은 양귀비는 자신의 측근들과 함께 국정을 농단하고 나라를 파탄으로 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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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당나라는 지방의 절도사인 안록산과 그가 죽은 후 그의 부하 사사명이 일으킨 두 차례 반란인 안사의 난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급격히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양귀비는 나라를 망하게 한 요부로 지탄을 받았고 안 안록산의 난 당시 피난 도중 황제를 지키던 군사들의 강요에 의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세상을 떠났다. 현종 역시 왕위를 내놓고 양귀비를 그리워하며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와 관련해 
나라를 위태롭게 할 정도의 뛰어난 미모를 지닌 이를 뜻하는 '傾國之色(경국지색)' 이라는 고사성어가 언급됐다. 양귀비와 관련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 남성 중심의 성리학적 사고가 더 강하게 사회를 지배했던 당나라 후대 왕조 시기 그 악행이 과장됐다는 반론도 있다.

 

 




당나라의 몰락 부른 당 현종과 양귀비의 로멘스


또한, 당나라의 쇠락은 누적된 사회 문제들이 폭발한 결과라는 주장도 있다. 양귀비로 인해 당나라가 망국으로 길로 접어들었다는 건 지나친 일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한때 성군으로 칭송받았던 당나라 현종이 자신의 본분을 잊고 권력을 사유화하고 왕의 책무를 게을리했다는 건 분명하다. 이는 현재를 사는 이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나라를 망하게 하는 권력자의 형태를 살피며 등장하는 진시황제 사상 통제, 탄압을 뜻하는 책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땅에 묻었음을 줄인 말 
'焚書坑儒(분서갱유)'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수단이었지만, 그의 공포정치를 상징하는 일이었고 백성들에 가혹했던 정치는 현재 중국의 토대를 만드는 등 많은 업적과 폭군의 이미지를 함께 갖도록 했다. 진시황제가 세운 진나라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얼마 안 가 멸망을 길을 걸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정치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을 진시황제는 보여주고 있다. 

이 밖에 삼국지의 중요한 무대가 됐던 쓰찬 지방 기행에서는 삼국지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유비가 지방의 군벌에서 촉한으로 불렸던 한 나라의 왕이 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지략가 제갈량을 만나는 과정과 유비 사후에도 그의 유지를 받들어 위나라 공격에 주력한 제갈량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 한편에서 무시무시한 괴력의 장군으로만 알았던 장비가 사실은 뛰어난 목민관이기도 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결코 가볍지 않은 고사성어가 주는 교훈


이 삼국지와 관련한 이야기 속에서 유비가 제갈량을 책사로 맞아들이기 위해 세 번 직접 찾아갔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뛰어난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의미의
 '三顧草廬(삼고초려)' 유비가 제갈량과 자신의 관계를 말하면서 했던 매우 친밀하게 사귀어 떨어질 수 없다는 뜻의 '水魚之交(수어지교)' 라는 고사성어의 기원도 살필 수 있었다. 

이런 역사기행과 함께 여정 중간중간에 산시성과 쓰찬 일대의 멋진 자연경관을 살필 수 있는 여행지와 문화역사 유적지를 살피며 눈을 즐겁게 하는 시간을 더했다. 

 

 

 

방송링크

https://worldtrip.ebs.co.kr/worldtrip/replayView?siteCd=KH&courseId=BP0PAPD0000000013&stepId=01BP0PAPD0000000013&lectId=60388678

 

세상의모든기행 - 중국고사유랑1-다시 장안이 화제다!

시안. 대안탑. 대당불야성. 대명궁. 회민가. 종남산. 병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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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고사성어 기행을 통해 나라를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는 일이고 그것이 가지는 무게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움을 알 수 있었다. 권력자의 통치 행위는 그 시대뿐만 아니라 후대 역사에서 그 공과가 평가되고 기록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고 큰 사명감음 가지고 임해야 함도 느낄 수 있었다.

통치행위의 진정한 목표는 국민들은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되어야 하고 역사에 심판에 겸허해야 함을 그동안 우리가 배워온 역사는 알려주고 있다. 훌륭한 통치자는 백성의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기는
 '民食爲天(민식위천)'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밤에 문을 닫지 않아도 되는 '夜不閉戶(야불폐호)' 사회를 만들어야 하며 길에서 남이 버린 걸 줍지 않는 '路不拾遺(노불습유)' 의 세상, 모두가 '태평성대(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의 정치는 고사성어의 가르침을 잘 따르고 있을까? 역사는 미래를 미추는 거울이라는 말을 높은 자리에 있는 이들은 항상 마음속에 새겨야 한다. 

 

본 게시글은 EBS 스토리 기자단 18기 활동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 프로그램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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