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 쿠데타로도 불리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와 이에 반대하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으로 국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은 전두환을 의장으로 하는 초 헌법적 기관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1979년 12. 12 군사 반란으로부터 시작된 권력 찬탈 작업을 마무리하려 했다.
국보위는 자신들에 반대하는 정치인과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 외에 공무원 조직에 대한 숙정 작업도 병행했다. 여기에 사회악을 근절하다는 명분으로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운영했다. 이제 많이 알려졌지만, 삼청교육대는 애초 계획했던 불량배, 조직폭력배는 물론이고 다수의 무고한 이들이 강제로 끌려가 가혹행위에 시달리고 죽거나 다치는 등의 인권유린이 자행됐다.
이에 더해 국보위는 방송과 언론 장악을 위한 방송국, 언론사 통폐합과 언론인 대거 해직 등을 자행했고 향후 신군부의 집권을 위한 사전 작업을 곳곳에서 했다. 이 과정을 거쳐 전두환은 일명 체육관 선거로 불린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제 선거를 통해 7년 단임의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제5공화국의 시작이었다.
이런 국보위에서 1980년 7월 30일 전 국민이 놀랄만한 발표를 했다. 7.30 교육개혁 조치로 명령한 이 발표의 골자는 개인 과외 금지와 대학교 본고사 폐지와 국가 주관의 대입 학력고사 실시, 대학 입학 정원 확대, 대학교의 졸업정원제 실시 등을 담고 있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개인 과외 전면 금지와 학력고사 실시였다.
최근 제5공화국을 재조명하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이 7.30 교육개혁 조치를 다시 살피며 우리 교육의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시 7.30 교육개혁 조치는 대학 입학 시스템 자체를 흔드는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상당수 국민들에게 긍정 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학 입학 정원은 대학 입학을 원하는 학생 수에 비해 크게 적었다. 당연히 대학입시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대학 입학을 위한 과정도 쉽지 않았다.
수험생들은 예비고사를 통과해야 했고 그 학생들은 다시 대학 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문제는 각 대학의 본고사 수준이 매우 높았다는 점이었다. 변별력을 위한 것이었지만, 문제의 수준은 정규교육 과정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공부, 과외가 필수적이었다.
이미 한국은 1970년대 고도성장기와 도시화를 거치며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올랐고 교육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각 가정별로 자녀수가 크게 줄었다. 자녀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됐다 할 수 있다.
마침, 그때부터 한국에는 대학의 서열화가 진행되고 학벌이 성공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대학을 졸업의 유무에 따라 임금 수준이 현저하게 차이가 났고 더 높은 서열의 대학은 더 나은 직장을 보장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자신의 자녀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공부에 모든 걸 다 걸 수밖에 없었다.
방송 링크
이에 대학입시를 위한 과외는 그 비용이 시간이 흐를수록 높아졌지만, 그 수요가 줄지 않았다. 급기야 과외 관련 교육비는 가계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 실제 과외와 관련한 비용은 당시 교육부 예산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그 속에서 부모의 재력에 따른 교육의 양극화가 심화됐다. 이는 교육 기회의 박탈이라는 불평등 구조를 만들었다. 이와 관련해 과외 망국론이 곳곳에서 제기되면 사회 문제화됐다.
이 시점에 신군부가 대입 본고사 폐지와 강력한 과외 금지 정책을 내놓았다. 신군부의 정통성 유무를 떠나 많은 이들이 환영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과외는 불법이 됐다. 불법 과외 단속을 위해 다수의 정부 기관이 나섰다. 그 시기 뉴스에서는 불법 과외 단속 소식이 지속적으로 보도됐다.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들의 들의 불법 과외가 적발되면 그들은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강도 높은 과외 단속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이후 대학입시는 1년에 한번 치러지는 학력고사와 내신을 합산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학력고사와 내신 점수를 가지고 입시생들은 정해진 기간에 대학 그리고 학과에 지원하고 대학은 지원자 중 성적 순으로 합격자를 선별하게 됐다.
이를 통해 학력고사는 대학입시의 결과는 좌우하는 시험이 됐고 더 나아가 그 학생의 인생을 결정하는 시험이 됐다. 이에 한날한시에 치러지는 학력고사 시험장에는 학생과 가족들이 모두 함께 시험장을 찾고 부모들은 학생들이 시험을 다 치르는 동안 교문 밖에서 학생이 시험을 잘 치기를 기원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며 기다리는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시험에 착 붙으라는 의미의 엿이나 찹쌀 떡이 학력고사를 앞두고 불티나게 팔리고 특정 대학 합격을 기원해 자동차의 브랜드 마크만을 몰래 떼어내 소장하는 웃지 못할 일들도 비일비재했다.
이와 함께 대학 입학원서 접수 역시 치열한 전쟁과 같았다. 학력고사 초장기 선 시험 후 지원 시스템 속에서 수험생들은 정해진 입학원서 접수 기간 각 대학의 각 학과들이 접수 경쟁률을 살피며 마지막까지 눈치작전을 펼쳤다. 그 기간에서 방송국에서 각 대학별로 입학 원서 접수 경쟁률이 수시로 보도됐다.
보다 낮은 경쟁률의 학교, 학과 지원을 위해 수험생들은 심사숙고를 거듭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했다. 가족들은 각 대학별로 흩어져 대학의 입시 상황을 살피고 상호 연락을 했다. 당시는 휴대폰이 없었던 시절로 공중전화박스는 전화를 하려는 이들의 줄이 길에 늘어섰다.
원서접수 마감을 넘어 닫힌 원서 접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 접수를 하거나 밖에서 원서를 안으로 집어넣어 접수를 시키는 등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 곳곳에서 연출됐다. 또한, 눈치작전으로 인해 최고 인기 대학의 인기 학과가 정원 미달이 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에 선 시험 후 지원의 대학입시 제도는 실력 이전에 운도 크게 작용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발생했다. 이에 대학입시 제도는 얼마 안 가 선지원 후 시험으로 변화했다.
눈치작전에 따른 과열된 입시 경쟁과 이에 따른 여러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수험생들은 원하는 대학, 학과에 입시 원서를 내고 그 대학에 가서 학력고사를 치러야 했다. 눈치작전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대학 입학의 운명이 결정되는 벼랑 끝 승부의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이렇게 대학입시 제도를 변경하고 과외 단속을 강화한 정책의 변화는 신선해 보였지만, 검토 없이 졸속으로 시행된 정책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까지 지속된 과외 근절책은 눈에 보이는 과외를 사라지게 했지만, 과외를 더 음지로 파고들게 했다.
이와 관련해 각종 편법이 난무했고 과외비를 더 크게 올렸다. 더 나은 성적을 원하는 이들의 수요는 여전히 많은 상황에서 과외를 없애는 건 무리가 있었다. 과외의 음성화는 보다 힘 있고 재력 있는 이들이 과외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실제 사회 지도층에서 불법 과외를 한다는 풍문이 곳곳에서 돌았다. 교육의 불평등을 해소한다는 과외 금지 정책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말았다.
또한, 학력고사 제도 역시 대학의 서열화, 학벌주의 완화를 이루지 못했다. 학력고사 성적으로 대학 합격 유무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대학입시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학력고사 점수는 대학의 합격선을 결정하는 기준이 됐고 이는 대학의 서열화를 더 부채질했다.
또한, 대학입시 경쟁 과열 현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시행된 대학 입학 정원 확대와 졸업정원제 역시, 늘어난 학생 정원을 감당할 수 있는 대학들이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학의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한 졸업정원제는 각종 편법이 난무하면서 형평성 문제를 불러왔다. 또한, 졸업정원제가 당시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대학생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는 측면도 있었다. 결국, 대학 졸업 정원제는 얼마 안 가 폐지됐다.
이렇게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의해 시행된 1980년 7.30 교육개혁 조치는 결과적으로 성공적이지 않았다. 부족한 정권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무리하게 시행되기도 했고 교육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국민적 관심사인 대학입시제도의 변화에만 집중한 한계성이 있었다.
이는 민주화과 진행되고 사회가 발전한 지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대학입시 제도는 학력고사에서 수능시험으로 변화했고 대학별 본고사 부활, 수시 전형 확대 등으로 다양성이 더해졌지만, 대학입시 경쟁을 과열시키는 대학 서열화 여전한 학벌주의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교육은 더 좋은 대학을 가고, 그에 근거해 더 나은 직장이나 직업을 갖기 위한 목표가 변하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의 인성을 키우고 민주주의 시민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의 본질을 사라졌다. 학생에 대한 평가는 오로지 성적에 의존하고 있고 이는 사교육의 팽창을 연결됐다. 이제 사교육 시장은 그 규모가 수십조 원에 이르고 있고 가구당 사육비 지출은 가계 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1980년대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역대 정권에서 교육 정책을 수립 시 눈에 보이는 대학 입시제도 변화에만 주력한 결과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더 큰 꿈을 꿀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는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는 선진국들을 보고 부러워할 뿐이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공감대를 형성하고 교육을 바꾸는 여론을 형성하지 못하고 다시 대학입시라는 목표에만 시선이 향하는 게 현실이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성적이 행복의 크기를 좌우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속에서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공교육 붕괴, 교권의 추락 등 문제들이 해결되기는 요원하다. 더 나은 점수를 위한 지식 전달과 시험 기술만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교육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제는 더 먼 미래를 보고 우리 교육정책을 만들고 지속성을 가지고 실행하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 : 프로그램,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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