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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많은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휴일이다. 이 즈음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고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기업들도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하고 있고 소비자들의 소비도 많아진다. 이에 크리스마스는 겨울 속 가장 뜨거운 시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시대에 따라 여러 변화를 거쳤고 현대 상업주의가 결합해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크리스마스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애초 '그리스도의 모임'이 중요한 의미였다. 초창기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예식, 예배였다. 

이런 크리스마스가 축제의 형태로 변화한 건 고대 로마제국에서 기독교의 성장과 관련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지속되고 있는 지역에서 시작된 기독교는 기독교의 창시가 예수가 순교하는 등 시련기를 겪었고 극심한 탄압을 받았다.

 

 

 




기독교, 로마제국의 문화 전통이 결합한 크리스마스


하지만 기독교의 교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갔고 그 인구는 로마 제국의 다수가 됐다. 그 결과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반포한 313년 6월 밀라노 칙령에 따라 정식 정교로 공인됐고 392년 테오도시우스 황제 때에 가서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됐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는 로마의 주류 종교가 됐고 그 영향력은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유럽 전체로 퍼져나갔고 유럽의 문화, 예술, 생활 전반을 지배하게 됐다. 

주류 종교 간 된 기독교의 상황 변화와 함께 기존 로마 제국에 존재했던 토착 문화가 결합하면서 기독교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제로 변모했다. 다신교 국가였던 로마 제국에는 다수의 신들이 존재했다. 그중 태양신은 가장 신성시됐다. 로마에서 만들어진 율력에 따라 12월 25일은 태양신이 탄생, 새로운 탄생의 의미하는 날로 중요시됐다. 의미가 큰 날이었던 만큼 그날은 숭배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큰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런 두 가지 종교가 결합해 12월 25일이 기독교인들의 기념일이자 이를 축하는 축제가 됐다는 설이 우세하다. 

이렇게 기독교의 중요한 기념일이 된 크리스마스는 로마 제국 시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고 기독교가 지배하는 중세 유럽에서도 그 전통이 이어졌다. 중세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신분이나 남녀 성별에 관계없이 함께 어울려 즐기는 거대한 축제로 변모했다.

 

 




일반 평민들의 해방구였던 중세 크리스마스 축제


중세 유럽은 기독교적 가치관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고 금욕과 절제가 중요한 미덕이 되는 사회였다. 그 시기 기독교의 수장인 교황은 세속 권력을 능가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다. 교회가 유럽을 지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였다. 이 시기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억압됐고 봉건제 신분제도는 더 공고해졌다. 평민들은 막대한 세금을 부담하고 각종 부역과 군역의 의무까지 있었다. 피 지배층들의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한 축제는 이런 불만을 해소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중세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는 12월 25일부터 12일간 지속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간 사람들은 억눌렸던 마음을 열고 음주, 가무를 즐겼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탈 행위에도 상당 부분 처벌이 면제됐다. 크리스마스 축제는 기독교가 지배하는 사회의 엄숙함을 벗어더진 일종의 해방구가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억압받는 존재였던 어린이들이 우대를 받고 신분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명 바보 축제도 크게 유행했다. 이런 분위기는 성직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크리스마스의 쾌락 추구의 분위기에 변화가 생긴 건 근대 사회로 접어드는 시기 일어난 종교개혁이었다. 기존 기독교에 반기를 들고일어난 신교 세력들은 기독교 근본주의를 내세우며 청빈과 금욕을 강조했다. 그 속에서 크리스마스 축제는 격하됐다. 신교가 주류가 된 나라에서는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하는 법이 제정되기도 했다. 1644년 영국에서는 크리스마스 금지법이 실제 제정되기도 했다. 이에 청교도 등 신교 국가에서는 크리스마스 기간 음주, 가무를 금지하고 예전처럼 기도하는 날을 추구했고 음주, 가무 행위를 단속하기도 했다. 

귀족이나 상류층들은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해도 호화로운 생활을 했고 언제든 음주와 가무를 즐기며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분위기 변화가 그들에게는 큰 영향이 없었지만, 일반 평민들에게는 연중 가장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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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산업혁명, 극심한 빈부 격차 속 양극화의 상징된 크리스마스


결과적으로 크리스마스는 점점 빈부의 격차를 상징하는 날이 됐다. 특히, 산업혁명을 전후로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만들어지고 부의 격차가 더 커지는 상황 속에서 일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장기간 노동에 시달렸고 사회의 주류 세력으로 떠오른 자본가들은 한층 더 부를 축적했다. 이런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크리스마스는 상류층이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이 즐기는 날이 됐다. 일반 평민들과 노동자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먼 나라 이야기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동화가 바로 '성냥팔이 소녀'다. 크리스마스 전날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의 강요로 추운 겨울밤 성냥을 팔러 나온 한 소녀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팔러 나온 성냥을 하나 둘 켜다 여러 환상을 보게 되고 결국 동사한 비극적 이야기는 당시 극심했던 빈부 격차와 일반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상징하고 있다. 

이처럼 서회 양극화의 상징이었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한건 한 소설이 영향이 컸다. 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이기도 한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캐럴'이 그 소설이었다. 1843년 초판이 발간된 이 소설은 지금도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애니메이션 등으로 방영되기도 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스크루지는 돈이 인생 최고의 가치인 인물이고 이에 매우 인색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에게 크리스마스는 돈을 벌 수 없는 쓸모없는 휴일일 뿐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밤낮으로 휴일 없이 일을 하는 상황이었고 자본가들은 가능하면 노동자들이 많은 시간 일을 하도록 다그치는 게 일상이었다. 스크루지는 당시 자본가를 상징했다. 하지만 그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 그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유령을 만나게 되고 자신의 삶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이를 통해 개과천선한 스크루지는 남을 배려하고 자신보다 못한 이들에게 베풀 줄 하는 따뜻한 사람으로 변모하며 삶의 진정한 행복을 찾게 된다. 

 

소설 성냥팔이소녀 삽화 - 위키백과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 삽화 - 위키백과

 




크리스마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변화시킨 소설 '크리스마스캐럴'


이 소설은 책을 출간한 영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책의 낭독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 소설을 통해 자본가들은 포함한 상류층 인사들은 그동안 그들이 외면했거나 몰랐던 사회의 이면을 보게 되고 자신들보다 못한 이들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마침, 이 소설은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한 움직임이 강화되고 참정권 확대와 사회 복지 증진 등의 국민 기본권 향상이 이루어지는 시기와 맞물리며 사회적으로 근 반향을 일으킬 수 있었다. 소설만의 힘이라 하긴 힘들지만,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새롭게 하는 역할을 한 건 분명하다. 

이 시점부터 서구에서 크리스마스는 나눔과 배려가 함께 하는 따뜻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모금 운동이나 관련 행사가 열렸고 크리스마스의 세계관이 한층 더 긍정적으로 변화했다. 이와 관련해 189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부두에서 불우이웃 구호를 위해 냄비를 걸어놓고 모금활동을 한 것에서 유래한 자선냄비 모금 운동은 연말연시 나눔을 실천하는 한 풍경이 됐다.

또한, 근대 영국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이 궁전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선물을 준 것에서 유래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부유한 이들이 그들 회사의 직원들이나 불우한 이웃들에게 선물 박스를 나누어 주는 전통은 박싱데이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편에서는 영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프로 축구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박싱데이의 전통을 이어받아 크리스마스 다음 날 경기를 편성하는 등 연말 경기 일정을 빽빽하게 정하는 말로 박싱데이가 통용되고 있기도 했다. 

이에 박싱데이는 나눔보다는 소비 진작을 위한 할인행사의 형태로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다. 특히, 연말이 되면 열리는 대규모 할인 행사인 블랙프라이데이로 그 형태가 변모하기도 했다. 상업주의가 더해진 크리스마스는 나눔의 실천이라는 순기능에 더해 소비자들의 소비를 촉진하는 날이라는 또 다는 면모를 함께 하게 됐다. 그 속에서 크리스마스는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크리스마스는 조선시대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날이었지만, 조선의 개항이 이루어지고 지고 서구 문물이 유입되면서 기독교와 천주교 선교를 위해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 일반 민중들에게 알려지게 된다. 그 과정에서 1932년 결핵 환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지는 크리스마스 씰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사에 의해 만들어져 보급되기도 했다. 

 

 

 




광복 이후 자리 잡은 한국의 크리스마스 


이후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신자들의 행사로 유지됐지만, 일제 강점기를 지나 광복이 되고 미 군정이 들어서면서 의미 있는 날이 됐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고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에 의해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탄신일이라는 이름으로 1952년 법정 공휴일도 지정됐다.

이는 미국에서 유학하고 오랜 세월 활동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연시 대표적인 휴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한국은 필리핀 등과 더불어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크리스마스를 법정 휴일로 정한 나라 중 하나다. 이에 특정 종교에 대한 편향성에 대한 반발로 우리나라에서 영향력이 큰 종교인 불교의 석가탄신일이 1975년 법정 공휴일도 지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는 시대적 흐름과 그 나라의 상황 등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고 각 나라별로 특색을 가지며 발전했다. 중요한 건 크리스마스가 단순히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종교적 행사 이전에 저물어 가는 한 해를 정리하고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날이라는 점이다.

또한, 나보다 못한 이들을 돌아보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먹고 즐기고 소비하는 날로 넘기기에는 그 안에 담긴 의미가 매우 큰 크리스마스다. 이에 크리스마스를 보다 가치있게 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할 수 있다. 



사진 : 픽사베이, 글 : jihuni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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